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김종철기자] 패션마케터 김모 씨(29·여)는 대학 시절 90㎏에 육박한 몸무게로 친구들의 놀림을 받아야 했다. 패션디자인과를 다녔던 터라 ‘돼지가 왜 디자인과에 왔느냐’며 모욕적인 말을 종종 들어왔다. 독한 맘을 먹고 1여년에 걸쳐 35㎏ 감량에 성공했다. 큰 키 덕분에 ‘옷발 산다’며 졸업전시회 패션모델로 설 정도로 스타일이 살아났다. 김 씨는 이후 ‘절대 살이 찌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이같은 강박 때문에 생활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항상 무언가를 먹으면 살이 찔 것 같은 강박에 운동중독 증세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나보다 몸이 좋은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까내리고 싶고, 그 사람보다 더 좋은 몸매를 유지해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자꾸 든다”고 말했다.


다이어트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는 저체중을 유지하고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실질적 체중감량보다 심리적 안정이 더 필요한 경우다.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은 2007~2012년 국민건강영조사에 참여한 19~69세 저체중 성인 남녀 1천122명(남 148명, 여 974명)을 저체중인데도 살을 빼려고 한 그룹(101명)과 그렇지 않았던 그룹(1천21명)으로 나눠 연구한 결과 전자는 후자에 비해 자살성 사고를 경험할 위험이 2.5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일상생활 중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도 2.2배 높았다.


유은정의좋은의원의 유은정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비만과 식사장애는 정신의학 교과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정신질환이 됐다”며 “과도한 외모스트레스는 정신 건강을 해치기 마련이며 무리한 다이어트를 반복하거나 살이 찌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낀다면 다이어트강박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진단명으로 등재되지 않았지만 다이어트강박은 살이 찌면 안 된다는 ‘체중강박’, 먹고 나서 꼭 칼로리를 소모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운동중독’, 식욕억제를 위한 ‘약물중독(설사약 이뇨제 식욕억제제 등)’, 늘 칼로리를 체크하느라 타인과 외식을 하지 못하는 ‘식단중독’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심해지면 살이 찐 내 모습을 들키기 싫은 마음에 대인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우울감에 시달리고, 폭식증·거식증·구토 등 섭식장애가 유발되거나, 과도한 운동으로 신체손상을 겪는 등 자신을 해치게 된다.


다이어트중독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탓에 위험에 노출된 것을 인지하기 힘들다. 다이어트강박이 과도해지면 중독을 관할하는 뇌 부위인 ‘측핵’이 활성화된다. 게임중독, 도박중독, 쇼핑중독 등이 나타날 때와 같은 부위다. 더욱이 도박·쇼핑 중독 등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고 금전적 어려움을 동반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반면 다이어트중독은 스스로에게만 국한되다보니 중독에 빠지고도 자각하기 어렵고 숨기기도 쉽다.


다이어트중독으로 몸이 날씬해져도 마음이 병들어있다면 자신을 파괴하거나 요요현상에 시달릴 수 있다. 유은정 원장은 “건강한 다이어트에는 적절한 식이요법과 운동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마음훈련’도 중요하다”며 “긍정적 보디이미지를 심어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강박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이어트의 성공을 좌우하는 게 ‘식욕억제’다. 현대인은 진짜 배가 고파서 식욕이 생긴다기보다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한 가짜식욕에 노출된 경우가 적잖다. 이를 제대로 구분하는 게 다이어트의 시작이다.


유 원장은 “식욕조절 중추는 ‘뇌’인 만큼 스트레스가 심하면 위장이 가득 차도 뇌에서 배가 불렀다는 신호가 전달되지 않아 ‘심리적 허기’를 느끼게 된다”며 “비만치료제에 신경정신과 약물이 많이 처방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럴 경우 ‘마음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식욕을 조절하는 뇌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여러 물질을 관리하기 위해 식습관을 비롯한 숙면, 휴식, 운동, 성생활 등을 균형 잡히게 조절해 ‘생활습관’ 자체를 교정하는 것이다.


유 원장은 “식욕억제제를 복용하거나 지방흡입수술로 급한 불을 끌 수 있지만 이들 방법은 평생 유지되는 다이어트로 보기는 어렵다”며 “비만치료제를 복용하며 체중을 감량한 사람을 2년 동안 추적 연구한 결과 50%에서 다시 체중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이어트 실패 및 중독의 주범으로 ‘스트레스’를 꼽는다. 스트레스호르몬과 싸워서 이겨내는 행복호르몬 ‘세로토닌’을 유발하는 생활습관을 길러야 한다. 숙면을 취하고, 햇볕을 쬐면서 산책을 하거나, 명상에 나서며, 유익한 단백질을 섭취하는 게 필요하다.


유은정 원장은 다이어트를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본다. 과식하지 않는지, 잠은 잘 자는지, 피곤하지 않은지 등을 점검하며 최선의 컨디션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이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체중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를 갖고,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다. 가령 하체가 통통한 여성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받아들이되 ‘손목이 가늘다’거나 ‘허리가 날씬하네’ 같은 자신의 장점을 찾아내는 식이다.


유 원장은 “자존감은 다이어트의 핵심이어서 병원에서 다이어트치료를 할 때도 자존감 회복에 초점을 맞춰 심리치료를 병행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자존감으로부터 나를 위한 모든 노력과 행동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유은정의좋은의원과 부설상담기관 굿이미지심리치료센터는 다이어트 및 폭식증에 대한 솔루션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폭식증치료제인 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 처방과 자존감심층 프로그램, 체형관리 프로그램 등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다이어트 치료에 나서고 있다.


뉴미디어국 jckim99@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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