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여유넘치는 염경엽 감독과 이강철 코[SS포토]
2016타이어뱅크 프로야구 넥센히어로즈와 삼성라이온즈의 경기가 22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넥센 염경엽 감독과 이강철 수석코치가 밝은 표정으로 경기를 시작하고 있다. 고척스카이돔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고척=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영상을 보여주지도 않지만 사실 볼 필요도 없어요.”

넥센 염경엽 감독이 지난 27일 2017 신인 1차 지명으로 선발한 휘문고 내야수 이정후(18)의 모습을 한 번도 못봤다고 말했다. 선수단 운용을 책임지는 1군 감독 입장에서 다소 의외의 발언이다. 염 감독은 “구성은 프런트의 몫이다. 내 역할은 프런트가 뽑은 선수를 프로에서 통할 수 있도록 육성하는 것이다. 여러 야구인을 통해 성장 가능성이 매우 뛰어난 선수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굳이 영상으로 찾아볼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팀에 합류하면 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보고 방향성을 잡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태룡단장
두산베어스 김태룡 단장. 잠실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무심한듯, 혹은 구단에 다소 섭섭함이 있는 발언으로 볼 수 있지만 구단의 방향성에 공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구단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염 감독의 지도철학이 결과적으로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수 년째 선수단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단이 구체적인 방향성을 정하고 그 길을 함께 갈 수 있는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일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일괄된 방향성을 갖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감독을 선임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두산이나 NC 등이 넥센과 함께 강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배경이다.

최근 1차지명을 앞두고 한 구단 단장은 스카우트팀에 “우리팀은 특정 포지션에 노쇠화가 우려되기 때문에 해당 포지션에서 1차 지명 선수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군 주축 선수들은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최근 3~4년 동안 해당 포지션의 가능성 있는 선수를 뽑아 육성 중이다. 이 구단은 단장이 생각하는 포지션보다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보강을 해야하는 포지션이 따로 있었다. 이 팀의 감독은 “스카우트팀의 얘기를 듣고 나서 수 년간 뽑은 신인 리스트를 다시 살펴봤다. 장기적 계획 없이 눈 앞에 보이는 약점 위주로 신인을 선발했더라. 설득 끝에 장기적 관점에서 필요한 포지션을 뽑도록 유도했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주먹구구식 구단운영으로 수 년째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팀이 “그 많은 1차 지명선수는 도대체 무엇을하고 있는가?”라는 주위의 비아냥 섞인 질타를 받는 이유였다.

넥센 이장석 사장과 남궁종환 단장, 긴장한 표정으로 응시[SS포토]
넥센 이장석 대표와 남궁종환 단장이 실내에서 나와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고척스카이돔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KBO리그는 몇몇 구단을 제외하고 전문 경영인이 없다. 모기업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구조이다보니 사장, 단장도 그룹에서 낙하산 형태로 내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단의 방향성이 있을리 만무하고 경영진의 책임의식도 없다.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적자폭이 늘어 경질당할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임기 기간 내 성적을 내거나 적자폭을 적게나마 줄이는 등의 성과만 보이면 그룹 요직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구단이 방향성을 정립해놓지 않으면 현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감독의 성향에 따라 선수단 구성뿐만 아니라 육성 방식도 바뀌기 때문이다. 감독 한 명 이동하면 주요 코치들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전임 사령탑이 추구하던 색깔을 완전히 뒤엎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남·녀 프로농구 등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넥센과 염 감독의 공존에 눈길이 모인다. 책임있는 구단 경영자가 백년대계를 보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그 길을 함께 갈 수 있는 감독을 선임해 믿고 맡기는 구조. 프로야구 산업화 과정에 빠져서는 안될 항목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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