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진-1
경제전문 방송 SBS CNBC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떠오른 백브리핑 시시각각의 이형진 앵커가 특유의 돌직구 브리핑을 전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재원기자 shine@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강헌주기자] 오전 10시가 가까워지면 기업 홍보팀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경제전문방송 SBS CNBC의 ‘백브리핑 시시각각’(이하 백브리핑)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이 방송을 주목하는 이유는 백브리핑이 기존 경제뉴스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날 선 기사와 다양한 소재를 다루기 때문이다. 백브리핑은 겉으로 드러난 사실속에 감춰진 이면을 들춰내는 데 주력한다. 뉴스의 당사자가 된 기업들은 당혹스럽다. 당연히 기업들이 이 프로그램을 주목할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방송이 잘 다루지 않는 영역도 과감히 접근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백브리핑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기업들의 스포츠 마케팅 분야는 기존 언론의 사각지대였다. 최근엔 일반 시청자들도 입소문에 힘입어 차츰 백브리핑 팬이 늘고 있다고 한다.

2016012101010011492
SBS CNBC 백브리핑 시시각각의 이형진 앵커가 상암동 사옥 보도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재원기자 shine@sportsseoul.com

지난 2013년 7월부터 메인 앵커를 맡고 있는 이형진 부장(44)은 이 프로그램의 핵심인물이다. 이 부장은 백브리핑이 시작된 후 인터뷰 대상자 섭외부터 원고 작성까지 전 과정을 일일히 챙긴다. 데스크인 SBS CNBC 보도국 김기호 보도제작부장은 이 부장을 앵커 대신 ‘작커’라 부른다. 작가와 앵커의 합성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어 붙인 별칭이다.

이 부장은 스포츠신문, 통신사 등을 거친 활자 매체 기자 출신이어서 처음엔 방송이 익숙치 않았다고 한다. 거기에 방송뉴스의 얼굴인 앵커 자리를 맡겼으니. 처음엔 이 부장도 당황했다고. 워낙 공격적 취재 스타일이어서 생방송에는 맞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회사내에서도 모험적 시도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처음 백브리핑의 진행시간은 단 12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작할 때의 걱정과는 달리 백브리핑은 차별화된 콘텐츠를 통해 인기를 모으며 회사 간판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12분에 지나지 않던 진행 시간은 신년 개편을 거쳐 두 시간 까지 늘어나게 됐다.

이 부장은 야구로 비유하면 정밀한 제구력을 갖춘 변화구 투수 보다 타자와 직구 승부를 즐기는 정통파 투수에 가깝다. 그는 방송에서 거침없이 돌직구를 뿌려댄다. 간혹 지나친 열정때문에 프로그램 담당 박지현 PD가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한다. 이 부장도 늘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는 오전 생방송이 끝나면 오후에는 현장 기자 모드로 변신해 현장으로 달려간다. 육체적으로 힘은 들지만 현장 취재는 콘텐츠 질을 높일 수 있는 필수요소임을 그는 믿고 있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백브리핑의 메인 앵커인 이형진 부장을 직접 만났다.

이형진 김선경
SBS CNBC 백브리핑 시시각각의 이형진(왼쪽), 김선경 앵커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재원기자 shine@sportsseoul.com

-‘백브리핑 시시각각’이 왜 주목받나.

일단 취재대상이 제한없이 자유롭다. 사실 회사가 매출보다는 기사에 더 매진하라는 주문이 강하다. 미디어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에 가장 큰 기본 가치로 삼고 있다. 기자들이 직접 취재해 만드는 심도있는 경제뉴스 방송이 처음이기 때문에 시장의 관심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는 데스크들이 콘텐츠때문에 고심을 많이 하고 후배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뉴스를 꼽는다면.

5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중소기업을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문제삼은 적이 있었다. 바로 장난감 전문업체 손오공이라는 회사다. 장난감 부족사태의 원인이 손오공이 아니라는 사실과 많은 언론사들이 잘 알아보지도 않고 뭇매를 때리는 것에 대해 엄중 경고하면서 기사화시킨 적이 있다. 그때 손오공을 다니는 직원들과 가족들이 크게 고마워했다. 언론인으로서 보람을 느꼈다. 앞으로 작은 회사들의 어려운 사정도 대변해주고, 홍보성 기사도 다뤄주고 싶다.

-시청자들은 재미있게 보지만 비판의 당사자는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다.

사실 경제매체 최대 출입처인 삼성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취재한 내용이 맞으면 불편해도 특별한 항의를 하지 않는다. 사실에 의존해 작성한 기사에는 그들도 깨끗하게 인정하는 편이다. 6년간 삼성을 출입하면서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수준까지 왔다. 혹자는 이틀에 한번 꼴로 삼성 관련 불편한 기사를 쓰는데도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큰 무리없이 기자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나 성역없이 기사를 다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6012101010011491
이형진 앵커는 SBS CNBC 백브리핑 시시각각의 성공적 안착에는 선배 데스크들과의 신뢰와 척척 맞는 호흡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형진(왼쪽) 앵커와 보도국 김기호 보도제작부장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재원기자 shine@sportsseoul.com

-경제방송이 친 기업적이라는 시각이 있다. 백브리핑은 달라 보이는 데.

아름답고 멋진 얘기는 신문이 더 잘 다룰 수 있다. 실제로 CEO들도 유려한 조판과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신문, 그것도 주요신문에 나오는 기사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방송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성격상 좋은 이야기를 잘 못쓴다. 그냥 이렇게 이해해달라. 연애할 때 진짜 좋아하는 상대방에게는 나쁜 점을 지적해준다. 그 문제를 고쳐서 더 멋져 보이게 하려고 말이다. 나도 기업들이 잘못을 고치고 더 좋은 기업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픈 내용을 다룬다.

-SBS CNBC나 SBS가 불편해 할 수도 있다.

사전 조율은 거의 없다. 한번은 지상파 SBS 직접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잘못을 무차별적으로 지적한 적이 있다. 하지만 SBS쪽에서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데스크들이 야구로 치면 자율야구를 선호하는 덕장들이다. 보도국장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바로 직속 상사인 산업부장이나 호흡을 가장 많이 맞추는 보도제작부장은 디테일과 정확도가 높은 교타자 스타일이다. 홈런 위주로 플레이하는 내 스타일과 궁합이 잘 맞는다. 하지만, 원칙을 벗어났을 때는 가차없이 제재를 받는다.

-새해 들어 편성 시간이 늘었다.

정확히 말하면 딱 100분이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 120분을 방송한 적도 있다. 시청률 면에서 크게 주목을 받을 수 없는 시간대였기때문에 불리한 점이 있다. 아직 시청률은 내세울 만큼 높지 않지만 영향력 면에서는 다를 것이다. 확실히 인지도는 높아졌다. 그 때문에 개편 때 유일하게 방송프로그램명과 진행자가 살아남은 것으로 안다. 시간이 늘면서 한가지 차이는 속도감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단신은 한 묶음으로 하더라도, 22개 꼭지가 다뤄진다. 진행 속도 면에서는 경마방송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다.

-사안에 대해 깊게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방송기자들이 방송리포트에서 다루기 힘든 취재 이면의 내용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 더 심도있는 취재를 한다. 물론 방송이 다양한 시청자 층을 공략 대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한계도 있다. 백브리핑 시시각각의 주 타깃 중에는 타사 기자도 있다. 그들이 이어서 더 쉬운 기사를 낼 수 있도록 가이드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오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언론사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오전에 앵커, 오후엔 현장 기자하기 힘들지 않나.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후배 기자들이 올리는 아이템을 주는대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호흡하면서 시너지를 내려면 현장의 감, 날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해당 원칙을 세운 직속 데스크가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지만 ‘방송진행자는 현장 취재기자가 아니다’라는 선입관은 깨질 필요가 있다. 기자출신의 진행자가 날이 서 있지 않다면, 뉴스프로그램은 기자보다는 아나운서나 예능인이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최근 기업 홍보팀으로 이직하는 기자들이 많다.

솔직히 일단 처우가 더 낫지 않나? 가정을 가진 직업인으로서 충분히 이해한다. 요즘에는 그런 자리도 잘 나지 않는다고 들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직하는 사람들이 회사 내에서 일을 잘한다는 에이스 기자들이라는 것이다. 에이스 기자들이 언론사를 떠나 기업으로 이직한다면, 부조리를 감시해야 하는 ‘워치독’의 역할은 누가 해야하는 것인지 우려스럽다. 사실 기업들에게 일 잘하는 기자들을 좀 놔두라고 방송한 적도 있다.

-최근 기자들의 취재문화를 어떻게 보나.

일단 엉덩이가 너무 무겁다. 삼성을 출입하면서 가장 부끄러웠던 것이 새벽마다 수많은 기자들이 로비에서 사장단을 만나기 위해 매일 북적거린다는 것이다. 그 곳에서 얼마나 차별화된 기사가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특히 CES나 IFA 등 해외출장으로 삼성 사장들 얼굴과 이름을 아는 기자들이 대거 빠지자, 로비에 나왔던 기자들이 질문 한번 못해보고 해산한 적도 있었다고 들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선배들에게 배웠던 것처럼 취재는 발로 뛰어야 제대로 된 현장기사가 나온다.

-최근 기업들의 스포츠마케팅을 다루고 있다.

경제정보가 빠르고 다양하기로 이름난 로이터통신의 경우에도 스포츠를 핵심 콘텐츠로 다룬다. 이유는 전세계 주요 투자자들이 스포츠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제와 스포츠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래서 지난해 내내 스포츠 비지니스에 대해 고민했고, 지난해말 적임자를 찾아 간신히 시작하게 됐다. 반응은 상당하다. 스포츠를 경기결과가 아닌 이면의 스포츠 비지니스 매커니즘을 다룬다는 점에서 관심이 크다. 기회가 된다면 독자적인 영역으로 확대해보고 싶다.

-새해들어 투 앵커체제로 바뀌었는 데.

혼자 방송하는 것도 처음, 둘이 방송을 진행하는 것도 처음이다. 나는 방송에 있어서 뭘 하든 다 처음 해보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함께 진행하는 여자 앵커 김선경씨도 기자다. 아나운서가 가질 수 없는 기사에 대한 감각이 있어 호흡을 맞추기가 편하다. 선배인 내가 먼저, 당일 방송에 필요한 모든 원고에 대한 결을 맞춘다. 그 얘기는 우아한 방송진행자보다는 날이 살아있는 기자를 여자 진행자에게도 요구한다는 것이다. 가끔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 같아 후배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새롭게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앵커가 현장에 직접 나가는 코너를 만들어보고 싶다. 지난해에 몇 번 시도를 해봤는데, 너무 가볍다는 지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결과물에 만족했지만 접었다. 누군가의 지적이 들어오면 그냥 쉽게 접는다. 성격 탓이다. 올해는 한 번 더 도전할 계획이다.

-언론인으로 꿈이 있다면.

언론사 사장을 하고 싶다. 2002년 월드컵 바로 직전 이었던가. 월드컵 관련 취재때문에 현장에 나갈 일이 있었다. 그때 백발이 성성한 로이터 기자들이 사진 전송 시스템을 메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노기자들이 현장을 누비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차장에서 부장, 국장에 못 올라가면 평생 해온 기자직을 그만둬야 하는 게 현실이다. 백발이 성성한 기자도 현장을 뛸 수 있는 언론사를 만들어 보고 싶은 꿈이 있다. 그래서 현장에 있을 때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야 백발이 성성한 선배들에게 제대로 된 일을 줄 것 같다.

lemosu@sportsseoul.com

* 인터뷰 후기- 언론은 정의를 구할 수 있을까?

영화 ‘내부자’를 지난 주 뒤늦게 봤다. 워낙 평이 좋은 데다 언론을 소재로 한 영화였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다.

보고 난 뒤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영화에서 그려진 언론인이 우리 사회의 절대악으로 그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현실보다 과장되게 그려질 수 밖에 없다. 그 점을 이해한다면 언론 권력에 대한 비판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조국일보 논설위원 이강희역으로 나온 백운식 보다 뒷돈을 챙기다 해임당한 조국일보 고기자역 김대명의 연기에 눈이 갔다. 극 중 고기자는 권력 주변에서 배회하면서 비굴함을 감추지 않는 소시민적 모습을 보인다. 고기자는 사회적 대의명분 보다 개인의 이익에 매달리는 힘없는 조직원이다. 그는 단지 밥벌이로서 기자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비참한 기분까지 든 것은 현실과의 유사성 때문이었을까?

세상에 비춰진 언론인의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처음 이 직업을 선택할 때의 소신과 포부를 생각한다면 더욱 더 기분은 우울해진다. 그렇다면 언론은 이제 ‘사회적 목탁’ ‘권력의 감시자’ 라는 자랑스러운 호칭을 내려놓아야만 될 까. 언론은 이제 정의를 구할 수는 없을까.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은 그의 칼럼집 ‘정의를 부탁해’에서 언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다. 그는 동료의식을 잃은 채 ‘특정 진영의 종군기자’ ‘언론사 샐러리맨’이 된 기자들의 현실을 개탄하며 더 늦기전에 근본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한다.

언론은 정의를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SBS CNBC 이형진 부장은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나 언론이 없는 세상을 가정해보면 답은 나온다”며 “수 많은 직업중에 질문을 해도 욕먹지 않는 직업은 기자가 유일하다. 뭔가 이상하고 궁금해서 물어보고, 그 대답을 활자로, 방송으로 내보내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권력을 쥔 자들은 더 조심할 수 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언론의 정의를 위해서는 “기자들이 사실 확인을 위해 더 열심히 발로 뛰어 다녀야 한다”라는 게 이 부장의 소신이다.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소심한 회사원’으로 전락해버린 많은 기자들이 되새겨볼 만한 말이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지만.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