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골키퍼 김동준과 U-18 GK
성남FC 골키퍼 김동준(오른쪽)과 U-18 풍생고 수문장 이시환이 지난 8월25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하고 있다. 성남 | 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성남=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이)시환아, 골키퍼는 자신감 없으면 죽은거나 다름 없어.”

지난달 25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난 성남 골키퍼 김동준(22)은 “인터뷰하면 안 될 것 같은데”라며 “저 욕먹으면 책임지세요”라며 웃었다. 직전 리우 올림픽 본선을 마치고 돌아온 김동준은 조별리그 2차전 독일전(3-3 무)에 나섰다가 3골을 허용했다. 올림픽대표팀 붙박이 수문장으로 활약하며 성남에서도 프로 새내기답지 않은 노련한 경기력으로 주목받았지만 독일전에서는 제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자신을 질타하는 팬들의 비난에 자책했다고 한다. “솔직히 긴장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올림픽이란 중압감이 엄청나더라. 독일전이 워낙 (8강행을 두고)중요한 경기여서 그런지 킥오프 전부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장됐다. 실력을 제대로 보이지 못해 아쉽지만 이번을 계기로 더 성장했다고 본다. 이런 기회가 또 주어지면 후회없이 하고 싶다.”

인터뷰를 꺼려하던 그가 스포츠서울과 만난 건 프로스포츠 활성화를 위해 마련한 기획특집 ‘유소년이 미래다!-멘티와 멘토의 만남’을 위해서다. 성남은 ‘앞으로 10년간 골키퍼 걱정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스 시스템으로 좋은 재목을 발굴하고 있다. 시작은 김동준이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성남 U-18인 풍생고에서 활약한 그는 연세대 진학 후 올 시즌 성남에 입단해 맹활약하고 있다. 올 시즌 골키퍼 사상 처음으로 K리그 영플레이어상(이전의 신인왕)을 받을지 관심사다. 김동준의 바통을 이어받은 건 연령별 대표를 거친 전종혁(연세대)과 현재 U-18 수문장으로 활약하는 이시환(18)이다. 특히 이시환은 2016 아디다스 K리그 주니어 전기리그 10경기에서 단 5골만 내주며 풍생고의 우승을 이끌었다. 키 192㎝ 장신으로 공중볼 처리 뿐 아니라 동물적인 반사 신경이 특기다. 비슷한 키(190㎝)에도 뛰어난 순발력과 경기 운영 능력을 지닌 선배 김동준이 롤모델이다.

인터뷰 당일 일기예보에 따르면 저녁부터 폭염을 잊게 하는 시원한 비가 쏟아진다고 했다. 김동준과 이시환이 만난 건 오후 8시가 넘어서다. 때마침 비가 조금씩 내려 인터뷰보다 사진을 먼저 찍자고 했다. 둘은 제대로 인사도 하기 전 사진기자 포즈 요구에 응해 어색한 태도를 보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특수 포지션답게 동지애가 느껴졌다. 선배가 공을 던져주고 후배가 다이빙 캐치하는 장면을 연출을 제안하자 김동준은 “시환이 다치면 안 되는데”라며 걱정하기도 했다. 무사히 사진촬영을 마친 뒤 머쓱해하는 후배에게 김동준은 손에 낀 골키퍼 장갑을 벗더니 “너 이거 가질래? 가져!”라며 건넸다. 둘이 처음 만난 건 아니다. 김동준이 연세대 시절 휴식기 때 풍생고에서 일주일간 훈련한 적이 있다. 이시환은 “당시 1학년이어서 (김동준 선배와)많은 대화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동준은 “당시 주전이었던 종혁이와 대화를 더 많이한 것 같다”며 “오늘 하고 싶은 말 다 해보라”고 웃었다. 이시환이 머뭇거리자 “왜 그래? 내가 무서워”라며 어깨를 툭 쳤다.

성남 골키퍼 김동준과 U-18 GK

◇김동준·이시환이 꼽는 풍생고만의 자랑은

‘풍생고’가 적힌 유니폼을 바라본 김동준도 옛 기억에 사로잡혔다. “팀 성적은 좋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 활약은 괜찮았다”며 “부끄럽지만 골키퍼 계보가 나부터 시작된 것 같은데 후배에게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고자 열심히 달려온 것 같다”고 했다. 이시환은 “(성남 홈경기 때)우리가 볼보이를 하는데 동준이 형을 자세히 보게 된다. 선방뿐 아니라 역습할 때 킥이 매우 좋더라”고 말했다.

이시환이 축구 입문서부터 골키퍼를 선택한 것과 다르게 김동준은 공격수에서 전향한 케이스다. 발 기술이 뛰어나다. 골키퍼로 전향한 건 순천중앙초시절 은사인 정한균 감독의 권유에서다. 김동준은 “순발력이 뛰어나고 수비진에서 필요한 리더십이 좋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김동준은 갓 프로에 입문한 선수답지 않게 경기 중 선배 수비수에게 소리 지르면서 위치를 잡아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형들이 나를 버릇이 없는 후배로 여기지 않는다”고 웃으며 “골키퍼가 당연히 해야 할 몫이고 그래야 심적으로 안정감을 찾는다”고 했다.

둘에게 풍생고만의 자랑을 해달라고 했다. 김동준은 뜻밖에 대답을 했다. “(학교의)위치인 것 같다. 주변에 놀 거리가 많고 여고가 둘러싸여 있어 젊음이 느껴진다. 그 나이 때는 또다른 동기부여 아니겠느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시환도 암묵적으로 동의하더니 “숙소가 좁은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동료끼리 더 소통이 잘 된다”고 했다. 김동준은 “그건 맞다. 사실 한 방에 여러 명 있는 게 공동체 의식도 생기고 조직력에 도움이 되더라”며 “축구뿐 아니라 가까이서 별 얘기를 다하니까 가까워진다”고 웃었다.

김동준
제공 | 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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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주니어 리그의 이시환의 모습. 제공 | 성남FC

◇“대학? 프로직행? 무엇이 좋을까요”

이시환에겐 고민이 있다. 어느덧 고등학교 3학년으로 축구 인생에서 성인 무대로 넘어가는 중대한 길목에 있다. 선배처럼 대학을 거쳐 프로에 도전하는 게 좋을지 곧바로 프로로 넘어가 경쟁할지다. 최근 고교 졸업 후 프로 직행하는 유망주가 늘어난 탓도 있다. 하지만 김동준은 “프로 직행은 반대한다”고 했다. “나도 고3 때 대학가고 싶지 않았다. 다만 연세대에서 여러 차례 제안을 해주셔서 갔다. 그런데 대학교 형들과 경기하면서 ‘내가 이정도밖에 안됐나’를 느꼈다. 실력이 부족해서 그만둬야하나 생각할 정도로 수준이 달랐다. 즉 프로는 더 치열하다. 골키퍼는 단계적으로 공격수의 슛을 경험할 필요가 있는데 대학 생활이 큰 도움이 됐다.” 또 20대 초반 때 대학 생활을 하며 ‘캠퍼스 문화’를 느껴보는 것도 좋다고 강조했다. “프로는 말그대로 사회 생활의 시작인데 대학도 준사회생활이다.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간간이 소개팅도 하고 MT도 가보면서 그때 할 수 있는 생활도 해봤으면 좋겠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지 않느냐”며 “(프로 직행한)수원 삼성 권창훈도 내게 (대학 경험을 하지 못한 게)아쉽다더라”고 전했다. 이시환은 선배 얘기에 공감하면서도 “만약 대학에 가서 다치거나 프로에서 나를 다시 원하지 않을까봐 두렵기도 하다”고 걱정했다. 김동준은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닥치지 않은 일부터 걱정하면 무엇을 선택하든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동준은 인터뷰 말미 후배에게 뼈 있는 한마디도 남겼다. “자신감이 없으면 골키퍼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골키퍼는 아버지같은 존재다. 아버지가 자신감 잃고 집에 오면 가정이 흔들리는 것처럼 팀의 기둥이란 마음을 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서로 전화번호를 몰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고 한다. 기자가 김동준에게 “직접 전화번호를 찍어주는 것 어떠냐”고 제안했는데 김동준도 “물론”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시환은 휴대폰을 꺼내지 않았다. 풍생고는 주중 휴대폰을 수거한다고 한다. 입을 쩍 벌린 김동준은 “엇, 우리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라며 웃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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