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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 선임기자]지도자가 급하면 멀리 내다보지 못하며 그건 곧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을 키우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곤 한다. 한국 스포츠를 논할 때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바로 주니어 지도자들의 이러한 근시안적인 자세가 아닐까 싶다. 어린 선수들을 발굴해 스포츠에 입문시킬 때 한국의 지도자들은 호흡 긴 승부보다 단기간에 성적을 내는데 급급하다. 하드트레이닝과 실전에 유용한 테크닉을 집중적으로 주입해 빠른 시일에 놀랄 만한 효과를 보는 게 한국 주니어 지도자들의 최고 덕목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압축성장 시대의 관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탓도 크지만 지도자들의 고용 불안정도 미래보다 지금의 성적에 몰입하게 만든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불현듯 주니어 지도자들과 잠재력의 상관관계를 떠올리게 된 배경은 2016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전을 지켜보면서다. 28세 동갑내기인 노박 조코비치(1위·세르비아)와 앤디 머리(2위·영국)의 ‘세기의 대결’을 지켜보다가 그들의 주니어 시절을 떠올리게 됐다. 당시에도 두 선수는 ‘될성 부른 떡잎’으로 평가받았지만 한국의 두 유망주와 견줘보면 한 수 아래로 취급받았다. 전웅선과 김선용. 조코비치와 머리의 또래인 그들은 당시 국제 주니어 무대에선 조코비치와 머리를 능가하는 실력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들의 처지는 비교 자체가 민망해졌다. 조코비치와 머리는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지는 월드스타로 성장했고,한국의 유망주들은 그 존재마저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이 이들의 운명을 뒤바꿨을까. 이는 개인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한국 스포츠의 구조적인 원인에서 답을 찾는 편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주니어시절 한국의 두 선수보다 기량이 떨어졌던 조코비치와 머리가 월드스타로 성장한 데는 잠재력을 끊임없이 키우는 스포츠 문화와 시스템에 힘입은 바 크다. 멀리 내다보는 지도자들은 당장의 성적보다 잠재력을 끊임없이 키우는 코칭노하우로 어린 선수들의 미래를 위해 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스포츠에 흥미를 잃지 않게 하고 무엇보다 외부의 자극보다 자기 스스로 창조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가르침으로 어린 선수들에게 꿈과 희망,그리고 자신감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조코비치와 머리는 인내하며 멀리 내다본 지도자들에 의해 자신의 그릇을 최대한 크게 만드는 데 주력한 끝에 결국 톱클래스 선수로 올라섰다. 한국의 두 유망주는 자신의 그릇을 더 이상 키우지 못한 끝에 프로 투어무대 연착륙에 실패했다.

한국 주니어 선수들의 기량은 종목을 불문하고 다른 나라 선수들에 견줘 대부분 월등하다. 그러나 정작 성인무대에 올라가서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그러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 심연의 바닥에서 잠재력을 끌어올려 꽃을 피워야 하는데 그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큰 그릇은 애초 빚을 때부터 크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주니어 지도자들은 큰 그릇을 빚는데는 별 관심이 없다. 빨리 빨리 그릇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대기(大器)’를 빚는데는 애정을 쏟지 않는다. 오히려 후딱후딱 만들 수 있는 간종종지 같은 작은 그릇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주니어 지도자들은 많은 걸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을 빚는 도공이 되어야 한다. 그게 한국 스포츠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혁명의 시작이다.

체육1부 선임기자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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