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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제가 저렇게 엉뚱하게 말하는지 정말 몰랐어요.”

지난 21일 SBS 리얼리티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 출연해 화제가 된 양수경에게 방송 직후 전화를 걸었다. 양수경은 “왜 사람들이 나를 보며 웃는지 몰랐는데 내가 엉뚱한 면이 있나보다”라며 어리둥절해 했다. 이날 프로그램 방송 시간 내내 양수경의 이름은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했다.

지난해 17년만에 가요계에 복귀한 양수경은 사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가수가 아니다. 80~90년대 전성기 때도 그랬고, 방송 복귀 후에도 그랬다. 예능 프로그램에 마지막으로 출연한 본인 기억은 23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 그가 SBS 리얼리티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최근 알려졌을 때 많은 팬들이 어리둥절해 했다. 예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하이틴 스타들이 1박 2일의 여행을 떠나 서로 자연스럽게 알아가며 진정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는다는 프로그램 취지와 양수경이 쉽게 연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남편과 사별한 뒤 세아이를 혼자 키우는 그가 다른 출연진들과 어울려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다.

지난 21일 방송된 프로그램에서 양수경은 그런 우려와 기우를 씻어내며 오랫동안 숨겨온 예능감과 전남 순천 출신다운 화려한 요리 솜씨를 뽐냈다. 양수경은 어떻게 이 프로그램 출연을 결심하게 됐을까.

다음은 이날 방송 직후 전화 통화 내용.

-예능 출연이 얼마만인가.

거의 없었다. 90년대 초반(94년 무렵) MBC 코미디 프로그램 ‘오늘은 좋은 날’의 인기 프로그램 ‘별들에게 물어봐’에서 이경규와 연기한 이후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기억이 없다. ‘별들에게 물어봐’로 화제를 모았는데 막내 동생이 내가 그 프로그램에서 바보 같은 캐릭터로 나와 창피해서 학교에 못가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후 그런 프로그램에 안나갔다.

그때는 가수는 노래만 하면 되는 시대였다. 겸업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잠시 일탈을 꿈꿨지만 친동생이 싫다니까 더이상 출연하지 않았다. 워낙 가수 활동도 바빴다. 당시 풍토상 가수가 코미디 프로그램에 가끔 게스트로 출연하긴 했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개그맨의 주무대였다.

-예능 중에서도 ‘불타는 청춘’은 양수경이 출연을 결심하기 쉽지 않은 프로그램으로 보이는데.

7개월 동안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 정주미 작가에게 계속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왔지만 만나거나 전화로 계속 거절 의사를 밝혔다. 혼자 살게 된 뒤 방송에 나가 밝게 웃는다는 게 내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늘 마음이 슬픈데 TV에서 밝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출연진의 ‘썸’보다는 새로 사귄 친구들끼리 힐링하러 가는게 프로그램 취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서서히 마음이 바뀌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했다. 그런걸 너무 안하고 혼자 지내는게 좋은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세 아이를 지켜야 한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말을 하면서도 정작 내게 주어진 일, 나를 원하는 프로그램을 거절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도 생각하게 됐다. 내게 주어진 일이 있다는 것, 그걸 행복해 하며 하는 것이 의미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화 오전 (4)

-결정적으로 출연 결심을 굳힌 계기가 있나.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게 나를 보며 용기를 얻으라고 말을 하면서도, 정작 나는 혼자 있더라. 그럼 안되겠다 싶었다. 내 말과 행동이 다른 거니까. ‘불타는 청춘’ 정주미 작가가 “언니, 사람들이 많이 언니를 그리워해요. 우리 프로그램 나온다고 꼭 다른 출연자와 ’썸‘타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제 밝게 사세요. 언니, 이제 막 웃어도 돼요. 혼자 있지 마세요”라고 해준 것도 마음을 움직였다.

아이들을 지키는 방법은 열심히 일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요즘은 예능을 빼면 가수가 설 수 있는 방송 무대가 거의 없다. 가수로서 내 존재감을 알릴 방법이 별로 없더라. 스스로 내 근황을 알리고, 존재감을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적극적인 홍보의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최근 하게 됐다.

-아버지, 친동생, 남편을 떠나보내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은 뒤 대인기피증,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가능한가.

어릴 때부터 처음 본 사람과는 말을 안했다. 혼자 조용히 있는게 익숙했다. 말이 많아지면 실수가 생기니, 말을 적게 하는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는게 쉽지 않다. 입으로는 웃는데 마음은 쑥스럽다. 나는 혼자 집에 있어도 심심한 걸 모르는 사람이다.

공황장애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혼자 있을 때 갑자기 증상이 오기도 한다. 그런데 제 아무리 공황장애라도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을 많이 겪다보니 아무 것도 아니게 느껴지더라. 너무 해야 할 일이 많고,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큰 상태에서는 공황장애 증세도 비켜가는 것 같다.

최근 들어 사람들과 마주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불타는 청춘’에서 언급했듯 몇년 동안 술을 많이 마셨다. 때로는 한잔 술이 친구보다 따뜻하다고 느꼈는데, 사실 이 말은 너무 외로운 말이다. 요즘 서서히 사람들의 따뜻함을 느끼고 있다. 따뜻한 사람들이 옆에 있어도 내 시선이 닫혀 있어 못 쳐다 봤는데 세상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이젠 술을 잘 안마신다. 막걸리 정도만 먹는다.

-자제분들의 반응이 궁금하다.(양수경에겐 세명의 아이들이 있다. 아들 하늘(21), 준호(17)와 딸 채영(19)인데 모두 미국에 체류 중이다. 그중 그가 낳은 아이는 막내 준호 군 뿐이다. 동생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동생이 낳은 아들 하늘씨와 딸 채영 양을 입양했다.)

아들들은 관심이 아예 없다. 막내 준호는 거의 TV를 보지 않는다. 딸 채영이는 내가 ‘불타는 청춘’에 나간다니 처음엔 “미쳤어?”라며 놀라더라. 출연자들끼리 ‘썸’을 타는 게 아니냐는 인식을 채영이가 갖고 있었다. 악성 댓글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채영에게 “나 벌써 5년이나 됐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서 힐링을 한다는 방송 의도를 설명해줬다. 그러니 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 이젠 재밌게 살아”라고 해주더라.

monami153@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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