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최민지 인턴기자] '기록의 사나이', '푸른 피의 전설', '라이온즈의 영원한 10번' 등 그를 칭하는 수식어는 넘쳐났다. 그러나 그라운드를 떠난 지 8년, 양준혁(48)은 이제는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는 친숙한 방송인 이미지가 더 강한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자 양준혁 야구재단 이사장으로 '제2의 인생'을 걸어가고 있다.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인 요즘 그는 자신이 운영 중인 양준혁 레전드 야구교실에 주로 머물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츤데레' 스타일이지만 아이들 앞에선 잇몸이 만개했다. 쉽지 않지만, 누군가는 가야 하는 길, 그 길을 선택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양준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화려했던 첫 시즌, 만세타법의 비밀


양준혁은 신인왕과 타격왕을 동시에 석권하며 데뷔 시즌을 화려하게 보냈다. 1년 늦었던 프로 입단이 동기부여가 되며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는 그는 "국군 체육부대에 있을 때 칼을 많이 갈았다"며 "'동기들은 프로에서 주목받고 있는데, 난 여기서 뭐 하고 있지'하는 생각과 소외감도 들었다"고 밝혔다. 군대에 있는 동안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면서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던 것이 프로 입단과 동시에 빛을 발했다고.


사실 양준혁의 1년 늦은 프로 입단은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년도에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거부하고 군대에 갔기 때문. 이에 대해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다"며 "그땐 너무 순수했던 것 같다. 원했던 팀에 가면 아무래도 나를 좀 더 예뻐해 주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상적인 생각을 했는데 막상 들어가고 보니 프로는 역시 냉정한 세계였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양준혁 하면 '만세타법'을 빼놓을 수 없다. 2002년 어깨 부상으로 부진했던 그는 타격폼 변화와 함께 부활했다. 양준혁은 "야구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젊을 때 도루를 많이 시도했는데 체중이 많이 나가다 보니 헤드 슬라이딩하면서 어깨에 충격이 많이 가더라. 양쪽 어깨가 다 상해버렸다"고 부상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의사가 수술하라고 할 정도였지만, 그러면 1년을 놀아야 했다"며 "선수로서는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이를 기회로 발상의 전환을 해봤다. 팔이 안 넘어가다 보니 한쪽 팔을 놓게 됐고 그렇게 나름대로 타법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던져주는 타격폼이 나이 먹었을 때 특히 용이하게 쓰인다"며 "이런 걸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 해태와 LG, 두 번의 이적


양준혁은 1998시즌 후 강력한 마무리 투수 임창용을 갈망하던 구단에 의해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됐다. 당시 은퇴까지 고민했을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든 트레이드였지만, 해태 특유의 끈끈한 선후배 간 문화를 체험하며 느낀 점도 많았다. '이래서 해태가 잘 할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고.


"해태로 트레이드되고 생활권을 옮겨야 해서 대구에서 짐을 많이 갖고 왔다. 그런데 이사하는 아파트 앞에서 해태 후배들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대기하고 있더라. 직접 짐도 옮겨줬는데 그런 건 살면서 처음 봤다. 청소까지 마친 뒤 짜장면 한 그릇 나눠 먹고 헤어졌는데 해태 문화가 그렇다더라. 그런 끈끈한 팀워크가 응집돼서 큰 경기에서도 빛을 발하는구나 생각했다. 갈 때는 어렵게 갔지만, 덕분에 다양한 걸 느껴보고 굉장히 시야가 넓어졌다."


2000년엔 LG 트윈스로 다시 이적했다. 두 시즌 동안 타격왕과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활약을 펼쳤지만 2001년 시즌 종료 후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고 고향 팀 삼성으로 복귀했다. 이제 다 지난 일이지만, 양준혁은 작은 아쉬움을 표했다.


"사실 LG에 남고 싶은 마음도 컸다. 서울을 연고로 할 뿐더러 내가 대구에 지인이 많을 것 같지만, 서울권에 지인이 더 많았다"며 "서용빈이나 류택현 등 동생들도 나를 잘 따라줘서 즐겁게 팀 생활을 했다. 신년엔 같이 스키도 타러 가고 했던 추억이 있어 떠나는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 양준혁에게 이승엽이란


'양준혁에게 이승엽이란 어떤 존재냐'는 질문에 그의 첫 마디는 "태양은 하나 밖에 안 뜬다"였다. 자신의 주제를 잘 파악하고 묵묵히 2인자 역할을 다했다고. 그는 "승엽이를 더 빛나게 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팀을 위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승엽이가 잘 되면 팀이 잘 되고 따지고 보면 그게 다 나한테 좋은 거였다"라며 "승엽이 활약 덕분에 팀이 우승하면 보너스도 받고 연봉도 올라가지 않냐"고 웃음을 보였다.


빛나는 주연이기보다 조연을 택했던 양준혁은 가장 좋아하는 기록도 사사구 기록으로 꼽았다. '기록의 신'이라 불릴 만큼 현역 시절 많은 기록을 써 내려갔던 그는 "내 커리어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건 최다 안타 기록이지만, 사사구 기록은 정말 팀을 위한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승엽이가 다음 타자였던 만큼 밥상 차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설명했다.


양준혁은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이승엽의 은퇴경기를 직접 중계했다. 긴 시간 한 팀에서 같이 뛰면서 우승의 기쁨도 함께 나눴던 동료였던 만큼 남다른 기분이 들었을 터. 그는 "한참 코 찔찔 흘리면서 들어왔던 어린 선수가 어느덧 최고의 선수가 돼서 은퇴하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 내 은퇴식도 생각나면서 감정이입이 됐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 지도자의 길을 가지 않은 이유


2010년 은퇴를 결심했을 당시부터 양준혁은 대부분의 경우처럼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삼성과 협의해 메이저리그 명문구단 뉴욕 양키스 연수까지 계획했지만, 결국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지 않았다. 은퇴 경기 수익금으로 받은 3000만원이 만들어낸 변화 때문이었다.


"야구선수는 퇴직금이 따로 없지 않나. 그래서 사실 3000만원을 살림에 보탤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뜻깊은 데 쓰고 싶어 청소년 야구 대회를 열었다. 동아리 야구대회 같이 중·고등학생들 중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모아서 내 이름을 걸고 개최했는데 애들이 정말 울고불고 좋아서 미치더라. 그걸 보는데 가슴이 막 뜨거워졌다. 그 길로 유학을 포기하고 재단을 만들었다."


8년째 다문화, 탈북민, 저소득층, 결손 가정 아동 120명과 함께하고 있는 양준혁은 솔직히 재단 일이 고달프다고 했다. 120여 명을 먹이고 재우고 야구 장비부터 차량까지 수천만 원씩 나가기 때문. 아직 기부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재단을 꾸려가는 게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보람 덕분이었다.


양준혁은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 멘토링 야구단을 만들었을 때 굉장히 반항적인 아이가 있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내보내려 했지만, 당시 코치가 한 달만 데리고 있자더라. 포기한 채 뒀는데 한 달이 지나니 싹 변했다. 주변에서 또래들이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힘을 북돋워준 게 원동력이었다"라며 "내가 판단을 잘못해서 내보냈다면, 아이의 인생을 버릴 뻔했구나 느꼈다"고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를 언급했다.


물론 지도자의 꿈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현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나름대로 지도자 길을 걷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그는 "해설하다 보면 하루 전부터 밤새다시피 준비해야 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다 보니 팀에 소속돼 있을 때랑 시야가 완전 다르다. 배울 게 정말 많다"고 말했다.


▲ "이종범은 최고 성공한 스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야구선수였던 만큼 그의 주변 사람들도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바람의 신' 이종범과는 같은 방송사에서 해설까지 하며 긴 인연을 자랑하고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라이벌로도 꼽히는 두 사람이지만, 양준혁은 인터뷰 내내 이종범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종범은 참 매력적인 친구다. 너무 괜찮은 친구로 후배들도 많이 따른다. MBC 스포츠플러스에서도 허구연 해설위원 밑으론 이종범이 리더다"라며 그의 인간미를 칭찬했다. 현역 시절 이종범에 대해서도 "한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선수다. 존재감이 정말 엄청났다"며 "내가 감독이라면 나와 이종범 둘 중 100% 이종범을 택한다"고 이종범의 팬을 자처했다.


무엇보다 가장 부러운 것은 아들 이정후였다. 양준혁은 "우리 또래 중에서는 이종범이 최고 성공한 스타다. 본인의 삶도 성공적이지만 아들까지 성공하지 않았나"며 내심 부러움을 내비쳤다. 이어 "DNA가 좋다. 이종범이 특별히 가르쳐 준 것도 없고 스윙 스타일도 완전 다른데 잘 하는 거 봐라. 일본 스타 선수 스즈키 이치로도 이정후 나이 땐 그만큼 못 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 "홈런왕 경쟁? 박병호가 조금 앞설 것"


양준혁은 다가오는 2018시즌은 매우 흥미로울 것으로 전망했다. 무엇보다 박병호(넥센 히어로즈) 복귀로 치열해질 홈런왕 경쟁에 기대감을 보였다. 지난 시즌에 앞서 최정(SK 와이번스)의 홈런왕 여부와 홈런 개수까지 비슷하게 맞췄던 그는 이번엔 박병호가 조금 앞설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는 "올 시즌 홈런왕은 최정과 박병호의 싸움이다. 박병호가 조금 앞설 것 같다"며 "박병호는 배트 플립을 해야 하는 선수인데 메이저리그에선 그걸 못했다. 최정도 올라오는 선수이긴 하지만, 타격 메커니즘만 봤을 땐 박병호가 조금 앞서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못했던 배트 플립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메커니즘으로만 봤을 땐 두산 베어스 김재환도 다크호스로 꼽았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보유한 개인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깰 박용택(LG 트윈스)에게도 관심을 뒀다. 기록이 깨지는 모습이 섭섭하진 않냐는 질문에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며 "박용택과 지난 자선 경기 때 만났는데 내 기록을 깨고 날 초청하겠다더라. 박용택의 첫 룸메이트가 나였는데 자기 루틴이나 훈련 방식, 프로 정신이 참 올곧은 선수였다"고 담담해했다.


내년 시즌 전망과 함께 인터뷰가 끝난 뒤 레전드 야구교실에는 초등학생 무리가 우르르 몰려왔다. 긴 시간 이야기하느라 피곤할 법도 했지만, 그는 아이들을 직접 지도하며 즐겁게 어울렸다. 8년 동안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해왔던 만큼 미혼이지만 아이를 다루는 스킬은 뛰어났다.


그라운드에서도, 그라운드를 떠나서도 묵묵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양준혁은 비시즌 기간 잠시 내려놓은 마이크도 곧 시작될 2018시즌과 함께 다시 잡을 예정이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홈런왕 타이틀을 박병호가 가져갈 수 있을지, '양신'의 해설과 함께할 올 시즌 프로야구가 벌써 기다려진다.


julym@sportsseoul.com


사진ㅣ김도형기자 wayn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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