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영옥

[스포츠서울 김효원 대중문화부장]도올 김용옥(68)교수가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감독 류종헌, 제작 후즈닷컴, 배급 시네마달)을 통해 대한민국에 ‘고구려’라는 화두를 대한민국에 제시했다.

영화는 도올이 중국 연변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던 지난 2014년 제자들과 함께 중국 대련(요동반도)에 산재한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는 과정을 95분의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도올은 현재 중국 땅에서 방치되고 있는 고구려 유적 광개토왕 사면석비, 환도성 무덤, 발해의 두번째 수도 서고성 터 등을 둘러보고 난 뒤 고구려야 말로 세계 그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진취성과 기상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가가 혼란에 빠져있는 현 시점에서 고구려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도올은 “고구려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대사다. 고구려 역사를 바로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고 진취적인 세계관으로 세계를 무대로 재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으로 데뷔한 소감이 궁금하다

이 영화로 독립영화라는 세계를 처음 알게 됐다. 요즘 영화 GV(관객과의 대화) 끝나고 뒤풀이하고 술도 한 잔 먹을 기회가 생기고 그런다. 상당히 내 생활 리듬이 깨지는 건 사실인데 그러나 괜찮다. 즐거운 일이다. 어떻게든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 교육청에서도 상당히 건강한 영화라고 했다. 중고등학생들이 단체관람하기 좋은 작품이다. 책은 한 번 쓰고 나면 서점에 계속 있는데 영화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 남아있지 않고 내려버리니 제약이 너무 많다. 책을 쓰면 1만부는 후딱 나가는데 독립영화는 1만명이 들기 어렵다고 한다. 책 만드는 거에 비해 영화 만드는데 돈도 많이 드는데 1만명 관객이 힘들다니…. 최순실이가 농간하는 돈의 코딱지만큼이라도 독립영화에 지원해야 한다. 독립영화는 우리 문화의 근간이 된다. 한편당 1억씩만 지원해서 일년에 100편만 만들어도 100억이다. 100억이면 한국을 전세계에 알리고 세계 영화팬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 반드시 나온다.

-국정농단 사건 뿐 아니라 헬조선 등 국민 노릇하기 힘든 시대다. 지금 왜 고구려일까?

고대사라는 게 신비감에 쌓여있거나 신화적 표현속에서 먼 이야기처럼 되어 있거나, 아주 편협한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종교와 결부돼 있거나 그렇다. 우리 역사를 통사로서 제일 먼저 쓴 것은 일본 학자들이다. 고대사는 우리가 직접 느껴보는 것이 아니라 왜곡되거나 가려져있다. 그러니까 우리 젊은이들,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기 뿌리를 실감하지 못한다. 한민족이라고 하는, 한 언어 공동체라고 하는 이 의식을 고구려 역사를 통해 보다 실증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지시키고 싶은 것이 이 영화가 노리는 점이다.

지금 북한을 배제하고 종북이니 반공이니 이런 이름으로 북풍을 일으키고 하는 것은 암암리에 우리 의식속에서 고구려를 배제하는거다. 이렇게 살아선 안된다. 독일 사람들은 그 어려운 분단에서도 자기들 역사를 올바로 알고 동독에 대한 끊임없는 왕래와 정보를 통해 통일 독일을 이룩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고대사 회복이라는 것은 오히려 21세기적 삶의 장을 바르게 회복하는 것이다. 21세기는 좁은 민족개념이나 국가개념으로는 살 수 없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하나의 거대한 한민족 문화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좁은 의미의 국가개념을 넘어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을 우리 한민족의 삶의 터전으로 포섭해야 한다. 우리는 결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작은 영역에 갇혀있던 민족이 아니다. 우리 역사의 본래 모습을 회복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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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고구려 유적을 둘러보면서 감탄을 거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에는 어머어마한 고구려성이 사방에 널려있다. 천리장성이라고 연개소문이 성끼리 연결시킨 것도 있다. 우리나라를 표현하는것은 코리아다. 코리아는 고려에서 나왔다. 고려는 고구려에서 나왔고. 신라중심사를 한국역사의 정통으로 아는 건 편협하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큰 염려는 없다. 고구려 역사를 보고 가슴이 뛰는 것은 중국인이 아니라 우리다.

고구려 기상은 어떤걸까?

고구려인은 중국도 변방으로 인식했다. 광할한 세계를 자기 삶의 주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우리를 왜소하게 바라보고 있다.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제대로 된 지도자만 뽑히면 가장 먼저 남북화해를 하고 우선 학문적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북한학자들의 연구도 활발하게 소개가 돼야 하고 일본 학자들, 중국 학자들의 연구 성과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북한을 달래서 세계 시민으로 만들어 주면서 핵이라는 것도 해법을 찾아야한다. 북한을 잘 달래서 인정하고 포용해주면 새로운 대화의 길이 열리지 않겠나.

우리가 그런 방식으로 진전시킬수 있는 것을 통일대박 운운하면서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면 안된다. 북풍을 전제로 한 정책을 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사기꾼이라는 국민의 자각이 깊어져야 한다. 남북화해를 통해 동북아의 주축으로서 우리 한국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시켜야 한다. 이것이 역사학도 손에서만 이뤄질 수 없고 문학이나 예술, 철학 , 종교, 사학 등 모든 측면에서 동시에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상당히 좋은 교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박근혜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헌정 사상 최대 인원을 돌파하며 지속되고 있다

지금 촛불집회가 혁명으로 불린다. 지금 촛불집회는 헌정 질서 속에서 실행되는 과정이기에 프랑스 혁명보다 더 세계사적으로 의미있다. 이런 세계사 속에서 우리가 또 다시 로베스 피에르 같은 놈을 뽑아서는 안된다. 우리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다음 차기 대통령을 비전을 갖춘 좋은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나는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기준으로 세가지 조건을 꼽는다. 하나는 경제민주화. 한국 사회 양극화를 착실하게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역사를 진전시켜야 한다. 그러면서 재벌 기업들의 모든 행태를 합법적 질서속에 가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벌을 해체시켜야 한다. 그래서 재벌이 법적인 질서를 그대로 정확하게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는 남북화해다. 남북 통일이라는 말은 안쓰더라도 휴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만들고 최소한 세계에다가 우리는 남북화해를 지향하는 민족이라는 걸 선포해야 한다. 세번째는 풍요로운 농촌을 건설해야 한다. 땅이 기본이다. 이명박 정부가 개천에 퍼부은 돈의 10분의 1만 들이면 된다. 농촌은 우리의 먹거리를 생산한다. 국가가 농촌을 풍요롭게 만드는 정책을 만들지 않고서는 우리나라는 끊임없이 예속된다. 농촌을 무조건 살리고 봐야 한다. 4차산업 같은 개똥같은 소리 말고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꿈을 키우게 새로운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 세가지를 구현하지 못하는 대통령은 이 시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수차례 촛불집회에도 끄떡없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말씀 하신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빨리 깨끗하게 하야를 할수록 사는 길이다. 지금 바울의 로마서 강의를 쓰고 있는데 그것의 테마가 그야말로 빨리 죽는 게 사는거라는거다. 어느 시점에서든 하야 하는 건 기정사실인데 그럴려면 빨리 하는 게 본인을 위해 좋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세상에 알린 건 JTBC의 역할이 크다. JTBC와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에 대한 생각은

JTBC가 잘하고 있다. 또 손석희 사장은 항상 격려하는 입장이다. 그런 상식을 가진 사람이 지금 단단한 조직을 배경으로 해서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역사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개인의 역량 뿐 아니라 조직이 같이 하고 있다. 그런 게 역사에서 항상 중요하다. 대단한거다. 하나의 역사적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언론들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

-도올 김용옥으로 사는 삶의 기쁨과 어려움은 무엇일까

나는 희비가 없는 사람이다. 살아가는 게 균일하다. 휴일도 없고 그야말로 항상 공부하면서 산다. 항상 책을 본다. 매일 기초적인 내 생활의 습벽이라는건 책을 보는 생활이다. 사람 만나서 슬프고 이런 것들이 별로 없는 생활이다. 다만 요즘 젊은이들이 종이책을 너무 안봐서 걱정이다.

-또다시 영화 요청이 온다면 다시 할 생각이 있나

영화를 보니까 내 얼굴이 상당히 밝고 릴렉스된 상태에서 이야기하더라. 이번 영화는 내가 답사 다니는 걸 제자들이 찍은 걸 가지고 만든거다. 앞으로 그런 좋은 테마가 떠오르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역시 책을 통해서 세상과 교섭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로마서 주해를 쓰고 있다. 집필을 끊임없이 할거다.

eggrol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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