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파이널세트

[스포츠서울]재능있는 자의 모난 성품은 천형(天刑)이라고 했다. 스포츠에서도 이 말은 곧잘 통용된다. 불타는 승부욕이 무른 성격에서 싹트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 프로배구 OK저축은행의 해결사 시몬(29·206cm)은 별종이다. 실력과 품성을 겸비한 외국인 선수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양립하기 힘든 두가지 덕목을 함께 갖춘 외국인 선수 시몬이 V리그에 아름다운 추억과 화려한 발자취를 남기고 떠난다. 국내 남자 프로배구도 다음 시즌부터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제를 도입하면서 시몬은 어쩔 수 없이 V리그를 떠나게 됐다.

2년 전,시몬의 등장으로 V리그 판도는 크게 요동쳤다. 시몬을 앞세운 막내구단 OK저축은행이 삼성화재의 독주에 제동을 걸며 무미건조했던 V리그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창조적 전술의 가능성 또한 시몬을 통해 입증됐다. 시몬은 구기종목 중 가장 분업화된 배구에서 멀티플레이어의 진면목을 국내 최초로 보여줬다. 전위에서 센터와 라이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멀티플레이어,포지션의 파괴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몬의 창의적인 플레이는 한국적인 배구 토양에서 탄생한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본인의 따뜻한 품성을 빼놓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배구에서 멀티플레이어는 체력 소모가 극심한 만큼 팀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씨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화려한 꽃을 결코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SS포토]공격 퍼붓는 OK저축은행 시몬
OK저축은행 시몬(가운데 위)이 현대캐피탈 오레올의 블로킹을 피해 스파이크 공격을 하고 있다. 안산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시몬의 걸출한 기량과 따뜻한 성품은 V리그에 많은 걸 선물했다.시몬은 선진 배구를 전수하는 훌륭한 지도자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훈련 중에 어린 선수들이 기본기에 벗어난 플레이를 할라치면 김세진 감독에게 손을 들고 양해를 구한 뒤 매번 친절하게 잘못된 점을 고쳐줬다. 김 감독도 이런 시몬의 자세를 높이 평가하고 존중해줬다. 나이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막내구단 OK저축은행이 지난 시즌 창단 2년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린데는 코트 안팎에서 구심점이 됐던 시몬의 힘이 컸다.

OK저축은행이 V리그와 팀에 많은 걸 안겨주고 떠나는 시몬을 위해 의미있는 행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3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리는 우리카드전을 마친 뒤 시몬을 위한 송별회를 열기로 했다. 2005년 출범한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위해 구단이 송별 행사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설고 낯선 이국땅에서 큰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기란 쉽지 않다. 한 수 더 떠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안기고 떠난다면 그건 큰 성공이다. 시몬은 성공한 배구인이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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