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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배우 김승수(46). 지난 20년간 그보다 화려한 배우는 많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꾸준했던 주연급 배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스포츠맨이었다면 ‘아이언맨’, 회사원이었다면 ‘장기근속왕’으로 불렸을 만한 놀라운 기록의 보유자다.

김승수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여느 배우들과 다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성실’이다. 지난 20년간 단 한해도 작품 출연을 거르지 않았다. 그것도 대부분 주연 아니면 비중있는 조연이었다. 단순히 성실해서만은 불가능하다. 치열한 자기 관리, 연기에 대한 꾸준한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97년 MBC 26기 공채 탤런트 출신인 김승수는 98년부터 올해까지 출연한 드라마만 서른편을 훌쩍 넘겼다. 영화, 연극까지 합하면 거의 마흔 편이 육박한다. 매년 영화나 드라마를 한 두 작품 이상 출연했다. 그의 사전에 ‘장기 휴식’이나 ‘잠수’는 없다. 최근 KBS 2 일일극 ‘다시, 첫사랑’ 종영 기념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는 20년 이상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데 대해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스스로에 대해 “결과에 100%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바꿔보려고 애썼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두려워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애썼다는 점은 칭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처럼 꾸준하게 연기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연기와 촬영 현장을 즐기라는 말처럼 무서운 말이 없다. 촬영을 즐기려면 이전에 뼈를 깎는 노력과 엄청난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시, 첫사랑’을 통해 중년 멜로의 정수를 선보였다는 평이 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줘서 감사하다. 시원섭섭하다. 아마 멜로 역사상 주인공 4명의 평균 나이가 최고령이 아니었을까?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다 끝난 다음엔 편하게 잠 잘 수 있겠구나 싶어서 좋았다. 좋은 분위기에서 멜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좋았다. 마지막 촬영을 한 뒤 배우들끼리 포옹을 하는데 울컥 하더라.

-21년차 베테랑 연기자다. 드라마를 찍을 때 부담을 느끼기도 하나.

잘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연기를 할 때마다 부담이 된다. 연기를 시작한지 21년이 됐는데, 작품을 들어갈 때마다 ‘연기 경력이 저만큼인데 왜 저것 밖에 못하지?’라는 말을 듣게 될까봐 걱정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새 작품을 만날 때는 여유 보다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신인 때와 지금, 연습 과정은 어떻게 다른가.

예전에는 두려움이 워낙 커 그를 대비하는 준비 기간이 길었다. 대사를 NG내면 안된다는 두려움이 컸다. 지금은 작가가 써준 내용과 의미를 제대로 전달 할 수 있는지, 원하는 대로 전달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작품 준비 시간은 예전보다 길어졌다. 물리적으로 대본을 외우는 시간은 점점 길어진다. 걱정도 점점 많아진다. 모를 때는 몰라서 하는 걱정이 있다. 연기를 좀 알게 되면 편하고, 여유있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그만큼 걱정이 많아진다. 나에 대한 기대치 이상은 해야 하니까.

-공채 합격 다음해인 98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연기를 했다. 비결은.

일이 주어진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사실 선택의 순간도 있었다. 할까, 쉴까 고민한 끝에 새 작품에 들어가기도 했다. 내 인생을 길게 봤을 때 내 내 시간을 가지려고 일 포기하는게 맞나 갈등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일하면서 보내는게 현명한 판단이라는 생각에 결국 일을 택했다. 쉬면서 재충전을 할 수도 있지만 재충전을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흘려보내게 된다면 일하지 않은 시간을 후회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일을 택했다.

-김승수처럼 꾸준히 오래 자주 연기하는 배우가 또 있나.

심심해서 가끔 찾아 보면 나 같은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나름 비중 있는 역할을 이렇게 꾸준히 하는 걸 보는 게 쉽지 않더라. 그러나 그런 기록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꾸준히 일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고, 복이다. 한 작품이 끝날 무렵 새 드라마 제안이 와서 시기가 자연스럽게 맞물려온 것에 감사한다.

-슬럼프는 없었나.

슬럼프는 드라마 하는 중간에도 온다. 쉬는 기간이 아니라 촬영 때 오면 달리 극복할 방법 같은 건 없다. 내 경우 슬럼프는 집중력이 결여됐을 때 찾아오더라. 그럴 때 기량 발휘가 잘안되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위축된다. 스스로를 다그치거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거 외에는 답이 없다.

-드라마 한편을 찍으면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다는 배우가 많다. 체력관리나 마인드 컨트롤은.

작품을 마치면 여행을 가고 싶은데 함께 갈 사람이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웃음) 개인적으로 혼자 가는 해외 여행은 좀 아니다 싶다. 여기서도 혼자 밥먹고 다니는데 외국에 나가서까지 굳이 혼자이고 싶지 않다. 체력관리는 딱히 하는 건 없다. 시간 주어질 때 잠을 푹 자려 하고, 잘 쉬려고 한다. 일정이 빡빡하지 않으면 관리 차원에서 운동을 한다.

작품 촬영 기간엔 마인드 컨트롤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번 드라마도 사랑에 대한 감정을 꾸준히 깊게 가져가야 했다. 그래서 쉴 때 드라마 OST를 굉장히 많이 듣고 많이 생각했다. 때로는 캐릭터를 연구하거나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지겹고 싫을 때도 있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 ‘이 작품만 끝내고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달래는 수 밖에.

-선배 중 롤모델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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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꾸준히 연기하시는 선배들이 몇분 안 남아계신데 함께 하다보면 그분들이 왜 남았는지 알겠다. 선배들처럼 노력하면 지금 신인 중 살아남는 이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이 없다. 일부 배우들이 어머니, 아버지 역할을 싹쓸이하는 이유가 있다. 집에서도 현장에서도 엄청나게 연습하신다. 그분들 대본을 보면 일일이 다 적으시고, 밑줄을 그어놓으셔서 고3 수험생의 교과서 같다. 젊은 연기자들은 세트 촬영 시 힘든 신이 걸리면 잠깐 세트장에 나와 대충 합을 맞춰보는 게 다인데 선배들을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앉아계신다. 그리고 끊임없이 마인드 컨트롤하신다. 그런 분들만 남아계시더라.

열심히 잘하는 후배가 많지만 일부 후배의 대본을 보면 창피하다. 후배 중에는 자기들이 못하고 두려워해서 선배에게 연습하자는 말을 못꺼내는 경우가 있다. 남의 눈이 의식되는지 드러내 놓고 연습하지 못하더라. 다른 사람 앞에서 연습을 못하는데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연기를 하나.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틈날 때마다 ‘현장에서 막 연습하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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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연기 조언은 무엇인가.

‘즐기면서 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게 무서운 말이다. 준비가 제대로 안돼 있으면 즐길 수 없다. 흔히 ‘촬영 현장에 빨리 나가고 싶어 미치겠는 마음을 갖는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연습량이 없으면 촬영 현장에 나가는 게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촬영장은 나를 평가 받는 무서운 자리다.

빨리 촬영장에 나가고 싶다는 설렘을 가질 정도가 되려면 뼈를 깎는 준비 과정, 엄청난 연습량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감과 안도감을 갖고 현장을 즐길 수 밖에 없다. 얼마나 내가 하는 작품에 애정을 갖고 열정 갖고 쏟느냐도 중요하다.

-연기 경력 21년째다. 스스로의 지난 시간을 평가한다면.

나는 분명 배우를 잘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낯섦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낯가림이 심하다. 그리고 주저하고 힘들어한다. 그러나 나의 단점과 약점을 무너뜨리고, 깨뜨리고, 나아지려고 애써온 시간을 보낸 데 대한 보람은 있다.

좀 다른 성격이었다면 좀 더 풍부하게 즐겼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애써온 부분에 대해 애썼다고, 노력한 부분에 대해 고생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결과에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를 바꿔보려고 애썼다. 어려운 것을 두려워 하거나 그것에서 도망가지 않았다.

-앞으로도 작품 사이 공백기를 최소화할 계획인가.

체력적으로 연기력을 발휘하는데 문제가 없으면 그러고 싶다. 기량 발휘를 하려면 체력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욕심만으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얘기가 오가는 작품이 2~3개 정도 있는데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영화도 스케쥴이 맞으면 작은 역할이라도 너무 하고 싶다.

시청자와 자주 만나는 게 중요하다. ‘신비주의’와 비교하면 각기 장단점이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자주 뵙는게 좋다. 배우로서는 늘 알아봐주시는 게 좋다. 연기를 꾸준하게 하니 스스로 ‘성실하게 사는구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20년 후에도 연기를 하고 있을까.

욕심은 그렇다. 지금까지도 두려워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만둘까?’, ‘어떻게 해나갈까?’ 고민하며 하다 보니 조금씩 달라지더라. 뭔가를 깨뜨리면서, 달라지는 걸 보니 계속 하고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다 보면 다음 20년 동안도 계속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어떤 배우란 말을 듣고 싶나

철 없을 때 ‘바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한적이 있는데 참 잘 말한 것 같다. 바다처럼 넓은 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바다처럼 그리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바다’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리워진다. 생각하면 ‘지금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배우라면 좋겠다. 조금 편안하고 그리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SH엔터테인먼트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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