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기태씨 \'타격할 때 배트 각도는...[SS포토]
KIA 김기태 감독이 김호령에 손수 배팅볼을 던져주며 집중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대한민국은 지금 ‘경연’(競演) 열풍에 빠져있다. 순우리말로 ‘겨루기’라고도 하는 경연은, 개인이나 단체가 모여 예술, 기능 따위의 실력을 겨루는 것을 뜻하는 명사다.

지난 6일부터 닷새간 이어진 설 연휴 때 지상파뿐만 아니라 케이블채널에서도 수많은 경연 프로그램이 전파를 탔다. 명절 연휴때면 찾아오던 홍콩스타 청룽(성룡) 대신, 노래나 요리실력으로 자웅을 겨루는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을 찾아갔다. 지금까지 수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졌지만, 지난 설에는 가수를 꿈꾸는 아마추어들이 프로 가수들과 자웅을 겨루거나 듀엣으로 열창하는 형식의 경연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다. 국민들에게 ‘오디션에 참가한 기대주를 투표하라’고 외치던 대국민 오디션을 넘어, 아예 ‘가수들과 한 판 승부를 펼쳐보자’는 콘셉트가 주를 이룬 것이다.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스프링캠프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10개 구단 선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축 베테랑들이 ‘프로 가수’라면, 입단 3년차 이내로 1군 무대에 첫 선을 보이기 위해 매일 사력을 다하고 있는 젊은 선수들은 ‘아마추어 가수’가 아닐까. 본격적인 실전 담금질을 앞두고 ‘루틴’대로 컨디션을 조율하는 베테랑들과 달리 어린 선수들은 체력이 떨어졌는지조차 모른채 훈련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렇게 흘린 땀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점검할 시기가 다가왔다.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 캠프를 차린 NC와 kt는 지난 10일 대외 공식전에 돌입했고, 오키나와로 이동한 삼성도 같은 날 첫 청백전으로 실전을 시작했다. KIA도 13일 주니치와 연습경기로 젊은 선수들의 기량을 테스트 한다. 고치에 둥지를 튼 한화는 벌써 세 경기 이상 치렀다.

중고신인안태경,거인마운드에빛이되리라![SS포토]
손승락과 윤길현 영입으로 한층 강력해진 불펜을 확보한 롯데자이언츠가 가을야구를 기대하며 애리조나 피오리아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2월 연습경기부터 3월 시범경기까지는 말 그대로 ‘경연’ 무대다. 실수를 해도 괜찮은 유일한 시기다. 각 팀 감독들이 “캠프 연습경기는 젊은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는 의미가 크다”고 말하는데, 그 속에 ‘실수해도 괜찮다’는 함의가 들어있다. 물론 어린 선수들은 ‘한 번 실수로 그동안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여유를 찾을 수 없다. 경쟁(競爭)이 아닌 경연의 장(場)이라는 것을 인식하기에 모든 것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설 연휴동안 쏟아진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국은 노력하는 천재들의 나라가 맞다’ 싶었다. 수 십년 동안 무대에 선 프로 가수에 아이돌 연습생 출신이 승리를 거두는가 하면, 어느 여고생은 가창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톱가수와 듀엣 무대에서 선배를 리드했다. 타고난 재능이 출중한데, ‘가수가 아니면 안된다’는 일념으로 잠자는 시간을 쪼개 연습을 하니, 기성 가수들과 대등한 경쟁이 가능한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아무리 큰 무대에 서더라도 떨지 않는다는 것을 10대 청소년들이 보여줬다. 공연을 함께 한 선배 가수들은,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진심을 담아 전해준다. 한결같이 “내가 10대 때보다 훨씬 잘한다”는 찬사와 함께 “꿈을 잃지 말고 계속 노력한다면 분명 좋은 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덕담도 잊지 않는다. 선배들은 어려운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 길에 들어선 후배들이 대견하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서 지름길보다 난관에 봉착했을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기본을 다지고 또 다지라고 강조한다. 기본이 단단하면, 웬만한 풍파에 끄떡도 하지 않는다.

야구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연습경기에 나선 후배들을 바라보는 선배들은 작은 동작 하나하나 눈에 담아 둔다. 후배가 다가와 조언을 구한다면, 담아둔 후배의 모습에 자신의 경험을 더해 ‘프로의 세계’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기본기가 왜 중요한지 몸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경연의 묘미는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이 있다는 것, 프로의 세계에서 이보다 더 큰 여유도 없을 것이다. 준비된 자들만 누릴 수 있는 여유이겠지만.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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