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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의 도시 춘천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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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면 춘천은 새하얀 겨울나라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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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호반에 내려앉은 하얀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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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애니메이션박물관 구름빵.
[춘천=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 이름에 ‘봄’이 들어가는 도시가 있다니. 이 무뚝뚝한한 계절에 그 얼마나 매혹적인 이름인가. 이름하여 봄내, 즉 춘천이다. 춘(春)은 젊음과 낭만을 상징한다. 청춘이라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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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도 겨울을 맞아 한결 한가롭고 여유있는 겨울 풍경을 뽐내고 있다.
춘천은 겨울의 로맨스 역시 어디 부럽지 않다. 꽝꽝 얼어붙은 호반과 강물 위 내려앉은 새하얀 눈, 희끗한 산봉우리 그리고 그 사이를 가르며 달리는 열차. ‘춘천가는 기차’는 언제나 로맨틱한 꿈을 싣고 달린다. 열차가 멈추는 곳엔 세상 어디 내놓든 추운지 모를 연인과 가족들이 저마다 따스한 입김을 허공에 흐트러뜨리며 청춘의 겨울 데이트를 즐긴다.아직 봄이 기다려지진 않는 1월의 한복판, 은박지처럼 빛나는 겨울의 속살을 지켜보러 춘천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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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김유정역 구 역사.
◇하얀 나라로 떠나는 열차

하늘끝부터 땅끝까지 새하얀 산천. 쓱싹 칼질하듯 지나는 붉은 열차는 춘천 백양리역을 지날 때부턴 ‘교통수단’이 아니라 ‘관람시설’이 된다. 이곳부터 춘천, 새하얀 봉우리 울긋불긋 스키어를 등에 업은 백양리는 그 로맨스의 서두인 셈이다.

그래서 이왕 춘천을 간다면 열차를 타는 것이 좋겠다.

철로는 강변을 따라 지난다. 예전의 ‘칙칙폭폭’이나 ‘덜그럭 덜그럭’ 소리도 좋지만, 한없이 조용한 전기 열차는 지독시리 깊은 나른함을 승객들에게 안긴다. 하얀 차창이 파르르 떨리면서 승객들이 묻혀온 도시의 때가 조금씩 떨어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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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역에서 구 역사(폐역)으로 이어지는 철길.

먼저 내린다. 남춘천역을 못가 ‘김유정역’이 나온다. 원래는 신남역이 있었는데 ‘봄봄’의 김유정이 살았던 실레 마을이 있던 곳이라 이름을 고쳤다. 국내 최초 사람 이름을 딴 역명이다. 괄괄한 ITX청춘이 쏜살같이 지나는 현재 경춘선 역도 있고 지금은 폐역이 된 구 역사도 있다. 김유정역에서 내려 폐철로를 걷다보면(영화 ‘건축학개론’에서처럼) 인형의 집처럼 쬐끄만한 또다른 김유정역이 나온다. 초가집만한 역사가 앙증맞게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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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경춘선 김유정역. 구 역사 옆으로 새로운 역이 생겨났다.

비록 열차는 다니지 않지만 추억 속으로 떠날 수 있다. 신문 한 부를 모두 펼 수도 없는 작은 역사 안에는 옛 열차시간표, 역무원 소품을 비롯해 추억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월을 거꾸로 돌리는 ‘시간역’이다.

인근에는 김유정의 삶과 그의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김유정 문학촌이 있다. 입구(口)자 형 초가집과 정원, 연못 그리고 김유정 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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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김유정 문학촌.

폐병에 걸린 춘천 태생 스물 아홉살의 소설가는 운명하기 열흘 전 친구에게 편지를 남겼다. 병마와 가난에 시달리던 그는 소설 번역이라도 하겠다고,그래서 돈이 생기면 닭도 사고 구렁이도 사서 삶아먹고 어서 나아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답장도 닿기 전에 김유정은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괜히 가슴 한켠이 시려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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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문학촌에는 주요 작품 줄거리를 형상화한 조각들이 있다.

김유정의 작품엔 ‘나’와 ‘점순이’가 자주 등장한다. ‘봄봄’에도 나오고 ‘동백꽃’에도 있다. 주요 명장면을 조각으로 만들어놓았다. 점순이가 아직 키가 작아 시집을 못보낸다던 ‘열정페이’ 봉필영감(봄봄)도, 괜시리 닭싸움을 붙이던 또다른 점순이(동백꽃)도 정원을 지키고 있다. 실제 동백꽃나무도 있다. 강원도에선 생강나무를 동백이라 불렀던 것도 여기서 처음 알았다.

하얀 엄동설한에 문향을 실컷 맡았더니 제법 봄기운이 도는 듯 하다. 훈훈한 마음이 식을 새라 바삐 춘천 곳곳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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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이디오피아뱃 카페.

◇얼음과 눈의 동화나라

강촌을 휘감는 북한강처럼 공지천도 얼어붙었다. 하얀 강물은 멈춰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상하게도 스산하지 않다. 분칠처럼 더욱 화사해보인다. 앙상한 가로수 사이로 지나는 검은 옷 차림 역시 우아하고 고상하다.

공지천 다리옆을 지날 때 그윽한 커피향을 느꼈다. 대기 중 수분이 오그라들어 그런지 꽤 멀리까지 퍼진다. 이디오피아뱃. 6·25 한국전쟁 참전국 에티오피아를 기념해 지은 커피숍이다. 공지천 강물에 반쯤 걸터앉은 이 클래식한 커피숍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원두커피를 로스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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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에티오피아 한국전참전기념관

1968년 에티오피아 황제가 춘천 공지천 참전기념탑을 방문한 후, 이곳에 양국간 문화교류를 위한 ‘이디오피아집(뱃)’이 생겼다. 커피 원두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는 황실에 사용하는 원두를 이곳에 보내왔고, 덕분에 무려 50년 전에 로스팅 원두커피 서울도 아닌 춘천에서 마실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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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원두커피.

과연 커피는 맛있고 향기롭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춘천의 풍경은 뜨거운 커피를 더욱 맛나게 한다. 얼마나 맛있었던지 원두까지 한 봉지 샀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하라르(Ethiopia Harrar)’로 일명 에티오피아의 축복으로 불리는 고급 품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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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에티오피아 한국전참전기념관.

에티오피아군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는 몰랐다. 터키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16개국(이중 룩셈부르크와 그리스, 콜롬비아, 태국은 조금 놀랍다) 중 하나였으려니 했다. 에티오피아 전통 가옥 형태로 지은 한국전참전기념관에 가면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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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에티오피아 한국전참전기념관

에티오피아 황실 근위대에서 선발한 강뉴(Kagnew) 부대는 1951년 5월 7일 한국에 도착해 휴전까지 총 253번의 전투를 치르면서 전사자가 121명에 536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진 적없고 1명의 포로도 허용하지 않은 전승 부대였다.

머나먼 타국에서 사라져간 고마운 에티오피아 군인들의 이름이 전사(戰史)와 업적, 유품과 함께 이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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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은 박물관이 많아 추울 때도 좋다. 로봇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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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이 딱이다.

◇추울땐 실내, 실내하세요

춘천에선 추워도 좋다. 박물관들이 많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과 로봇박물관은 함께 있다. 2곳 박물관의 입장권을 한번에 끊어서 둘러보면 된다. 마징가Z, 철인28호, 아톰, 건담 등은 겹치기 출연을 해야하기 때문에 같이 있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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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로봇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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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 만화그리기 체험.

애니메이션 박물관은 국내 및 세계 만화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다. 만화영화의 원리와 각국의 캐릭터, 스토리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토종 캐릭터 ‘구름빵’의 모든 것을 모아놓았다. 3월부터는 리모델링에 들어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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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람객이 로봇을 조정해 권투경기를 즐기고 있다. 춘천로봇박물관.

로봇박물관은 그야말로 로봇의 역학과 원리, 실제 사용되고 있는 안드로이드 형 로봇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다. 로봇끼리 겨루는 권투와 축구도 직접 조정해볼 수 있다. 특히 아이들과 한판 겨루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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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로봇박물관에 전시된 로보카 폴리.

춘천막국수 체험박물관 역시 인기다. 1층은 전시실이다. 이곳에서 메밀 문화와 막국수에 관한 전시물을 구경할 수 있고, 2층 체험실에선 직접 메밀 반죽을 해서 분틀에 면을 뽑고 동치미나 양념에 말아 자신 만의 막국수를 만들어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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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

메밀가루를 받아 반죽을 치대는 것도, 분틀에 넣고 국수를 뽑는 것 모두 생각보다 힘이 든다. 하지만 재미있다. 한낱 메밀가루에 불과했던 것이 국수로 만들어져 상에 차려지는 과정을 직접 진행하니 요리사라도 된 기분이다. 할인마트에서 만들어진 국수만 삶아봤지 언제 저리 쭐쭐 국숫가락이 나오는 것을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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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들어 먹는 춘천막국수. 간장과 채소, 참기름을 넣고 비벼먹어도 좋다.

금세 빚어 바로 먹는 막국수, 입안에 쪼르륵 빨려드는 제철 메밀향을 맡자니 온몸이 모두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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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백양리역에서 바로 이어지는 엘리시안강촌리조트.

춘천 여행정보

●주변 둘러볼만한 곳=남춘천역 풍물시장은 다양한 먹거리와 살거리가 있는 곳. 역과 가까워 둘러보기 좋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운영하는 춘천 제이드가든 수목원도 춘천 남면에 있다. 제이드가든 수목원은 새해를 맞아 ‘토요일이 오면’ 패키지를 준비했다. 본 패키지에는 수목원 입장, 식사(피자, 빠네파스타), 케이크 만들기 체험, 음료(커피)가 포함됐다. 2인 5만원. 1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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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춘천역 풍물시장.

백양리역과 바로 이어지는 엘리시안 강촌 리조트는 주말마다 뮤지션 공연을 실시한다. 또 지난해 오후 10시부터 운영하던 심야 스키를 9시 30분부터 운영하며 30분을 보너스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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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가는 길. 아니 강촌가는 길.

춘천 가는 길에 위치한 가평 쁘띠프랑스는 강변 언덕에 세워진 이국적인 분위기의 동화 속 나라. 프랑스 남부 지방 전원마을의 분위기를 재현했다. ‘어린왕자’를 테마로 한 다양한 전시물과 전시관을 보유하고 있다. 매일 오르골 연주, 마리오네트 공연, 기뇰 공연 등 풍성한 공연과 함께 직접 수집한 미술품과 인형, 가구, 식기, 의상 등 유럽의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어 체재 시간이 긴 알찬 관람시설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단지 내 각각 다른 콘셉트로 디자인한 객실 26개가 있어 동화 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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