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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대나무는 매듭이 지어질 때마다 더 높이 커간다. 또 대나무가 곧고 높게 자라는 이유는 중간 중간 매듭이 있기 때문이다

23년 차 배우 박선영(42)은 자신의 연기 인생을 설명하며 ‘대나무 매듭’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1996년 KBS 제2기 슈퍼탤런트 대회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배우로 데뷔한 이후 거의 매년 경력 공백 없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는 점이다. 경력 단절의 시기는 사실상 눈에 띄지 않는다.

최근 끝난 KBS2 주말 연속극 ‘같이 살래요’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그에게 23년째 연기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어요. KBS 공채로 들어올 때 제 동기들 중 활동하는 이는 거의 남아있지 않아요. 제 앞 기수에도 차태현 선배 외엔 남은 분이 없어요. 데뷔 초반엔 미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큰 역할을 맡았었고, 이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이어 그는 “힘든 고비를 한차례 넘길 때마다 새로운 시각이 생기고, 연륜이 쌓여요. 경험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제가 새롭게 오를 수 있는 발판이 마련돼요. 대나무를 보면 차근차근 성장하는 게 아니라 매듭이 생길 때마다 쑥 커지잖아요”라며 설명했다.

박선영은 2009년 KBS 2TV ‘솔약국집 아들들’ 이후 오랜만에 주말극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고, 호평받았다. ‘같이 살래요’ 자체가 그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기 보다 지난 모든 작품이 그에겐 소중하다. “뭔가 시작하면 한결같이 열심히 해온 것 같아요. 그게 꾸준히 열심히 해 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 작품을 마친 뒤 영화 ‘남산 시인 살인사건’을 시작하게 됐는데 거기도 빠져서 열심히 살아가겠죠. 저에겐 잘 된 작품, 안 된 작품. 안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것 모든 게 의미가 있어요. 매 순간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져요.”

박선영에게 연기 인생의 주요 포인트에서 만난 대표작들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처음엔 “예전 내 출연작을 안본다.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의 모니터링에만 집중한다. 얼마전 TV를 돌리다 제가 출연한 영화 ‘중독’(2006년작)을 틀었는데, 내가 나오는 장면에선 미치겠더라(웃음)”라며 겸언쩍어했다.

그의 데뷔작은 1996년 KBS의 공포단막극 ‘전설의 고향’이었다. 그는 귀신 역을 맡았다. “그 시대의 잘 나가는 배우의 서막은 ‘전설의 고향’의 귀신이었어요.(웃음) 보통 잘 나가는 배우들이 맡는 역이었는데 난 KBS 공채 출신이라 운좋게 맡게 됐어요.”

박선영의 초창기 이미지인 ‘지고지순 청순가련’를 만들어준 작품은 1996년 KBS1 ‘하얀 민들레’였다. 이 작품으로 그는 그해 KBS연기대상 여자신인상을 움켜쥔다.

몇년간 착한 역할만 하다가 2000년 MBC ‘진실’에서 처음 악역을 맡았다. “착하게 생긴 얼굴이라 악역을 하고 싶어도 주어지지 않았어요. 그때 그런 캐릭터를 하게 돼 너무 고마웠어요. 개인적으로 활동 무대를 넓히며 힘든 시기였는데 잘 이겨내게 해준 작품이었죠. 악역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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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KBS2 ‘장희빈’에서 인현왕후 역할을 맡았을 무렵도 기억에 남는다. 그 시기에 그는 평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인현왕후 역할을 할 때 한창 중전마마의 단아한 이미지를 보여서인지 선을 보자는 제안이 엄청나게 들아왔어요. 중매쟁이도 전화가 와서 ‘빌딩 3채 있는 박사 집안으로 시집갈 생각 없냐’고 하더라고요. 그무렵 지금의 남편(외교관 김일범씨)과 소개팅을 했어요. 어느날 ‘장희빈’ 촬영장에 찾아와 제 촬영 장면을 지켜보더라고요. 전 모르는 척 연기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2004년 KBS2 ‘오필승 봉순영’도 한단계 성장하게 한 작품이다. “단아하고 지적인 캐릭터를 맡았는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어요. 한창 소속사 문제로 힘든 시기였는데 ‘내가 잘하고 있구나’ 자신감을 준 작품이었죠.”

그다음해 그는 KBS2 ‘열여덟 스물아홉’을 통해 코믹연기에도 도전한다. “몸은 스물아홉인데 정신연령은 열여덟은 설정이었어요. 연기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작품이에요. 사실 배우가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거든요. 배우를 바라보는 고정된 시각이 있고, 익숙하고 좋은 이미지를 이끌어내고 싶은 게 제작진의 당연한 마음이니까요.“

그는 2009년 KBS2 ‘솔약국집 아들들’을 마친 뒤 오랜 연인과 결혼을 한다. “결혼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결혼 전엔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는데, 이후엔 정신적 여유를 찾으려 해요. 작품 한편을 마치면 여행도 다니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남편과 소소한 행복을 나누고요.”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작품을 해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요즘은 세대가 빨리 바뀌니 조금의 공백이 생겨도 잊혀지는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든 배우가 적응해서 발맞춰 나가야 해요. 그동안 드라마를 주로 했다면 이젠 영화도 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요. ‘예능 무능력자’라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이지만 예능에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도전해 보려고요.”

글·사진 | monami153@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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