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승훈.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삿포로=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한국 동계아시안게임 역사에 ‘이승훈 시대’가 열리고 있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간판 이승훈(29.대한항공)이 동계아시안게임 2연속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승훈은 22일 일본 오비히로 포레스트 오벌에서 열린 제8회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와 팀추월 경기에서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틀 전 5000m에서 이 대회 첫 ‘금빛 레이스’를 펼친 그는 대회 3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이승훈은 6년 전 아스타나-알마티 대회에서도 5000m와 1만m,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회 연속 3관왕 역사를 쓴 셈이다. 이승훈은 1만m에서 13분18초56을 기록, 츠치야 료스케(일본·13분23초74)를 제치고 우승했다. 2조에서 호주의 카포니 조쉬아와 레이스를 펼친 그는 전구간 안정적으로 달렸다. 4400m서부터 모든 랩타임을 31초대에 끊는 저력을 뽐내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름세는 팀추월로 이어졌다. 주형준(동두천시청) 김민석(평촌고)과 2조에서 카자흐스탄과 겨뤘다. 남자 팀추월 대표팀은 첫 바퀴를 31초96에 통과한 뒤 2바퀴를 27초69에 주파했다. 이승훈이 4바퀴 통과지점에서 치고나가며 레이스를 이끌었고 3분44초68을 기록, 은.동메달을 각각 따낸 일본(3분45초93) 카자흐스탄(3분59초37)을 여유있게 따돌리고 우승에 성공했다.

6번째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거머 쥔 이승훈은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안현수(빅토르 안)가 보유한 이 대회 한국인 통산 최다 금메달(5개)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승훈은 2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매스스타트에도 출전할 예정이다. 만약 매스스타트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면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4관왕에 오르게 된다. 또 동·하계 아시안게임을 합쳐 한국 스포츠사를 새로 쓰게 된다. 이제까지 하계 아시안게임에서 최다 금메달을 기록한 이는 서정균(승마)과 양창훈(양궁) 박태환(수영)으로 모두 6개다. 이승훈이 매스스타트에서 한국인 아시안게임 출전 사상 첫 ‘7번째 금메달’을 손에 넣을지 관심사가 됐다.

[SS포토] 남자 팀추월, 오늘은 명예회복!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의 이승훈(가운데)과 주형준, 김철민이 지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소치 해안 클러스터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팀추월 경기에서 질주하고 있다. 2014.02.21. 소치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부상을 스스로 이겨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승훈은 지난 10일 강릉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선수권 남자 팀추월 도중 링크에 넘어졌다. 오른쪽 정강이를 자신의 스케이트날에 베이는 부상을 입었다. 8바늘을 꿰매는 응급처치를 받았고 이후 제대로 훈련도 못했다. 뜻밖의 상황이었고, 이승훈 스스로도 상실감이 컸다. 애초 동계아시안게임은 1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한 과정으로 여겼다. 그래서 주변에선 부상 악화를 염려해 이승훈에게 아시안게임 출전을 포기하라는 조언도 했다. 그 역시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고 달리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부상 부위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레이스에 큰 문제가 되지 않자 아시안게임 출전을 결심했다. 팀 추월 금메달을 바라보고 삿포로로 온 후배들에게 피해를 줄 순 없었다. 금메달 15개를 목표로 내건 한국 선수단 전체 목표에도 그의 결장은 큰 차질로 연결된다. 책임감을 품고 삿포로로 온 이승훈은 열흘 만에 대반전을 이뤄냈다. 5000m와 1만m에 이어 종목별 세계선수권에서 자신에게 부상을 안긴 팀추월 금메달까지 일궈내 크게 웃었다.

이승훈은 “(20일) 50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1만m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여 출전을 결심했다”며 “작전대로 좋은 성적을 거둬 기쁘다”고 말했다. 또 “태극기가 일장기 사이에 올라가 기분이 좋았다”면서 ‘유종의 미’와 함께 1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 선전을 다짐했다.

이승훈
이승훈(왼쪽)이 지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30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시상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밴쿠버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이승훈은 인생 자체가 드라마다. 원래 쇼트트랙 선수였던 그는 2009년 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진 뒤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선수로 전향,곧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어 이듬 해 밴쿠버 올림픽에서 5000m 은메달, 1만m 금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일궈냈다. 남자 장거리를 휩쓰는 네덜란드 선수들에 대항할 유일한 스케이터가 바로 이승훈이었다. 불굴의 정신은 2017년 초에 다시 위력을 발휘했다. 출전의 갈림길에 섰던 그가 3관왕 등극을 통해 스스로의 운명을 또 바꿨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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