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직월드컵우승
김행직이 10일(한국시간) 포르투갈 북부 포르투에서 끝난 2017 포르투 3쿠션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며 웃고 있다. 제공 | 코줌코리아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우승 확정 순간 기억이 안 나네요…얼떨떨해요.”

‘당구천재’ 김행직(25·전남연맹)과 통화가 닿은 건 현지시간으로 10일 오전 8시가 채 안 돼서다. 전날까지 사투를 치른 김행직은 우승의 달콤한 우승의 기쁨을 만끽한 채 잠이 들었다가 다소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우승’ 얘기에 언제 그랬냐는듯 활기찬 어조로 돌변, 영락없는 20대 청년이었다.

김행직이 마침내 시니어 데뷔 이후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에 성공했다. 김행직은 10일(한국시간) 포르투갈 북부 포르투에서 끝난 2017 포르투 3쿠션 월드컵 결승에서 응우엔 꾸억 응우엔(베트남·세계 14위)을 40-34(23이닝)로 누르고 우승했다. 한국 선수가 월드컵에서 우승한 건 고 김경률을 시작으로 최성원 강동궁 조재호 허정한에 이어 김행직이 역대 6번째다. 더불어 최연소 우승자로 기록됐다. 그는 스포츠서울과 단독인터뷰에서 “우승을 확정하기까지 마지막 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저 얼떨떨한 기분”이라며 “(시니어 첫 우승으로) 조금 더 당구에 열정적으로 몰입할 계기가 될 것 같다. 자신감을 되찾은만큼 다시 한 번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교 1학년 시절인 지난 2007년 스페인 세계주니어선수권 챔피언에 오른 그는 2010년 이후 3년 연속 이 대회 정상에 오르며 사상 최초로 4회 우승 대기록을 세웠다. 2015년 아시아선수권을 제패했고 역대 최연소 국내 랭킹 1위에 올랐다. 다만 월드컵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아시아 정상에 오른 2015년 룩소르 대회에서 준우승에 오른 게 최고 성적. 지난해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깜짝 준우승을 하며 다시 한 번 당구 천재의 진면목을 알린 그는 꿈에 그리던 세계 정상에 섰다. 김행직인 자신에게 당구 스승과 같은 아버지 김연구(47) 씨와 지난 1월 스포츠서울과 신년인터뷰를 통해 “새해엔 세계챔피언에 오르겠다”며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6개월 만에 목표를 달성하면서 오는 11월 볼리비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전망을 밝게 했다.

국내랭킹 1위이자 지난 7일 기준으로 세계랭킹 9위였던 김행직은 1~14위에게 주어지는 32강 본선 직행권을 획득해 예선 라운드 없이 토너먼트서부터 출발했다. 32강에서 크레스포 카를로스(스페인)를 40-19로 가볍게 따돌렸고 16강에선 이집트의 강자 사메 시드홈에게 40-32 쾌승을 거뒀다. 8강에선 이번 대회에서 세계 1위 딕 야스퍼스(네덜란드)와 최성원을 연달아 누르며 최대 이변을 일으킨 최완영(충남연맹)과 ‘코리언 더비’를 펼쳐 40-16(22이닝)으로 가볍게 누르고 4강에 올랐다. 상대는 터키의 루트피 세넷. 15이닝까지 23-30으로 끌려간 그는 16이닝에 하이런 8점을 해내면서 31-30으로 경기를 뒤집었고 22이닝에 40점 고지를 밟으면서 36점에 그친 세넷을 눌렀다. 김행직은 응우엔과 결승에서 1이닝부터 하이런 9점을 기록하면서 쾌조의 샷 감각을 뽐냈다. 2~3이닝에서도 각각 3점, 5점을 기록하며 17-3으로 점수 차를 벌렸다. 그러나 응우엔의 집중력도 만만치 않았다. 김행직이 주춤한 사이 9이닝에만 7점을 해냈다. 김행직이 18-20으로 역전을 허용하며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후반에 힘을 냈다. 김행직이 10~15이닝 14점을 추가한 것과 다르게 응우엔은 4점을 얻는 데 그쳤다. 결국 39-28으로 앞선 23이닝 40점 고지를 밟으면서 6점을 추가한 응우엔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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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코줌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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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포르투 3쿠션 월드컵 시상대에 오른 베트남의 응우엔 꾸억 응우엔, 김행직, 허정한, 터키의 루트피 사넷(왼쪽부터). 제공 | 코줌코리아

그는 “솔직히 32강서부터 강자를 피하면서 대진운이 따른 것도 있었다”며 “세넷과 4강이 최대 위기였던 것 같다. 후반 7점 이상 벌어지면서 역전이 쉽지 않다고 여겼다. 다만 지난해 내가 세넷에게 월드컵에서 패한 적이 있어서 ‘포기하지 말자’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 정신력에서 앞섰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잘 나가다가 역전까지 허용하며 흔들린 결승도 마찬가지다. 그는 “18-20으로 뒤지고 브레이크 타임 때 ‘집중하자’, ‘집중하자’ 혼잣말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4대 천왕 중 한명인 다니엘 산체스(스페인)에게 패한 경험이 오히려 약이 됐다고 한다. 산체스는 공격·수비 모두 고려해서 샷에 집중해 상대 흐름을 끊는 데 능숙하다. 반면 응우엔은 공격적인 샷에 능하다. 김행직은 “공격 위주의 선수들은 한 번 잘 맞으면 한도 끝도 없이 점수를 쌓지만 한 번 흔들리면 상대가 기회를 잡는다. 나 역시 역전을 허용했을 때 당황했으나 지난해 세계선수권 결승 때와 다를 것으로 여기고 내 샷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르투만의 테이블에도 적응하려고 애썼다. 그는 “포르투 대회에선 까리뇨라는 제조사가 제공한 테이블을 쓰는 데 반발력도 강하고 각도도 짧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이 역시 지난해 경험한 부분이어서 경기를 거듭할수록 맞춰서 샷을 했다”고 강조했다.

몇 시간 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김행직은 월드컵 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최고 권위 대회인 세계선수권을 향한 의욕을 보였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 지난해 못다한 세계선수권 우승을 위해서 한결같이 매일 큐를 잡겠다.” 그는 대회 우승으로 랭킹포인트 80점을 획득, 세계랭킹 9위에서 5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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