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게은기자] '연기 본좌'라는 수식어를 가진 배우 김명민. 그는 지금껏 장르와 캐릭터를 불문하고 호소력 짙은 연기력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왔다.


그런 그가 2년 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해 다시금 명품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KBS2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에서 1인 2역을 소화하며 안방극장을 압도하고 있다. '우리가 만난 기적'은 월화드라마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력이 호평을 받고 있는 가운데, 시청자들은 "역시 김명민이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명민은 냉철하고 권위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송현철 A의 모습과 더불어 다정하고 사람 냄새나는 송현철 B의 매력까지 다채롭게 녹여내며 극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그는 어느덧 데뷔 23년 차의 베테랑 배우가 됐다. 지금은 인생작이라고 불리는 대표 작품들이 많은 그지만 여느 배우들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데뷔 초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무명시절도 길었다.


1996년 SBS 공채 탤런트 6기로 배우의 길에 접어든 김명민은 드라마 '남자 대탐험', '부자유친', '아름다운 그녀'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엑스트라나 단역이었다. 1997년 '재동이'에서는 이상아와 부부로 호흡을 맞췄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방영 2개월 만에 조기종영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던 1999년 '카이스트'의 '현무의 로켓' 편에 출연하며 주목받았다. 극중 정치적인 이유로 버림받은 과학자의 아들 현무 역으로 분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또 아픔이 찾아왔다. 같은 해 영화 '공포 택시'로 첫 주연으로 활약할 기회를 가졌지만 제작 과정에서 김명민의 역할이 다른 배우로 교체되고 말았다.


그래도 김명민은 계속 달렸고 2000년 '뜨거운 것이 좋아'를 통해 처음으로 드라마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그는 출세를 위해 배신을 서슴지 않는 인물 최진상 역으로 분해 열연했다. 악역이긴 하지만 현실적이기도 한 배역을 잘 살려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김명민은 MBC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대중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받기 시작했다.


2001년 첫 스크린 데뷔작 '소름'을 통해서는 광기 어린 살인마 택시기사를 연기해 두각을 나타냈다. 제2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남우상을, 제4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올해의 신인 연기자상을 수상하며 충무로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듬해 또 한차례 시련이 닥쳤다. 2002년 크랭크인에 들어갔던 영화 '스턴트맨'이 80% 이상 촬영된 상황에서 제작비 문제로 엎어지게 된 것. 설상가상으로 당시 김명민은 촬영 도중 오토바이에 깔리는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고 병원 신세도 져야 했다.


지치고 낙담한 김명민은 결국 배우 생활을 정리하고 뉴질랜드 이민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그 즈음 그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드라마 제안이 들어왔다. KBS '불멸의 이순신'이었다. 그렇게 김명민은 운명처럼 일생일대 최고의 작품과 조우했다.


2004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방영된 '불멸의 이순신'은 최고 시청률이 33%까지 치솟았던 국민드라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 인상깊게 자리한 이 작품에서 이순신 역을 맡았던 김명민은 2005년 KBS연기대상에서 연기 인생 최초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대중이 잘 알지 못했던 김명민이었지만, 그동안 쌓아온 연기 내공을 펼쳐 국민배우 반열에 올랐다.


2007년 MBC 드라마 '하얀 거탑'을 통해 또다시 흥행 홈런을 날렸다. 천재의사 장준혁으로 분한 김명민은 완벽한 인생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았지만 환자에게 공감하면서 진짜 의사로 거듭나는 캐릭터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그는 '하얀 거탑'이 마니아들을 만들어내면서 명품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07년 MBC연기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제4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2008년 MBC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독설을 서슴지 않는 까칠한 지휘자 강마에로 열연했다. 극에서 김명민이 말끝마다 내뱉었던 "똥 덩어리"라는 대사는 그해 최고의 유행어로 자리 잡았고 전국은 강마에 신드롬으로 물들었다. 강마에로 변신하기 위해 눈썹도 밀고 맞춤형 의상까지 특별 제작하는 열정을 보인 김명민은 MBC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009년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루게릭병을 앓는 환자 백종우 역을 맡아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체중을 무려 20kg 감량했다. 이 작품은 극장가가 극심한 침체기를 보였던 개봉 당시 유일하게 흥행하는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내 사랑 내 곁에'는 2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호성적을 거뒀고, 김명민은 스크린에서는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못했던 자신의 징크스를 깼다.


2011년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는 코믹하고 뻔뻔한 조선의 명탐정 김민으로 분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이듬해 '연가시'에서는 감염된 가족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장으로, 2015년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조선 개국에 큰 공을 세운 정도전으로 변신해 역사적 인물을 묵직하게 그려냈다.


이외에도 드라마 '개과천선', '드라마의 제왕', 영화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 '하루',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등에서 진지함부터 코믹함까지 넘나들며 팔색조같은 연기력을 펼쳤다.


김명민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끈기있게 배우 생활을 이어갔고 이 노력이 빛을 발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그가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돼 선보이는 탄탄한 연기력도 길고 긴 무명시절을 성실하게 견뎠기에 태어날 수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을 몸소 입증한 김명민. 칠전팔기의 뚝심이 담긴 저력이 앞으로도 써 내려갈 필모그래피를 기대하게 만든다.


eun5468@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 DB, KBS2 방송화면 캡처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