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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남자 씨름계를 평정한 김진. 사진제공 | 김진

[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40세까지 씨름선수로 활동하고 싶다.”

2017년은 침체돼 있던 씨름계에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 해로 기억됐다. 화려한 기술을 앞세워 생애 첫 천하장사 타이틀을 손에 넣은 김진(29·증평군청)이 그 주인공이다. 김진은 지난해 11월 ‘IBK기업은행 2017 천하장사씨름대축제’ 천하장사 결정전에서 김재환(24·용인백옥쌀)을 꺾고 생애 첫 천하장사의 기쁨을 맛봤다. 1년 넘는 재활 끝에 얻어낸 결과라 더욱 감회가 남달랐다. 스스로도 “처음 장사가 됐을 때 만큼 좋았다”고 말할 정도다. 기나긴 재활의 터널을 벗어나 꽃길을 걷기 시작한 김진을 만나 그간의 씨름 인생과 앞으로 목표를 들어봤다.

◇ 첫 천하장사, 그리고 첫 카 퍼레이드

그간 김진은 천하장사와 인연이 없었다. 백두장사에만 3차례 등극했다. 어떻게 보면 이번 대회가 그에겐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김진은 큰 기대 없이 대회에 출전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진은 “본선 진출해 TV에만 나오자는 게 목표였다. 이번 대회 전까지 허리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감기몸살까지 겹쳐 준비를 일주일 밖에 못했다. 마음을 비우고 나갔다. 그런데 4강까지 갔다. 욕심이 나더라. 그동안 항상 4강에서 졌었다”고 말했다. 결승에서 그는 김재환을 만났다. 김진의 열의는 더욱 불타올랐다. 그는 “김재환은 경기를 파이팅있게 하는 친구다. 그 모습이 예전부터 나를 자극했다. 그래서 항상 이 선수에게는 지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승전 전략은 따로 없었다. 상대의 장점을 아니까 그것만 막으면 쉽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결과가 좋게 나온 것 같다. 나는 몸이 가는대로 경기를 하는 스타일이다. 전략을 세우고 해본 적이 없다”고 돌이켰다.

천하장사 등극은 김진 개인과 증평군청 씨름단 만의 경사가 아니었다. 연고지 증평 전체의 경사였다. 증평군은 김진을 위해 환영행사를 열고 처음으로 카 퍼레이드를 실시했다. 김진은 홍성열 증평 군수와 함께 차에 올라 거리를 순회하며 기쁨을 나눴다. 김진은 “엄청 부끄러웠다. 경기 당일에는 기분이 좋아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루 지나니까 모든 행사들이 부끄러웠다. 이전 백두장사 때보다 훨씬 높게 평가해주시니까 더 부담이 됐다. 그래도 조금 있으니 적응이 되더라. 신경써주셔서 감사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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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이 씨름을 계속하는 원동력은 부모님이다. 씨름으로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김진이다. 사진제공 | 김진

◇ 우연히 접한 씨름, 방황 끝내고 천하장사 되기까지

김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교내 씨름 대회에 나갔다가 1등을 했다. 이후 다른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면서 김진의 씨름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중학교 때 키가 20㎝ 가까이 자라면서 씨름 선수에 최적화된 체격이 완성됐지만 성적이 뒤따르지 않았다. 비전이 보이지 않아 씨름을 포기하고 호주로 갈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부평고 감독의 설득에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그 때부터 김진의 씨름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김진은 “고등학교 2학년 말부터 1등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3학년 때부터 계속 1등을 했다. 3학년 때 잘하니까 좋은 대학까지 가게 됐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김진의 씨름 인생은 순탄하게 풀리지 않았다.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대학에 가선 1학년때부터 잘했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씨름에 소홀해졌다.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다. 3학년 때는 씨름을 안 할 생각으로 도망을 쳤다. 방황을 많이 했다. 집에도 연락 안했다. 가출신고도 들어왔다”고 말했다. 김진의 방황을 지켜본 부모님은 그에게 군 입대를 권유했고, 이미 공익 판정을 받았던 김진은 재검을 받고 현역으로 입대했다. 입대 직전 김진의 어머니는 전역 후 씨름을 다시 하겠냐고 물었고, 김진은 그러겠다고 했다.

김진은 “군 생활을 하면서 살도 빠지고 몸이 좋아졌다. 말년에 증평군청에서 테스트를 봤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라이벌이 거기 있더라. 경기를 했는데 쉽게 이겼다. 그 때 증평군청 씨름단에서 절 좋게 봤다. 하지만 체중이 문제였다. 전역 즈음에 살이 급격하게 쪘다. 감독님께서 ‘이왕 이렇게 됐으니 체급을 올려서 2개 대회만 뛰어보자’고 하셨다. 첫 대회에서 16강에 올랐다. 가능성을 봤다. 2014년 설날대회 때는 4강까지 올라갔다. 떨어져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다음 대회부터는 다 생각한대로 씨름이 되는 거다. 그러다보니 백두장사를 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술술 풀리던 김진에게 슬럼프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2016년 보은 대회에서 무릎 십자 인대를 다쳤다. 김진에겐 큰 시련이었다. 그는 “부상 이후로 모든 것이 다 꼬였다. 나름 고액 연봉자인데 재활하면서 하루에 100원이 없어서 밥을 못먹은 적도 있었다. 엄청 힘들었다. 재활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자신감도 떨어졌다. 그 때 도움이 된 것이 코치님의 조언이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에 마음이 안정됐다. 열심히 노력했고 덕분에 천하장사까지 오르게 됐다”고 말했다.

김진이 씨름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이다. 씨름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그는 “씨름도 부모님이 아니었으면 안했을 거다. 부모님께서 기뻐하는 걸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다. 그 뒷바라지를 다 갚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물론 연승철 감독님과 코치님들께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40세까지 씨름을 계속 하는 것이다. 김진은 “아무리 몸이 안좋아도 40세 전까진 씨름을 하고 싶다. 내가 잘 할 수 있는게 이것 밖에 없다. 은퇴 후 진로도 선생님, 지도자 등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해봤는데 아직 먼 얘기다. 일단은 부상 없이 건강하게 씨름을 계속 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진의 씨름판 꽃길이 이제 막 눈앞에 펼쳐졌다.

superpower@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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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왼쪽)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증평군청 연승철 감독. 사진제공 |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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