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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월드뮤직센터의 강선대 이사장이 자신이 세운 월드뮤직센터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도훈기자 dica@sporsseoul.com

[스포츠서울 조병모기자]재단법인 월드뮤직센터 강선대 이사장(72)을 서울 중구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이력은 증권가 사람이라면 선망의 대상이다. 1세대 증권맨으로서 대우경제연구소를 사실상 완성하고, 교보생명 경제연구소를 세운 애널리스트, 투자전략가, 이코노미스트다. 여기에 홍콩에서 자산운용사 사장을 했고, 은퇴 후에는 명지대학교 겸임교수로 7년간 세계의 민속음악을 강의 했다. 그리고 창업투자회사를 설립하여 ㈜셀트리온의 창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2009년부터는 월드뮤직센터를 설립하여 세계 각국의 민속음악을 한국에 알리고, 외국에는 국악을 전파하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2012년에는 센터를 공익재단법인으로 전환하여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월드뮤직에 빠지게 됐나. 계기는.

원래 음악광이었다. 현직에 있을 때 경제신문 일간지 등에 클래식과 재즈 등 LP음반을 많이 보유한 사람으로 기사화가 제법 됐었다. 교보생명을 나오고 나서 미국의 조지워싱턴 대학에 초빙연구원으로 1년동안 가있던 시절, 음악과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계 각국의 음악에 눈을 뜨게 되고 관심이 확산되더라. 또 때마침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해외 패키지 여행상품이 생겨 여행 붐이 일어나 자연스럽게 다시 여행을 하면서 민속음악에 더 관심을 키워갔다.

-세계음악 전문가로 대학강단과 방송출연으로 세계음악의 소개에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창피하다. 전문가라고 방송국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나도 누구를 가르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BBS를 시작으로 EBS, SBS, KBS 등에 출연하게 됐는데 방송에서 나를 그냥 아무개 박사라고 했다. 사실 박사(경제학)는 맞지만 음악 박사는 아닌데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돈하게 했다. 실력없는 선생이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물론 나도 방송중에 ‘저도 잘 모르지만’과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 시청자나 청취자에게 양해도 구했다.

-2003년부터 약 7년간 명지대학교에서는 ‘세계의 민속음악’이라는 강좌가 인기강좌로 소문이 났다는데.

강의 초기에는 수강신청이 첫날 마감되는 수강 1순위의 그야말로 인기강좌였다. 그러나 교육부의 대학정책이 전공과목 강화로 바뀐 뒤로는 그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외부인사들도 청강가능 여부를 문의 하는 등 보람 있는 기회였다.

-지금 서재에 세계음악관련 자료가 엄청나게 많다.

60년부터 책과 음반을 모아왔는데, 4층에는 월드뮤직 음반(CD, LP, DVD, LD 등), 음악관련 도서 뿐만 아니라 인문학 계열의 도서까지 포함하여 약 5만권 이상의 도서와 서화작품 등이 있다. 도서 중에서는 다수의 희귀본 도서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많이 버렸는데도 그 정도다. 이 모든 것은 월드뮤직 관련 전문가, 일반인, 학생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자료정리 후 재단에서 일반공개 할 예정이다.

-화제를 바꿔서 안정된 은행을 떠나 70년대 중반 증권사에 들어갔다.

맞다. 60년대 후반 대학 졸업하고 나서 갈만한 회사는 은행이나, 삼성 등 몇몇 대기업 밖에 없었다. 하지만 70년대 중반, 75년부터 은행의 우수한 사람들이 무역상사, 단자사, 종금사, 증권사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나도 한일은행 조사부에서 나와 대우증권으로 옮겼다. 대우그룹이 우리를 스카우트해갔다. 당시 소위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은행을 뛰쳐나오던 시기였다.

-이후 대우경제연구소 이사, 교보생명 전무 겸 초대 경제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주로 요즘 얘기로 하면 애널리스트의 일을 한 것 같다.

맞다. 애널리스트 겸 전략가 같은 일이다. 대우경제연구소만 해도 그것을 만들려고 하니, 대우그룹 사람들 조차 무슨 증권사가 KDI(한국개발연구원)같은 연구소를 만드느냐고 회의적으로 보던 시절에 연구소를 만들었다. 우리는 KDI가 다루는 거시경제가 아니라 미시경제, 그리고 기업과 경영 등을 다루려고 했는데 말이다. 당시 연구소 설립에 실무 책임자로 참여하였다. 당시 연구소장이신 회장님은 은행장을 역임한 원로이셔서 실질적인 책임은 내가 맡아 조직을 만들고 연구원 선발업무를 총괄했다. 이후 투자자문사의 1호인 대우투자자문도 그렇게 만들어 졌다.

-셀트리온에 초기 투자자로서 부를 일궈냈는데.

(편집자주 : 셀트리온 주가 8월 28일 종가 기준 7만2500원, 시가총액 8조1200억원. 특허가 끝난 블록버스터급 약품을 똑같이 만드는, 이른바 바이오시밀러 제약품 생산사)IMF 금융위기가 끝나고 우리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나라 금융의 방향과 은퇴 후의 개인적인 재테크 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큰 줄기로는 두 가지 판단을 했다. 하나는 부동산 신화가 큰 고비를 넘겨 더 이상의 상승은 힘들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IMF 이후 시중의 자금이 개인의 손에서 떠나 기업에 모여 있다는 점이었다. IMF로 해체된 대우그룹의 계열사만 하더라도 많은 현금자산을 보유할 정도였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기업에 투자하기 위하여 창업투자회사를 설립했고 고민 끝에 만난 첫 번째 연인이 셀트리온 이었다.

-셀트리온과 어떻게 연결되었나.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선 증시에 투자하는 방법도 있지만, 시장이 불투명하다고 봤다. 그래서 창업투자사를 2000년에 차리고 2001년 셀트리온 창립시 창립주주로 들어가게 됐다. 당시 4자가 합작했다. 서정진 회장이 대주주, 백스젠이라고 미국의 제약사가 기술투자를 했고, 담배인삼공사와 우리측(J스테판앤컴퍼니)은 순수한 투자였다. 우리 같은 경우 금융계 인맥과 친구, 친지 돈을 모아 300억원정도 투자가 되었다. 액면가에도 들어가고, 액면가 5배수로도 들어갔다. 이후 다 주식을 나눠줬기 때문에 이익실현 액수는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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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센터의 강선대 이사장이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도훈기자 dica@sporsseoul.com

-다시 화제를 월드뮤직으로 바꾼다. 세계 각국의 음악중 인상깊은 음악은.

여러 해 전 일이지만 음악잡지와 신문 등에 월드뮤직에 관한 글을 연재한 적이 있다. 당시에 독자의 반응을 보면 아시아 지역에서는 몽골음악, 서양에서는 쿠바와 안데스음악 등 라틴아메리카음악, 유럽의 아일랜드 스페인음악 등이 관심이 높았다. 내가 자주 듣는 음악도 독자와 크게 다르지 않는데 여기에 더한다면 아메리카 인디안 음악과 티벳의 명상음악 등 오지의 때가 묻지 않은,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음악을 들 수 있다.

-월드뮤직센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09년 마음에 맞는 분들과 힘을 합쳐 세우게 됐다. 세계음악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생각과 중국이 덤벼들기 전에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중국의 경우 선진국이 다하고 있는 것은 경쟁력이 없다고 보고 새로운 문화를 중점적으로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 국악은 국악대로 알리고, 다른 세계의 음악도 알릴 겸 시작했다. 상임이사로는 김희선 교수(국민대 음악인류학/한국학), 이사로는 임성빈 전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박기석 시공테크 회장, 정창관 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국악CD 최다보유 아카이브 운영), 인재진 호원대 공연미디어 학부 교수 겸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총감독(재즈가수 나윤선씨 부군)등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월드뮤직센터의 활동은.

가장 중요한 행사로는 2014년부터 격년으로 진행되는 ‘아시아 월드뮤직 어워드’이다. 작년 10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시상식의 1회 수상자로는 ‘요요마(첼리스트)와 실크로드 앙상블’팀이 선정 되었다. 요요마와 같은 거장은 상을 준다고 해서 받으러 오는 사람이 아니지만, 우리 활동의 진정성에 공감하며 잘 이해해줘 본 상을 수상할 겸 아시아투어를 한국에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으로는 매년 한국의 전통음악을 세계에 소개하는 행사가 있는데, 2014년에는 뉴욕에서 록펠러 재단의 아시아 소사이어티와 공동 주최하여 ‘뉴욕 한국음악 페스티벌-산조와 판소리’를 진행했으며, 금년 8월에는 영국 런던 킹스턴에서 현지인과 공동으로 ‘킹스턴, 한국을 환영하다.(Kingston, Welcomes Korea)’행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매년 국내 일반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월드뮤직 시민강좌’를 무료로 개최하고 있으며, 월드뮤직센터 재단 내에 세계음악문화연구소를 설치해 학술연구 및 관련전문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월드뮤직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음악은 언어를 몰라도 소통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월드뮤직은 세계시민이 되는 패스포트(여권)이자 키(열쇠)다. 음악을 통해 어깨동무를 하고 상호친목이 이뤄지면 남과 북, 아시아, 유럽, 미주, 지구촌 사람들이 서로 공존하게 된다.

brya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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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센터의 강선대 이사장은 경제연구소 2곳의 산파역할을 하는 등 1세대 증권계 애널리스트로 유명하다. 김도훈기자 dica@sporsseoul.com

재단법인 월드뮤직센터 강선대 이사장(72)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한국의 소득분배’라고 한다. 경기고~연세대 경제학과(62학번)~연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72년 학위)에 이어 지난 1984~1991년 중앙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데다 국내 증권시장의 1세대 애널리스트, 전략가, 자산운용사 사장 등을 거치다보니 자연스럽게 부(Wealth)와 부의 흐름과 분배에 대해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 연구했다.

강 이사장은 “박사 과정을 밟던 80년대 후반에는 부의 재분배가 사회적 이슈였다”면서 “그런데 그때보다 현재 소득분배가 악화됐는데, 문제는 요즘엔 소득분배에 대한 얘기도 없다는 것”이라고 작금의 시대 상황을 지적했다.

그는 “과거 논문들이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요즘 내 논문이 재차 인용되는 상황을 보면 깜짝 놀란다”며 “내 분석모델이 여전히 유효하나보다 하는 생각과 그만큼 연구가 더디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IMF 금융위기 이후 모두들 ‘우선 살아야겠다’ 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분배 보다는 성장에 우선하는 방향으로 가버린 결과 같기도 하다”고 씁쓰레 했다. 대기업, 부자들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쓰면 돈은 밑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는 ‘낙수효과’도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으로 귀결됐고, 경제민주화라는 캐치 프레이즈에도 불구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강화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감의 표시였다.

강 이사장은 “젊은 층의 직업을 창출하는데 신경쓰고 집중하다보니 요즘 소득분배 얘기를 꺼내드는 것은 마치 사치스럽다고 여겨질 정도”라며 문제의 심각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면에서 한국 자본시장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그런 그는 요즘 소득분배외에 상속신탁, 유산신탁에 관심이 많다. 미국의 록펠러재단, 카네기재단 등을 보면 제대로된 신탁제도를 통해 엄청난 개인의 부가 공적, 사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전해졌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강 이사장은 “가령 수백억원 자산가가 있는데, 얼마를 공익에 쓰고, 얼마를 자녀를 위해서 쓰고 싶다고 하자. 하지만 이런 부분이 사회적으로 보편화되지 못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지게 되고, 그러다보니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설령 대학에 기부하거나 장학재단에 내놓기도 하는데, 이런 재원을 받아서 관리하는 사람들의 방식이 투명하지 못하다. 기부한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출된다던지, 여러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요즘 전문가들과 이를 위한 미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이 추구하는 신탁의 최종방식은 이런 식으로 요약된다. 자식들에게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스스로 일구는 즐거움을 주도록 생활할수만 있게 해주는 수준으로 재산을 물려준다. 더 큰 재산은 공익목적으로 쓸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되는 방식이다.

조병모기자 brya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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