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파이널세트

[스포츠서울]프로 스포츠는 현존하는 스포츠의 가장 진화된 형태다. 상품화된 선수의 경기력이 시장에서 평가받고 해당 선수는 그에 상응한 보수를 받으며 스포츠를 직업으로 삼아 생활하는 게 바로 프로 스포츠의 본질이다. 경기력이 상품으로 유통되기 위해선 취미로 즐기는 아마추어 스포츠와는 분명 달라야 한다. 상품 가치를 지닌 경기력은 프로 스포츠의 생명이다. 뛰어난 경기력을 소비자인 팬에게 선사하며 자신의 상품가치를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선 절실함에 간절함을 더한 의식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이다. 프로페셔널리즘의 핵심은 자율성이다.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러한 노력속에서 진정한 창조적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다. 경기력 향상은 외부의 자극보다 이러한 내적인 동력에서 완성된다는 건 자명한 이치다.

그렇다면 한국 프로 스포츠는 과연 프로페셔널리즘에 충실한가? 외형은 프로 스포츠이지만 아직도 구 시대의 습속(habitus)에 사로잡혀 있는 종목도 없지 않다.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알갱이가 빠진 프로 스포츠를 뜬금없이 거론한 이유는 최근 여자 프로배구 구단에 불어닥친 ‘외박 열풍’ 때문이다. 구단들이 승리를 위한 동기부여로 ‘외박과 외출’이라는 당근책을 즐겨 쓰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못해 안타깝다. 스포츠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선수들을 일률적으로 창살없는 감독이나 다름없는 합숙소에 가둬놓고 훈련에만 내모는 건 프로시대에 걸맞지 않는 비극적 현실이다.

경기에서 이긴 뒤 이틀간의 외박 보너스를 탄 선수가 “이번에 못 나갔으면 훈련 도중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기뻐한 사실은 한국 프로스포츠의 후진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슬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프로배구는 다른 프로종목에 견줘 합숙훈련에 집착하고 있다.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비시즌중에 합숙훈련을 할 정도로 전근대적이다. 구단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합숙에 드는 6~7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선수단 연봉 인상분으로 쓴다면 아마도 경기력 향상에 훨씬 큰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프로 스포츠 시대의 합숙은 우승 지상주의가 빚은 잘못된 착근(着根)이며,지도자와 선수간의 불신을 교묘하게 위장하는 방패막이에 다름 아니다. 우승이라는 집단적 목표를 위해 개인을 통제하고,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을 믿지 못해 강제와 타율로 그러한 불신의 골을 메우려는 방식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프로 스포츠는 직업이다. 직업인은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휴식이 보장되어야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만약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을 집에 보내지 않고 합숙소에서만 생활하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 스포츠의 고질적인 병폐는 누차 거론됐듯이 창의력의 부재다. 가둬놓고 훈련에만 내몬다면 창조적인 플레이를 기대하기 힘들다.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는 구 시대적인 프레임으로는 프로 스포츠의 질적 도약을 기대할 수 없다. 창조적 상상력은 자율적인 토양위에서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다.

동물을 조련하는 것과 스포츠는 다르다. 적어도 스포츠의 최고봉인 프로 스포츠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상품으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창조적인 플레이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 시대에 걸맞는 스포츠계의 의식 전환이 시급하다. 프로 스포츠와 합숙은 시대와 의식의 분열을 보여주는 한국 스포츠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선임기자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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