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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래퍼 키스에이프는 국내 힙합씬에서 누구도 걸어본 적이 없는 길을 가고 있는, 여러모로 특이한 존재다.

국내 힙합씬에서 유망한 프로듀서 겸 래퍼로 차츰 성장해 가던 키스에이프는 2015년 발표한 싱글 ‘잊지마(It G Ma)’로 갑자기 ‘글로벌 스타’가 됐다.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앨범도 없는 상태에서 이뤄낸 기적이었다. 이 노래는 디지털 싱글 같은 공식 형태로 발매되지 않았지만 유투브 등을 통해 미국 등지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 ‘잊지마’ 뮤직비디오는 현재 5000만 뷰를 돌파했다. 이곡은 에이셉 퍼그 등 현지 유명 래퍼들이 피처링한 리믹스 버전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미국 본토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사실상 최초의 한국 힙합이었던 셈이다.

현재 그의 활동 무대는 한국이 아닌 미국이다. 2015년 미국 LA에 터를 잡은 그는 현지의 대형 힙합 페스티발 등에 꾸준히 참가하고, 인터넷 무료 공개곡을 발표하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영어가 아닌 한국어 랩을 앞세워 이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미국 진출 이후 2년 6개월여 넘게 현지에서 머물던 키스에이프는 지난해말 공연 등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가 1월말 다시 LA로 돌아갔다. 한국 체류 기간 중 그는 스포츠서울과 단독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의 생활, 비전과 목표, 앨범 준비 상황 등을 공개했다. 실제 만나본 키스에이프는 강렬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예의바르고 점잖은 청년이었다.

<②에서 계속> -미국 생활이 처음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생활 중인가.

혼자 사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미국에선 동양인의 입지가 정말 약하다. 다행히 나는 LA에 있어 인종차별을 많이 겪지 않는 편이긴 하다. 미국에 와 초반에 동양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가수, 배우는 많은데 가수는 별로 없어서, 이미지 재고에 도움이 됐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 내에서 동양인은 약하고, 웃기고, 괴짜인 이미지가 많다.

-미국에 건너간 걸 후회한 적은 없나.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힘드니까. 대우를 제대로 못받을 때도 있다. 한국에서 활동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몸과 마음은 편했을 것이다. 대화도 안통하고, 당연히 한국 사람이 많지 않아 어울릴 기회도 없다. 한국에서 활동했다면 더 쉽게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한다.

그러나 넓게 보면 미국에 오길 잘했다. 남들과 다른 독보적인 길을 걷는거니까. 원래 하고 싶었던 거다. 한국에서 아무리 유명해도 외국진출에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좋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미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성장한 부분은.

음악을 만드는 방식과 스타일이 아무래도 더 힙합스럽다. 본토니까. 본토 엔지니어와 작업을 하니 사운드도 내가 더 원하는 대로 나온다. 비트를 고를 폭도 넓다. 아무래도 미국이란 환경과 분위기가 내 기량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신적으로도 좀 더 단단해졌다. 바닥부터 치고 올라가고 있다. 한국에 있었으면 정신적으로 지금보다 약했을 거 같다. 기댈 데가 많으니. 미국에선 기댈 데도 없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도 않다. 미국에 올 때 큰소리 뻥뻥치고 왔으니 이겨내야 한다. 내가 좀 더 성장한 거 같다.

-2015년 초여름 미국으로 출국해 지난해 12월 한국에 처음 들어왔다.

2년 6개월여 동안 한번도 한국에 안들어왔다. 현지에서 뚜렷한 결과물을 내기 전엔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지난해 몇곡의 노래를 발표하며 어떤 성과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잊지마’만큼 반응이 좋은 건 아니지만 미국 씬에서 내가 꾸준히 하고 있다는 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미국 갔을 때 목표는 무엇이었나. 그리고 어느 정도 이뤘나.

원래 목표의 20% 정도 이룬 것 같다. 내 목표는 미국 정상급 래퍼들의 이름이 나열될 때 내 이름이 자연스럽게 함께 나오는 것이다. 한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세계적인 래퍼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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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동 중인가.

미국 음악계는 투어 위주다. 돈도 공연으로 번다. 한국에서 뮤지션의 활동은 방송 비중도 큰데. 미국은 방송을 굳이 안해도 공연만으로 활동이 충분하다.

단독 미국 투어는 앨범 나온 뒤 하려고 미루고 있지만 2016~2017년 캐나다 6개 도시에서 공연했고, 유럽(영국 런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랑스 파리, 리옹, 툴루즈) 아시아(대만 타이페이, 홍콩, 필리핀 마닐라, 중국 베이징, 광저우, 상하이) 일본 도쿄 등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팬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도시도 있었지만 웬만큼 공연장이 관객으로 차는 걸 보고 신기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걸 실감했다. 인터넷으로만 해도 되는 구나 싶더라.

대형 페스티발 무대에도 초대 받는다. 2015년엔 대형 음악 페스티벌 5~10개에 나갔다. 이후 활동을 거의 안했지만 일년에 2~3개에 페스티발은 출연했다. 미국 최대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인 코첼라에도 정식은 아니지만 DJ 토키몬스타의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88라이징’이란 채널 통해 노래와 비디오를 선보이고 있고, 미국 캘빈클라인, 컨버스 등의 브랜드와 협업을 하기도 했다.

-국내 뮤지션 중에서 미국에 진출하려는 이들에게 필요한 조건은 뭐라고 생각하나.

미국이라는 나라의 감성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과는 다르다. 미국에서 봤을 때 한국인에게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을 거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상대에 맞추기 보다는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미국 문화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고 트렌드를 최대한 읽으려는 노력도 필요한 것 같다. 물론 동양인이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노력만큼 운도 필요하다.

-방탄소년단(BTS)이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데, 체감하나.

미국 현지에서 느끼는 방탄소년단의 파급력이 굉장히 크다. SNS에서 현지인들에게 언급도 많이 되고, 미국 유명 시상식에도 나오더라. 내 주변 사람들도 방탄소년단 얘기를 한다.

메인스트림 음악계를 잘 모르는 내 귀에까지 ‘BTS’라는 단어가 자주 들리고, 미국 유명 뮤지션들과 작업을 많이 하는 모습을 봐도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방탄소년단이 메이저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니 미국 시장이 동양인을 한발짝 더 받아들여주는구나 싶다. 방탄소년단을 보며 희망을 느끼고, 자극을 받는다.

-현재 미국에서 키스 에이프의 인지도,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미국에 사는 동양인이거나 ‘잊지마’가 떴을 당시 힙합을 들었던 이들이라면 내 노래를 한번쯤 들어봤거나 안다.

아직 내 위치는 언더그라운드 씬에 있다. 미국 언더그라운드씬은 메인스트림과 아마추어 사이, 스펙트럼이 넓은데 내가 느끼기에 나는 언더그라운드씬의 중간보다는 약간 위에 있는 것 같다. 다행인 건 앞으로 내가 하기에 따라 내 위치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여기서 잘하면 충분히 올라갈 여지가 있다.

-앞으로 아티스트로서 듣고 싶은 이야기는.

‘독보적인’ 혹은 ‘시대에 한 획을 그은’ 이란 수식어를 듣고 싶다.

-아티스트로서 앞으로 목표는.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가 기억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미국에서 배운 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뀐다. 환경 탓을 하면 안된다. 분명 내가 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안되면 되게 해야 하고, 방법을 바꿔서라도 해봐야 한다. 그럼 내가 원하는 걸 100%는 아니라도 80%까진 이룰 수 있다.

영어가 안되고, 동양인이고,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그런 편견을 한번 이겨냈다. 아티스트는 계속 그렇게 편견을 바꿔나가며 움직이는 게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제공|김중만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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