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0_114008
조성환 감독이 10일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귀포 | 김현기기자

[서귀포=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도망 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올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K리그 구단 중 유일한 16강 진출을 이끈 조성환 제주 감독은 “잠은 잘 못 잤지만 괜찮다. 역시 승리가 피로회복제인 것 같다”며 웃었다. 서울과 울산이 조별리그에서 일찌감치 탈락하고 수원 삼성의 통과도 불투명해지면서 제주에 쏠리는 관심이 컸지만 그는 “선수들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이겨냈다”며 자신보다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2015년 부임 첫 해 6강 상위리그 진출, 지난 해 ACL 출전권 획득에 이어 올해 ACL 16강행까지 이뤄낸 조 감독은 10일 서귀포시 클럽하우스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지도자 조성환’을 상당 부분 털어놓았다. 그는 “지금까지는 잘 됐지만 일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이 항상 있다. 다만 어려울 때가 다시 오더라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지난 날을 돌아봤다.

◇한 경기 5골 먹은 뒤 사퇴 고민 “나 아닌 다른 지도자가…”

감독 생활 2년 반이 됐다. 결과만 놓고 보면 순탄하게 걸어온 것 같지만 그에게도 힘든 시기가 여럿 있었다. 그는 “(첫 해)2015년에 상·하위 리그로 나뉘어질 때 어려운 고비가 있었는데 전북을 이기면서 6강에 남았다, 작년에도 여름 되기 전 힘든 상황이 있었다”고 했다. 제주는 2015년 인천에 밀려 하위리그행을 앞뒀으나 33라운드에서 전북을 이기고 인천이 성남에 패하면서 극적인 6강 진출을 이뤘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때는 지난해 8월 17일 승격팀 수원FC와의 원정 경기에서 3-5로 졌을 때였다. 제주는 이날 충격패로 7위로 떨어졌다. 이날 경기를 계기로 제주는 수비를 보강한 스리백 전술을 꺼내들어 다시 3위까지 치솟았다. 조 감독은 “그 때 (작년 5월 사퇴를 발표했다가 철회했던)노상래 전남 감독의 마음을 알겠더라.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팀을 좀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도망가고 싶었고, 놓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제주는 이후 인천전을 1-0으로 이겨 아시아로 가는 반전드라마를 써나갔다. 그는 “작년과 재작년 기억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언젠가 또 안 좋은 상황이 올 것이다”며 ACL 16강 진출로 들 뜰 수 있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실력과 인품으로…“순리대로 간다”

1993년 제주 전신 유공을 통해 프로 입문한 그는 2003년 전북으로 옮겨 1년간 뛴 다음 은퇴했다. 지도자 생활은 1년 전인 2002년부터 전북 코치로 시작했다. 마산공고 코치와 전북 U-18 감독, 전북 수석코치, 제주 2군 감독을 거쳐 2015시즌부터 제주 지휘봉을 잡았다. 바닥부터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는 “‘순리대로 산다’가 좌우명이다”며 “좋은 제의가 들어오더라도 내 위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하질 않았다”고 했다.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4년 말 제주 사령탑 제의를 받게 됐다. 구단 관계자는 “조 감독은 미화나 요리, 잔디 정리 등 구단에서 궂은 일을 하는 분들의 생일 등을 기억해 축하할 만큼 인품이 훌륭한 분”이라고 전했다. 조 감독은 “그 분들이 나에 대한 좋은 말씀들을 하셨다고 들었다. 장석수 사장님께서 날 점찍고 본사(SK에너지)에 가서 승낙을 받아오셨다. 언제 이런 기회가 올까란 생각에 거절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감독직을 맡게 됐다”고 했다. 그 순리를 받아들인 끝에 최근 K리그 클래식에서 주목받는 지도자로 거듭 났다.

◇“선수들을 춤추게 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

조 감독은 “전북이나 제주에 있을 때 깨달은 것은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춤을 추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고 밝혔다. 강압이나 전술 전략도 중요하지만 결국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뛰게 만드는 것이 감독의 몫이고 그 방면에서 자신이 열심히 했다고 전했다. 그는 선수들과 개인으로 혹은 그룹으로 대화도 자주하고 밥도 잘 먹는 등 소통에도 능한 편이다. 조 감독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원칙주의자였다”고 밝혔다. 그는 “예순 넘은 대한항공 배구단 박기원 감독님도 요즘 선수들을 쫓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기사를 봤다”며 “2002년 지도자 초기엔 어리고 능력 있지만 게으름 피우는 유망주들을 들들 볶는 편이었다.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그랬다. 지금은 많이 유연해졌다. 감독이라면 보고도 못 본 척 해야한다. 교정될 수 있고, 팀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인내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성숙한 것 같다”고 돌아봤다.

silva@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