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최서윤 기자] 버니 샌더스(74.버몬트주) 상원의원에 대한 20대 청춘들의 지지가 예사롭지 않다. 9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 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경선 첫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샌더스 후보(60.0%)는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 후보(38.4%)를 가볍게 제쳤다.


샌더스 의원이 이 같은 지지를 얻은 데는 뉴햄프셔 주가 자신의 지역구인 버몬트 주 옆에 있기도 했지만, 18~29세 젊은 층의 전폭적인 응원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샌더스 의원이 인기를 끌면서 4.13 총선을 앞둔 국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 사진=Bernie Sanders twitter 갈무리


◇ 민주적 사회주의자 샌더스, ‘부의 불평등’ 해소로 젊은 층에 인기


샌더스 의원은 지난 1981년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 시절부터 34년간 무소속이었다. 주류 정치권에서는 ‘아웃사이더’로 불렸다. 그는 지난해 11월 처음 당적을 갖고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 들었다. 처음 뛰어들 당시만 해도 대세는 힐러리 전 장관이었다. 샌더스 의원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샌더스 의원은 각종 연설에서 미국 내 ‘부의 불평등’ 해소를 내세웠다. 경선이 진행될수록 “1%와 99%의 불평등을 깨자”는 그의 외침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점차 호응을 얻었다. 특히 지난해 9월 보수적인 기독교 학교인 리버티대학교에서의 연설 동영상은 최근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타고 한국에도 샌더스 열풍이 상륙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그는 “대부분의 부와 소득이 상위 1%에 집중돼 있다. 정의와 도덕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바라보고, 가난한 자와 서민의 편에 서는 용기를 내길 바란다”며 “필요하다면 우리 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는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에 맞서 달라”고 호소했다. 주요 정책도 △최저임금 인상(시간당 7.25달러에서 15달러) △무상 대학교육 등을 내걸어 젊은 층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또 클린턴 전 장관과는 달리 샌더스 의원은 부자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지 않았다. 대신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에게 평균 34달러(4만700원)를 받아 클린턴 전 장관이 받은 3800만 달러(456억 원)의 75% 수준(2830만 달러)을 채웠다. 뉴햄프셔 경선이 치러진 이후에는 하루 만에 520만 달러를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그의 행보는 지난 1일 아이오와 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젊은 층 83%가 지지표를 던지며 뉴햄프셔 주까지 이어지게 된 원동력이 됐다.


다만 오는 20일 네바다와 27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그리고 ‘슈퍼 화요일’인 다음달 1일 13개 주에서 한꺼번에 치러지는 예비경선에서도 돌풍이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오와 주와 뉴햄프셔 주 모두 진보적 성향이 강한 곳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전체적인 투표 결과로는 최종 당선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창준 전 미 연방하원의원은 스포츠서울과 통화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르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주의”라며 “젊은이들은 비싼 학교 등록금을 면제시켜준다고 하니 좋아할지 몰라도 과연 미국 사람들이 250년 동안 유지해온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버리고 사회주의를 선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샌더스 열풍, 4월 총선 앞둔 국내 정치권에도 영향


미국은 경제는 물론, 정치에서도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 내 ‘부의 불균형’ 문제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고, 더욱이 총선을 두 달여 남겨둔 상황이라 국내 정치인들도 샌더스 열풍을 적극 활용하는 분위기다.


샌더스 의원이 미국의 임금소득 불평등을 얘기했지만, 미국보다 더 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한국이다. 지난해 7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고용 전망 2015’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기준 국내 임금소득 상위 10%의 임금은 하위 10% 임금의 5.83배로 나타났다. 조사대상국 중 가장 높았다. 미국은 그 다음인 4.81배였다.


지난해 12월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400대 부호 랭킹에 들어간 한국 기업인들은 이건희 삼성 회장(81위. 13조8000억 원),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139위. 9조9000억 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179위. 8조1000억 원), 정몽구 현대차 회장(309위. 5조6000억 원), 최태원 SK 회장(367위. 4조9000억 원) 등 5명이다. 이들의 재산을 합치면 40조 원이 넘는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젊은 층들이 느끼는 ‘부의 불평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상당히 크다. 최근 불거진 금수저, 흙수저 논란에 이어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닌 ‘불안해서 아픈 청춘’으로 대변된다. 이 때문에 정치권, 특히 야당을 중심으로 젊은 층의 분노를 이용한 ‘샌더스 따라하기’가 4월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현재 샌더스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인사는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다. 안 대표는 지난 4일 “샌더스 후보의 주먹 쥔 사진을 보고 참 우연이다 싶었다. 저도 대표 수락연설 때 주먹을 쥐고 싸우겠다고 여러 번 외쳤다. 소외된 80% 국민을 위해 싸우겠다”며 샌더스 의원과 자신을 연결시켰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도 “샌더스 돌풍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라고 강조했다. 안 대표가 샌더스 이미지를 연상시킨 데 대해서는 “어떤 때는 자신이 버니 샌더스라고 했다가 어떤 때는 스티브 잡스라고 했다가 왔다 갔다 하고, 사람이 정직하지 않다”고 비난하며 샌더스 이미지 차단에 나서기도 했다.


새누리당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최근 현안 보고서에서 “샌더스 의원이 아이오와 주에서 클린턴 전 장관을 위협했던 사례를 들어 청년층과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한 정책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ss1004@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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