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스포츠서울 박진업기자]이기흥 대한수영연맹회장이 지난 2010년 11월8일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결단식을 통해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에게서 단기를 받은 뒤 흔들고 있다. upandup@

[스포츠서울 고진현선임기자]수수께끼가 풀렸다. 궁금증이 해소되면 의레 찾아오는 짜릿한 쾌감 같은 건 밀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지고 분노마저 치밀어올랐다. 침체에 빠진 한국 수영의 부끄러운 민낯, 그 원인은 따로 있었다. 국가대표 선발을 미끼로 조직적인 상납이 이뤄졌으며 온갖 부정 부패의 질긴 고리가 한국 수영계 전체를 휘감고 있었으니 제대로 된 선수 육성은 먼 나라 남의 얘기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5년 말, 혜성처럼 나타난 박태환이라는 불세출의 스타는 ‘썩어 빠진’ 수영계로선 절묘한 먹잇감에 불과했다. 수영의 인기와 관심이 커지면서 확장된 시장 볼륨은 두둑한 잇속을 챙기는 발판이 됐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박태환이라는 세계적 스타는 한국 수영의 구조적 문제점을 슬쩍 감춰주는 위장막이 되기도 했다. 박태환이 뜨고 난 뒤 국내 언론들은 ‘제 2의 박태환’을 키워내지 못하는 국내 수영계 구조적 시스템을 꾸준히 지적하기 보다 박태환 개인의 퍼포먼스에 집중하느라 바빴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왜 국제대회에만 나가면 맥을 못추는지, 그리고 대표팀에 소집되기만 하면 기록이 왜 후퇴하는 경향이 많은지 파헤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수영은 역설적으로 박태환으로 인해 관심과 비판의 사각지대로 내몰렸다. 수영연맹을 장악한 특정 파벌은 박태환에게 쏠리는 스포트라이트를 이용해 구조적 모순을 숨기고 물밑에선 온갖 부정과 비리를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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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검찰 수사결과 엄정한 원칙에 따라야할 국가대표 선발이 금품이 오가는 상납구조 특혜선발로 변질됐으며, 특정 인사가 수영장 건설을 둘러싸고 공인업체로부터 막대한 리베이트를 수수한 사실이 밝혀졌다. 부정과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된 수영연맹 고위임원 J씨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금전적인 이익을 취한 것은 물론 지난 15년간 수영연맹을 사유화하면서 분에 넘치는 호화생활로 국민의 공분을 샀다.

수영연맹 비리가 하나 둘씩 드러나면서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해 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대한체육회 부회장인 이기흥 수영연맹 회장 때문이다. 이 회장은 체육단체 통합과 관련해 대한체육회 강경노선을 주도하고 있어 정부에 ‘미운 털’이 박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검찰의 수영연맹 수사는 괘씸죄에 걸린 이 회장에 대한 ‘표적수사’라는 시선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만천하에 드러난 수영연맹의 비리 사건에 그 어떤 연민과 동정도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수사 시점 부적절성이 비리의 본질을 덮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 회장도 지난 22일 대한체육회 대의원총회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수영연맹의 비리 혐의에 대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이 회장은 통합체육회가 출범하는 오는 4월에 체육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체육계를 떠나기 전 그가 반드시 해야할 일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한국 수영을 ‘청정지대’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 회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책임있는 엘리트체육계의 리더가 해야 할 소명이자 임무이기 때문이다.

선임기자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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