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호의 당구 이야기①] 국내 당구 '르네상스' 맞다
    • 입력2017-01-06 06:30
    • 수정2017-01-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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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2만5천여 클럽과 1천200만의 동호인. 최근 경제적으로 안정된 50, 60대가 다시 당구장을 찾고 금연 문화 등이 정착되면서 당구가 르네상스를 맞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회적 냉대 속에서 주목을 받지 못 했던 당구가 허정한 등 국내선수들이 세계대회에서 잇달아 선전하면서 재조명 받고 있습니다. 이에 스포츠서울은 국내 당구의 역사와 문화, 각종 기록, 또 전설적인 선수들의 활약 등을 알아보는 당구연맹 박태호 수석 부회장의 ‘당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국내 당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독자 여러분을 재미있는 당구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가로 142.2㎝, 세로 284.4㎝, 쿠션 44하드니스, 쿠션 높이 37㎜의 당구대에 직경 61.5㎜의 공 3개가 어우러져 무한대의 그림을 그려가는 당구. 하나씩 그림을 맞춰 가는 지루함 속에서도 극적인 장면의 연출로 쾌감을 느끼게 되는 스포츠가 당구이다.


흔히 당구를 인생역정에 비유한다. 산 넘고 물 건너 만고풍상을 겪는 인생처럼, 정해진 점수에 도달하기 위해 ‘게임오버’ 콜이 나올 때까지 온갖 작전을 펼쳐 나가며 겪는 체념과 환희, 울분과 기쁨의 파노라마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기 때문이다.


당구는 수구를 전진시키기 위해서도, 후진시키기 위해서도, 또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보내기 위해서도 큐를 밀어야 하는 역설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이중성이 많은 운동이다.


철학적인 면과 달리 기술적인 부분, 즉 운동학적 측면의 당구는 아직까지 확실한 이론체계가 자리 잡힌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구가 물리학, 기하학, 수학이 병합된 운동으로 어떻게 개개인에게 적용하는가가 중요한, 특수성이 많은 종목 중 하나라는 것이다.


당구는 중독성이 강해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당구 선수로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내에서 당구는 그동안 사회적인 냉대 속에서 크게 대접 받는 종목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기에 꾸준히 역사가 이어졌고 지금의 한국 당구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16년도 마지막 대회인 후루가다 세계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허정한 선수.


한국 당구는 세계에서 유래 없이 많은 당구클럽이 운영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경기력과 동호인들을 보유한 ‘당구 천국’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이상천 선수가 탄생했고, 김가영 선수가 만들어졌으며, 김경률 조재호 허정한 강동궁 최성원 김형곤 이충복 김재근 김행직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나올 수 있었다.


어느 종목이든 역사가 없는 종목은 비극이며 그 종목의 발전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한국 당구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정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어떻게 당구를 쳤고, 또 어떤 역할을 했으며,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등을 최소한 후배 선수들만이라도 알 수 있게 ‘역사’가 기록되어야 한다.


당구는 2005년 2월 대한체육회 50번째 정가맹 단체로 승인되며 제도권 진입이 늦은 종목이다. 그 전까지는 사회에서 당구를 치다가 자질이 있는 선수들이 선수회에 가입하면서 선수란 타이틀이 주어졌는데, 위계질서나 선수들 간 동질감이 다른 종목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대선배들이 후배들의 경기 모습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아도 그들이 일반인인지 아니면 선수 출신인지 후배들이 알아보지 못 하는 안타까움도 계속 되고 있다.


당구인이라는 자긍심 하나로 일생을 보내면서 우리 곁을 떠난 선배 당구인들도 있었고 평생을 당구와 함께 하면서도 명성도 얻지 못하고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는 당구인도 적지 않다. 큰 명성을 얻었던 당구인이 후배 당구인들의 무관심 속에 쓸쓸하게 우리 곁을 떠나기도 했다. 가족들은 가장이 당구인으로 평생을 보냈지만 장례식장에 당구인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구를 어떻게 평가를 할까 생각하면 두려움도 적지 않다.


2007년 수원월드컵 경기장 로비에서 조문환 선수와 황득희 선수가 예술당구를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2만5천여 당구 클럽과 1천200만 당구 동호인이 활동 중이다. 최근 경제적으로 안정된 50대에서 60대가 당구장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으며 가장 큰 문제였던 금연 문화도 조성되는 등 분위기가 새로워지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인프라와 당구에 대한 인식의 변화 속에서 국내 당구가 한층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박태호의 당구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국내 당구 역사의 기록은 1987년 언론인 출신 김기제씨가 ‘월간당구’를 창간하면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으며 당구소식지를 발행하는 ‘큐 스포츠’ 방기송 편집장 역시 당구에 관한 기사를 지면에 실으면서 자료로서 충분한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당구 이야기’ 연재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고 객관적인 신뢰성도 제공했다. 이들에게 다신 한번 감사드린다.


<박태호 당구연맹 수석 부회장> new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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