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최서윤 기자] 14일 관객수 700만 명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는 영화 ‘검사외전(감독 이일형, 제작 영화사 월광·사나이픽처스)’. 영화 속 주인공인 변재욱(황정민 분) 검사의 실제 모델은 누굴까?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당장 떠오르는 인물은 지난 2002년 피의자 구타 사망사건으로 구속됐던 홍경령 전 서울지검 검사다.


통상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거나 특정 인물이 떠오르는 영화라면 관련 자막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 영화에는 어떤 자막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홍 전 검사가 집필한 ‘어느 칼잡이 이야기(2013년, 나남 펴냄)’를 읽고 영화를 보면 ‘감독과 작가가 이 책을 참고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곳곳에 비슷한 내용들이 녹아 있다.

▲영화 '검사외전' 포스터


홍 전 검사는 영화 ‘야수’의 실제 모델이다. 전설적인 조폭 전담검사였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핏불 검사’로 불렸다. 변재욱이 조폭 잡는 검사가 되기 위해 11년 동안 고생했다면, 홍 전 검사는 구속되기 전까지 11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며 조직폭력배들을 잡아 들였다.


영화에서는 변재욱이 조폭 출신의 건설회사 사장인 장현석(한재영 분)을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그와 친분이 있는 차장검사인 우종길(이성민 분)의 회유를 받는다. 실제 홍 전 검사도 호남 출신의 조폭을 수사하는 도중, 조폭과 동향인 대검찰청 고위 간부로부터 ‘건실한 사업자니 풀어주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 속 변재욱은 조사 중인 피의자가 사망에 이르며 감옥에 간다. 억울한 누명이었다. 홍 전 검사도 2002년 10월, 2건의 연쇄살인 혐의의 조폭들을 수사하던 중 피의자가 사망해 구속됐다. 당시 수사관들은 고문이 아니라 탈주한 연쇄살인범의 소재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사고였다고 진술했다.


영화에서는 정치적인 갈등이 그려진다. 당시 실제 상황도 비슷했다. 2002년 10월은 16대 대선을 두 달여 앞둔 상황이었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재수사와 관련해 검찰과 현 정권 간 갈등이 불거져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검경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검찰 내 강력부 폐지 움직임도 일어났다.


이에 대해 당시 서울지검 검사를 지낸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강력사건의 초동수사를 경찰에 맡기고 수사지휘만을 하도록 한다든가, 강력부를 폐지한다든가 하는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강력부가 조직폭력수사를 전담하면서 양은이파, 서방파, OB파 등 주요 폭력조직을 와해시켰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홍경령 검사와 같은 집요한 일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인권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 시기였다. 김창국 위원장은 홍 검사 등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독직폭행치사 외 직권남용·불법체포·감금 혐의로 추가 기소하도록 검찰총장에 권고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홍 전 검사가 지휘한 사건의 피의자 사망 사고의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영화에서는 검찰수뇌부가 대국민사과로 사건을 마무리 했다. 이후 우종길은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다. 하지만 실제로는 김정길 법무부 장관, 이명재 검찰총장 등이 대국민사과를 한 뒤 모두 검찰을 떠났다. 오히려 홍 전 검사를 비난하며 인권을 강조하던 변호사가 총선에 뛰어들어 금배지를 달았다가 뇌물수수죄로 구속돼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고 홍 전 검사는 밝혔다.


영화를 보면 검사가 구속되자 조폭들은 진술을 번복한다. 실제로도 그랬다. 증인이 조사를 거부하며 잠을 자려고 해서 수사관이 얼굴에 물을 뿌린 일은 ‘물고문’으로 확대재생산 됐다. 언론은 대서특필 했다. 조폭들이 벌인 자해행위는 묻혀 버렸다. 피의자들에게 담배를 건네며 대화를 시도한 수사관들의 행동은 사라졌고 가혹행위만 부각됐다.


이 뿐 아니라 영화에서 우종길이 변재욱에게 죄를 인정하면 집행유예가 떨어질 것이라고 회유한 뒤 구속되게 한 장면도 낯이 익다. 당시 대검찰청 감찰부는 홍 전 검사에게 사표를 제출하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홍 전 검사가 사표가 제출하자마자 검찰은 곧바로 그를 구속했다.


영화 속에서 변재욱은 구치소에 수감되고 자신이 잡아넣었던 피의자들과 마주친다. 홍 전 검사도 같은 일을 겪었다. 그가 검거했던 피의자들은 홍 전 검사의 독방을 들여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특히 운동이나 면회를 하러 가다 그들과 마주치는 일은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독방에 수감된 탓에 다행히 피의자들에게 폭행당하는 일은 없었다.


일부 정치사범들은 징역을 받아도 노역보다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해서 근육을 만드는 등 특혜 아닌 특혜를 누렸다지만, 홍 전 검사는 여느 수감자들과 똑같이 수의를 입고 연탄을 나르는 등 노동을 했다.
영화 속 “TK는 근본적으로 욕심이 많다”라는 대사는 어찌 보면 대구 출신의 홍 전 검사가 평소 일 욕심이 많았던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변재욱은 일에 치여 결혼도 못한 검사였다. 신혼이었던 홍 전 검사는 검사 생활 10년 동안 전세를 살며 FM대로 살아온 평범한 가장이었다.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직원들을 격려해온 상관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영화와 드라마 속 조폭들은 ‘흉악범’이 아닌 ‘의리남’으로 그려졌다. 반면 경찰과 검찰은 부패하거나 정치적인 기회주의자로 많이 묘사되고 있다. 홍 전 검사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폭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에 충실하다. 자신의 이익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수십 년을 형님 아우하며 지내오다가도 언제든지 칼을 들이댈 수 있다”면서 “사람은 모름지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살아갈 때 행복할 수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영화 ‘검사외전’은 CJ CGV의 스크린 독과점, 황정민과 강동원 두 배우에게 의지한 내용 전개의 허술함 등으로 인한 잡음도 적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잊혀져 가던 어느 칼잡이가 외친 사회정의를 어둡지 않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ss1004@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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