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20년 전 '작은 요정'으로 불리며 가요계에 등장한 소녀는 이제 한국 발라드를 대표하는 디바로 성장했다. 지난 1998년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혈혈단신 고국으로 돌아왔던 재미교포 출신 박정현(42)은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대중에 인정받았다.


그는 지난 6월 데뷔 20주년을 맞아 자신의 9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데뷔 당시 박정현이 오랜 시간 한국 가요계를 주름잡는 디바로 성장할지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여느 동포처럼 미국 LA에서 나고 자란 탓에 우리말이 어눌한 신인일 뿐이었다.


가수의 꿈을 품고 부모님의 나라에서 활동을 시작한 박정현은 어린시절부터 지금의 꿈을 키웠다. 목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고 미국 한인 사회에서 인정받는 가수였다. 국내 데뷔 전 93 한인라디오방송국 고스펠 경연대회 대상, 재즈 콘테스트 대상 등 다양한 음악 대회를 석권했다. 자연스럽게 미국에서 알앤비(R&B) 등 다양한 장르를 접한 그는 국내에서 새로운 장르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크게 공헌했다.


선율 위에서 춤추듯 불렀던 박정현의 보컬은 R&B가 익숙치 않았던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는 '나의 하루' '피에스 아이 러브 유(PS I Love You)' '꿈에' '편지할게요' 등 다양한 히트곡으로 사랑받았다.


[당시 기사 본문 요약]


3. Star Is Born(스타 탄생)

당돌한 말일지 모르지만 난 스타였다.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역과 시 주최 콘테스트에 참가해 대상을 따냈기 때문이다. 다우닝시 탤런트 페이전트 대상, 93 한인라디오방송국 고스펠 경연대회 대상, 재즈 콘테스트 대상. 참으로 많았다. 이렇게 저렇게 명성이 쌓여져 많은 교회와 학교 여름캠프에 초대를 받고 순회 공연과 콘서트를 가졌다. 16세 때는 경연대회 대상 수상을 계기로 고스펠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그 유명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비롯, 찬송가의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을 모아 한 국어와 영어로 취입했다. 꽤나 일찍 가수 데뷔를 한 셈이다.


4. My Song, My Voice(나의 노래, 나의 목소리)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샀던 CD는 '고스펠의 여왕'으로 불리던 에이미 크랜트였다. 그게 88년이었다. 이후 CCM 뿐만 아니라 휘트니 휴스턴, 바비 브라운과 같은 R&B와 랩도 들었고 펄 잼의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에도 재미를 붙였다. 재즈 콘테스트에 참가하느라 듣기 시작했던 재즈음악도 내겐 커다란 매력이었다. 당시 엘라 피츠제랄드는 나의 우상이었다. 지금은 브라이언 맥나이트나 R&B를 집중적으로 듣는다. 한국에서 나를 R&B 가수라고 하니까 열심히 배우기 위해서다. R&B의 매력? 창법이 너무 재미있다. 이 장르는 진짜 노래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지런히 들으며 어떠헥 새로운 창법을 만드어낼까 연구한다.

내 목소리에 대해서 아주 얇은 게 매력이라고, R&B에 잘 어울린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난 매력없는 부분이라 여기는데…너무 얇고 멋이 없다고 자책까지 한다. 개인적으로 고음보다는 낮은 음을 좋아한다. 보오나할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록창법을 구사했다면 믿을 수 있을가. LA에서 노래할 때 록밴드랑 함께 연주한 적이 많았다. 주로 고스펠 록이었다. 샤우팅 창법이 힘들긴 했지만 재미 또한 두배였다. 디스토션 걸린 기타 사운드에 맞춰 R&B 창법으로 노래부르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어떻게 목소리에 힘을 모을 수 있을까가 연구대상이었다.


풋풋했던 박정현의 데뷔 당시 모습


2002년 박정현의 콘서트 당시 모습


한국 가요계 대표 디바로 인정받은 박정현


2005년 대구 야구장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박정현


국내 음악 예능 중심 캐릭터로 자리잡은 박정현


한국 대표 디바로서 2006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박정현


박정현의 가창력은 모두가 인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큰 전환점을 맞은 건 지난 2011년이었다. MBC 서바이벌 음악 예능 '나는 가수다(나가수)'를 만난 박정현은 자신의 음악을 대중에 크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다양한 곡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한 그는 지난 2011년 '나가수 시즌1'에서 7회 연속 생존해 김범수와 함께 명예졸업했다. 2015년 방송된 '나가수 시즌3'로 다시 돌아와 양파와 함께 처음부터 경쟁 끝에 가왕전에서 아쉽게 무릎 꿇었다.


음악 예능이 대세를 이루자 박정현은 자신의 진가를 마음껏 발휘했다. 그는 음악 예능에서 빠질 수 없는 캐릭터로서 활약하고 있다. 최근 종영한 JTBC '비긴 어게인2'에서도 어디서나 빛나는 디바의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비긴 어게인2'의 버스킹 영상이 200만뷰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는 '나가수' 당시 기록한 160만뷰보다 많은 조회수로 그가 여전히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증명했다.


박정현은 이미 지난 2002년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R&B 부문 최우수상과 골든디스크 비디오부문 인기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음악뿐만 아니라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KBS2 '해피투게더3'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 박정현은 노래 아닌 토크에서도 강점을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지난해 6월 결혼에도 골인한 박정현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최근에는 일과 사랑을 모두 이룬 모습으로 행복한 얼굴이다.


20년 전 어눌한 발음으로 한 눈에 교포 출신임을 알아 볼 수 있게 했던 신인가수 박정현이 20년이 흐른 지금 한국 가요계와 예능의 중심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purin@sportsseoul.com


사진 | 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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