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
KB스타즈에 지명된 여자농구 차세대 센터 박지수와 아버지 박상관씨 . 2016.10.26. 분당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선수에게 몸은 절반이다. 그 몸은 하늘에서 물려 받았다. 농구 선수 아버지와 배구선수 어머니의 장신 DNA는 딸의 몸에 그대로 이식됐다. 열 여덟 농구 소녀의 신체조건은 환상,그 자체다. 키 195cm, 체중 80kg.대형 센터 부재로 속태웠던 한국 여자 농구계로선 한 줄기 빛이다. 그러나 스포츠는 몸이 전부가 아니다. 천부적인 몸에 땀과 열정이 더해져야 한다.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라 일컬어지는 박지수(18·분당경영고 3년)는 그런 점에서 발전 가능성이 더욱 높은 선수다. 몸보다 땀을 더 믿으며 열정과 꿈을 동력으로 삼아 자신을 향해 매서운 채찍질을 가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SS포토]
KB스타즈에 지명된 여자농구 차세대 센터 박지수와 아버지 박상관씨와 여자배구선수 출신인 어머니 이수경씨 . 2016.10.26. 분당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박지수의 스타성은 이미 지난 6월 프랑스 낭트에서 열렸던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입증됐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앳된 소녀가 대표팀의 골밑을 책임지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뽐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박지수는 당시 5경기에서 평균 7득점 10.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리바운드(예선)는 유럽에서 정상급 센터로 평가받는 옐레나 루찬카(벨라루스)와 공동 1위에 올랐다. 블록슛도 1.6개(3위)나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감각을 뽐냈다.

박신자~박찬숙~성정아~정은순~정선민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여자농구 대형 센터 계보의 적자로 거명되고 있는 박지수는 지난달 17일 WKBL(여자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예상했던대로 전체 1순위로 KB 국민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KB 국민은행은 단박에 리그 판도를 뒤흔들 다크호스로 떠올랐고 박지수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프로무대 입성을 자축했다.

WKBL은 지난달 29일 개막했지만 박지수는 청소년대표팀 합숙훈련에 묶여 아직 데뷔전을 치르지 못했다. 박지수는 오는 13일부터 20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시아청소년대회에 출전한 뒤 프로데뷔전을 치를 예정이다.

[SS포토]
KB스타즈에 지명된 여자농구 차세대 센터 박지수와 아버지 박상관씨 . 2016.10.26. 분당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대물’ 박지수를 만나기 위해 청소년 대표팀 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분당 청솔중학교를 찾았다. 신인드래프트 이후 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버지 박상관(47) 전 명지대 감독과 배구 선수 출신인 어머니 이수경씨(48)도 인터뷰 자리에 함께 했다. 그 어느 가족보다 사랑이 흘러 넘쳤다. 박 감독은 “우리 딸 아픈데 없냐”면서 딸의 얼굴을 연신 부벼대는 ‘닭살 아빠(?)’의 진면목을 과시했다. 어머니는 인터뷰 도중 감기 기운이 있는 딸을 위해 따끈한 차를 공수해오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 박 감독은 “세심하게 돌봐야 할 때 지도자 생활을 하느라 정작 내 딸에겐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이렇게 잘 성장해줘 대견스럽다”고 딸을 꼬옥 안아줬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 헌신했다. 아침 저녁 딸을 픽업해주며 딸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했다.어머니 이수경씨는 “지수가 초등학교 2학년때인 9살부터 농구를 시작했는데 올해가 꼬박 10년 째다. 지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매니저 역할을 다한 보람이 이제서야 느껴진다”면서 “지수가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이 될 때의 가슴벅찬 감흥은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 있을 정도”라고 딸에 대한 넘치는 자부심을 나타냈다.

사랑과 화목.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라는 찬란한 수식어가 붙어 있는 박지수를 취재하면서 그의 해맑은 표정과 긍정적 사고 방식의 바탕에는 바로 화목한 가정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SS포토]
KB스타즈에 지명된 여자농구 차세대 센터 박지수와 아버지 박상관씨와 여자배구선수 출신인 어머니 이수경씨 . 2016.10.26. 분당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꿈에 그리던 프로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KB 국민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

기대는 했지만 정작 내 이름이 전체 1순위로 불리니까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정말 느낌이 남달랐지만 다음날 청소년대표팀 합숙훈련에 소집되면서 그 기분을 만끽할 수 없었다.하루만에 청소년대표팀 훈련을 하게 되니 이게 프로선수가 맞나 싶었다(웃음). 조만간 프로에서 데뷔전을 치르게 되는데 팬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제 기량을 맘껏 뽐내고 싶다.

-지난 6월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은 박지수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는데.

많은 분들이 그 대회를 지켜보시며 저에게 과분한 응원을 해주신 것 같다.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이후 저를 알아보시는 팬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

[SS포토]
17일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17 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1순위로 지명된 분당경영고 박지수가 포토타임을 하고 있다. . 2016.10.17. 최승섭기자thunder@sportsseoul.com

-

(아버지에게)리우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딸의 활약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프랑스에 직접 가서 봤는데 정말 기특했다.나이지리아와 벨라루스 센터의 체격조건이 너무 좋아 걱정이 앞섰다. 지도자가 아닌 아버지의 입장에서 ‘몸싸움에서 다치지 않을까’ 얼마나 걱정한지 모른다. 그러나 대견스럽게도 상대 선수들에게 주눅들지 않고 강한 승부근성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외국에 나가서 현장에서 처음 본 딸의 경기였는데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자랑스러웠다.

-세계무대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는데 그때 어떤 생각으로 뛰었나.

아시아 무대는 일본 중국 등이 작고 빠른 스타일이라 오히려 저같은 장신 선수는 플레이하기가 힘들다. 세계 무대에선 선수들이 팔길이와 체격조건이 저랑 비슷해 오히려 플레이가 한결 수월하다.

-(아버지에게)세계무대가 오히려 플레이 하기 쉽다는 딸의 분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수지는 신장이 크지만 장신 선수들에 견줘 스피드가 뛰어나다. 따라서 세계무대에선 스피드가 강점이 될 수 있어 손쉽게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시아무대에선 워낙 빠른 선수들이 많아 오히려 힘들 수 있다는 자가분석은 일리가 있다.

-한국 센터 계보에서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다면.

박신자~박찬숙~성정아~정은순~정선민 등으로 이어지는 대선배님들의 플레이 모습을 솔직히 다 보지는 못했다. 다만 예전의 동영상을 보면 성정아 선생님의 플레이 스타일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페인트존에서 몸싸움은 정말 대단했다. 몸 큰 선수들을 박스아웃으로 밀어내는 모습은 꼭 배우고 싶다.

-문제의식을 지녀야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 한국 여자농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까.

우리 농구가 강한 프레스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다들 강한 수비력에 포커스를 맞추고 경기를 풀어나가려고 하는데 저는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다. 국제 무대에선 상대들이 모두 신체적인 조건이 뛰어나다. 팔도 길어 강한 프레스로는 한계가 있다. 신체 조건이 처지면 조직력으로 승부해야 하지만 그게 프레스 일변도라면 곤란하다는 게 저의 생각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체력소모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 1,2쿼터는 그런대로 버티지만 3,4쿼터는 체력적인 문제탓에 힘들다.

-어릴 때부터 사실상 국내대회에선 경기를 지배했다.이제 프로무대에 입성했는데 어떨 것 같은가?

용병들과의 매치업이 기대된다. 무섭다기보다는 강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오히려 언니들(국내 선수)과의 매치업이 꺼려진다. 언니들이 모두 힘이 세고 저의 루트를 알고 있어 힘이 들 것이다.

-(아버지에게)딸의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물론 언니들과의 매치업에서 힘들 것이라는 예상은 공감은 한다. 그러나 연차가 쌓일수록 요령이 붙고 힘을 쓰는 데도 강약을 조절하는 노하우가 생겨 1,2년이 지나면 충분히 경기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다만 선배들의 좋은 점을 적극적으로 배웠으면 좋겠다. 우리은행 센터 양지희처럼 내외곽을 넘나들 수있고 특히 그의 피봇플레이를 배웠으면 하는 게 아버지의 바람이다.

-한 동안 정통 센터 플레이를 등한시한다는 비판도 받았는데.

센터 플레이만 놓고 볼때 중학교 2학년 때가 제일 좋았다. 중학교 3학년 때 발목을 다쳐 1년 동안 쉬면서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 탓인지 외곽으로 나오는 플레이를 통해 상대가 프레스를 붙으면 볼을 배급하는 그런 플레이에 맛을 들였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농구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고 플레이를 하는데는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에게)외곽에서 하는 플레이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고등학교 1학년 때 WKBL에서 미국 단기 연수를 갔다 오면서 플레이 스타일이 조금 변했던 것 같다. 외곽으로 나와 있다가 상대가 프레스를 붙으면 볼을 배급해주거나 빈 공간이 보이면 스피드가 있어 치고 들어가서 득점하는 등 정통 센터와는 다른 플레이에 맛을 들인 시기다. 그 당시 나는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가드와 포워드의 플레이를 하게 되면 상대 입장도 이해할 수 있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플레이 흐름도 알 수 있다. 또 선수들은 정체기를 겪다가 확 성장한다. 아마도 지수에겐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결국 그런 모습들이 차곡차곡 쌓여 성장의 자양분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의 장·단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아직 배우고 보완해야 할 점이 많지만 블록과 리바운드 그리고 센터지만 볼을 배급하는 피딩능력이 남보다 낫다고 본다.단점은 포스트플레이를 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또 다른 단점은 외모와 달리(웃음) ‘욱’하는 기질이 있어 쉽게 흥분하는 사실이다.

-(아버지에게)지도자로서 딸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준다면.

키가 크지만 밸런스가 좋다. 하체가 길고 힙업이 된 체형이다.흑인형 체형이라 하체가 튼실하다. 하체가 좋은 건 엄마를 닮은 것 같다. 신체적인 장점은 인정하지만 멘털은 좀 고쳐야 할 것 같다. 승부근성이 좋아서인지 본인의 고백대로 경기 중 평정심을 잃을 때가 종종 있다. 농구는 신체적인 접촉이 많은 종목이라 이러한 단점이 노출되면 곤란하다.

-(어머니에게)딸이 엄마를 따라 배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없었나.

아니다.사실 지수가 초등학교 때 배구를 시키려고 원곡중학교에 데려가 1주일간 언니들과 훈련을 함께 하기도 했다.그러나 언니들과 훈련해서 그런지 지수가 재미를 느끼지 못해 결국 농구를 하게 됐다. 그런데 세상은 참 공평한 것 같다. 키 204cm의 아들 준혁(19·명지대)은 농구를 하다가 배구로 전환시켰다. 우리는 딸이 아버지를 따라 농구를,아들은 엄마를 따라 배구를 하게 된 재미있는 가족이다.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라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되진 않는지?

부담이 안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런 부담감을 이겨내기 위해선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부담감이 심해질수록 ‘나를 믿자’고 최면을 건다.

-얼굴 표정이 무척 밝다. 아무래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것 같은데 지금까지 선수생활 중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제일 힘든 건 대표팀에 너무 많이 불려다녀 쉴 쉬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얘들하고 함께 휴가를 보낸 적이 별로 없다. 꿈 많은 청소년 시절에 추억이 없다는 게 가장 안타깝다.

-지금 몸 상태는 어떤가?

지금이 제일 좋다. 중학교 때 오른쪽 발목을 크게 다친 적이 있다. 인대 두개가 끊어지는 큰 부상이었는데 보강 운동을 철저히 한 덕분에 지금은 완벽하다. 원래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가려 했는데 그 부상 탓에 꿈을 미뤄게 됐다.

-인생에 있어서는 목표가 중요하다.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밝혀달라.

단기목표는 프로무대에 연착륙 하는 게 아닐까. 프로라는 큰 무대는 이전 수준과는 다를 것이다. 큰 욕심은 부리지 않겠다.언니들과 맞춰볼 시간이 없었는데 피해 안주고 팀 우승에 보탬이 되고 싶다. 장기적인 목표는 당연히 더 큰 무대,세계 최고봉이라는 WNBA에 진출하는 것이다. WNBA는 틀에 박힌 농구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농구를 구사해 꼭 한번 뛰고 싶다.

-당신에게 농구란 무엇인가?

내 인생의 전부다. 지금 19살인데 철들고 나서 꼬박 10년을 농구만 한 셈이다. 남은 인생도 농구와 씨름하며 살 것 같다. 그래서 농구는 내 인생이 아닐까 싶다.

◇박지수 프로필

▲출생지=성남시 분당구

▲생년월일=1998년 12월 6일

▲신체조건=키 195㎝,체중 80㎏

▲혈액형=O형

▲출신교=수원 화서초~성남 청솔중~성남 분당경영고

▲경력=2012년 국제농구연맹 17세 이하 세계선수권대회

2012년 대한농구협회 올해의 선수(여자부문)

2013년 국제농구연맹 18세 이하 세계선수권대회

2013년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 꿈나무상

2014년 국제농구연맹 18세 이하 아시아선수권대회

2015년 19세 이하 세계선수권대회

2015년 국제농구연맹 아시아선수권대회

2015년 대한농구협회 올해의 선수(여자부문)

◇아버지 박상관 프로필

▲출생년월일=1969년 11월 10일

▲신체조건=키 200cm,체중 100kg

▲출신학교=대경상고~명지대

▲경력=1992년 삼성 입단~2004년 대구 오리온스에서 은퇴,명지대 코치(2004~2008년),명지대 감독(2008~2014년)

◇어머니 이수경 프로필

▲출생년월일=1968년 2월 21일

▲신체조건=키 180cm,체중 70kg

▲출신학교=성암여중~성암여상(청소년대표)

▲경력=1987년 실업배구 현대건설 입단~1992년 은퇴.

체육2부장 jhkoh@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