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 붙은 청바지의 “어찌하오리까”


7일밤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에서는 예쁜 처녀와 미남총각이 낡아 빠진 청바지 1장을 놓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실랑이.


더구나 총각은 T「셔츠」에 「팬츠」차림으로 핏대를 올려 더욱 가관.



사연은 이날 저녁 영등포시장 앞길을 지나가던 김(金)모양(19)이 마주오던 최(崔)모군(19)을 느닷없이 붙들고『다방으로 가서 이야기 좀 하자』고 말을 건넨 데서 비롯.


아가씨의 기세가 그렇게 부드럽지만은 않은 데다 마침 동생까지 동행이었으나 최군은 아뭏든 예쁜 아가씨가 다방에 가자는데 싫지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다방에서 자리를 잡고 앉고 보니 어렵쇼, 이 아가씨 총각에게 『입고 있는 청바지는 내것이니 당장 벗어 달라』고 호통.


이유는 지난 2일 남자동생(17)이 자기 몰래 청바지를 껴입고 극장에 갔다가 불량배들에게 청바지를 뺏겼는데 총각이 입고 있는 게 틀림없이 자기 것이라는 것.


청바지는 낡아 떨어져 깁고 색이 바래야 관록(?)이 붙어 알아 준다는데 기운 자리둥 여러가지 특징으로 보아 자기것이 틀림없다는 아가씨의 주장.


그러나 아가씨의 말에 총각은 펄쩍 뛰며『지난 1월에 사서 그동안 이렇게까지 관록을 붙이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박.


그래서 이들은 결국 파출소에 함께 가서 시비를 가리기로 했는데『남자옷이 여자에 맞을리 없다』고 생각한 순경의 지시로 총각이 벗은 청바지를 처녀가 입어 보니 딱 들어 맞았던 것.


형사과에서는 청바지를 숨겨놓고 처녀·총각에게 특징을 써내도록 했더니 이것도 둘이 똑 같게 써내어 시비가 가려지지 않았다.


그동안 최군은 동생을 시켜 집에서 다른 바지를 갖고 오게 했으나 동생이 너무 급했던 나머지 바지를「택시」속에 놓고 내려 결국 최군은「팬츠」바람으로 경찰서 보호실에서 하룻밤을 새우고서야 풀려나갈 수 있었다.


청바지는 증거품으로 경찰이 보관하고.


형사들은『다 떨어진 청바지를 두고 뭐 그러냐』고 화해를 붙이려고도 해 보았지만 처녀·총각은『그까짓게 값은 얼마 안 나가지만 그렇게 색이 바래져 얼마나 알아주는지 아느냐』며 굽히려 들지 않아 경찰은 최군을 일단 절도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놓고 있다.


<서울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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