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구-유명우
장정구(왼쪽)와 유명우.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하늘에 태양은 둘 일 수 없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 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한국 프로복싱에선 분명 그런 시대가 있었다. 두 개의 태양이 강렬한 광채를 내뿜으며 세계를 지배했다. 그 둘은 그렇게 공존하며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하나의 태양은 ‘짱구’로,또 다른 태양은 ‘작은 들소’로 각각 불렸다. 두 영웅은 바로 한국복서로서 당당하게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장정구(52)와 유명우(51)다. 1980년대를 한국 프로복싱 전성기로 이끈 두명의 영웅은 세계 프로복싱 양대 기구인 WBC(세계복싱평의회)와 WBA(세계복싱협회) 최경량급 왕좌에 등극하며 사각의 링을 지배했다.

두 선수는 단명에 그쳤던 한국 세계챔피언의 그늘진 역사에 마침표를 찍으며 새 시대를 열었다. 불세출의 두 영웅은 한국 프로복싱도 롱런하는 세계 챔피언을 배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력으로 입증했다. 장정구는 1983년 파나마의 알라리오 사파타를 3회 KO로 제압하고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벨트를 차며 ‘짱구의 시대’를 힘차게 열었다. 1988년 15차 방어 성공한 뒤 챔피언 벨트를 자진반납하기까지 그야말로 무풍지대를 달렸다. 장정구보다 2년 늦게 프로에 데뷔한 유명우는 1985년 미국의 조이 올리보를 15회 판정으로 물리치고 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등극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속사포 같은 연타능력을 앞세운 유명우는 ‘짱구’를 넘어 한국 프로복싱 최다방어(17차) 기록을 경신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프로복싱 최다연승기록(36연승)도 그의 주먹에서 나왔다. 지금도 스포츠 호사가들은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라는 우문을 던지며 두 영웅을 추억하곤 한다. 빛 바랜 추억의 앨범을 뒤적이며 두 영웅의 복싱 스타일과 숨어있는 X-파일을 들춰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두 영웅의 화려했던 과거를 추억해보면서 침체된 한국 복싱의 새 르네상스를 꿈꾸는 것도 이번 기획의 또 다른 의도다.

◇복싱 스타일, 바람 VS 물

두 선수의 복싱 스타일은 사뭇 다르다. 장정구의 복싱은 어디서 부는지 가늠하기 힘든 바람과 같다. 변칙 복서의 대명사다. 상대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대응하는 그의 복싱 스타일은 상대하기에 까다롭기 그지 없다. 스위치 복서에 예측불가능한 각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양한 주먹,여기다 상대의 리듬감을 깨뜨리는 노하우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그의 장기다. 일발필도의 주먹의 강도 역시 경량급으로선 수준급이다. 변화무쌍한 변칙복서의 기본은 스피드다. 다양한 리듬감으로 상대를 뒤흔들기 위해선 발군의 스피드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정구가 변화무쌍한 ‘바람’이라면 유명우는 담담한 ‘물’이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정통파 복서. 그러나 그는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플레이 템포를 끌어올려 상대를 허물어뜨린다. 잔잔하던 물이 서서히 속도를 붙여 거대한 물결로 일순간 돌변해 엄청난 에너지로 폭발하는 스타일이다. 잔잔하던 시냇물이 몸집을 몰린 뒤 거대한 폭포로 변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유명우는 전형적인 인파이터다. 선천적으로 주먹 강도가 약해 ‘한방’으로 경기를 끝내지 못하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연타 능력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게다가 리치도 짧아 상대에게 파고들어가 속사포 같은 연타를 작렬해 깨부수는 복싱 스타일을 확립했다. 그의 현역 시절 별명이 ‘작은 들소’, ‘작은 악마’로 불린 이유다. 피부가 하얘 유약한 이미지지만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달라진다. 쉴새없이 파고들어 상대의 혼을 빼놓는 인파이팅 능력은 실로 무서웠다.

유명우
(스포츠서울DB)
◇공통분모,초등학교 졸업후 복싱 입문한 프로지망생

두 선수의 복싱 스타일은 사뭇 다르지만 그들의 복싱인생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분명 존재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복싱에 입문한 뒤 일찌감치 프로행을 염두에 뒀다는 게 둘의 공통점이다. 부산의 빈민촌인 아미동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장정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진학을 포기하고 복싱에 입문했다.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이라는 뚜렷한 목표의식은 장정구의 복싱인생에서 든든한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유명우 역시 홍수환의 ‘4전 5기 신화’에 매료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복싱에 입문했다. 그러나 자신의 복싱 스타일이 아마추어와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일찌감치 프로행를 염두에 두고 착실히 기본기를 쌓았다. 유명우는 “몸이 늦게 풀리는 스타일인 만큼 아마추어 보다는 프로에 맞는 복싱 스타일이라고 스스로 판단했다”고 고백했다. 유명우는 아마추어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프로 복싱 스타일을 연구하고 지향할 정도로 뚜렷한 소신과 철학을 견지했다.

둘은 복싱 스타일은 달라졌지만 입문 과정과 목표의식은 붕어빵 처럼 닮았다. 어릴 때부터 프로 챔피언이라는 뚜렷한 목표의식으로 무장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복싱에 입문한 공통분모는 눈여겨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능력있는 프로모터와 지도력 있는 트레이너

프로복싱은 시스템이다. 아무리 우수한 선수가 있더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세계 챔피언을 배출하기는 힘들다. 두 영웅에게도 마찬가지다. 든든한 자본력을 앞세워 타이틀매치를 잡아올 수 있는 능력있는 프로모터와 지도력이 뛰어난 트레이너가 있었기에 성공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었다. 장정구에겐 ‘한국 프로복싱의 대부’가 프로모터로 붙었다. 극동중앙체육관을 이끌던 전호연은 장정구의 챔피언 등극을 위해 든든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의 돈 킹’이라고 불린 전호연과 필적할 만한 프로모터인 김현치는 유명우의 앞 길을 열었다. 1970년대 한국 프로복싱의 대표적인 스타플레이어인 김현치는 동아프로모션을 이끌며 후진 양성과 프로복싱의 큰 손으로 맹활약했다. 한국 프로복싱을 대표하는 두 명의 프로모터는 두 영웅의 성공시대 조력자로 큰 역할을 했다.

트레이너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장정구는 아마추어시절부터 자신을 지도했던 이영래 트레이너와 4차방어전부터 한솥밥을 먹었던 임현호 트레이너와 함께 큰 역사를 써내려갔다. 이 트레이너는 장정구의 복싱에 뼈대를 구축했고,임 트레이너는 동기부여에 뛰어난 관리형 지도자로 장정구의 성공시대를 도왔다.

유명우에게도 김진길이라는 명트레이너가 있었다. 김 트레이너는 유명우의 복싱을 완성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유명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지칠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한 연타능력은 김 트레이너가 추구하는 복싱 색깔이다. 그의 손에서 배출된 세계 챔프는 유명우를 비롯해 김철호 지인진 등 모두 세명인데 셋 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고래심줄 같은 체력과 불도저 같은 인파이팅 능력을 갖춰 복싱의 기술적 완성도가 높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X-파일,유명우의 수비능력과 장정구의 기본기

유명우는 뛰어난 연타능력을 지닌 인파이터다. 장정구는 변칙에 능한 복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두 선수는 상대를 평가할 때 색다른 시선으로 접근했다. 유명우는 장정구에 대해 “기본기가 가장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한다. 그의 논리는 명쾌하다. “장정구 선배는 어떤 선수가 올라오더라도 그에 맞게 다양한 스타일로 대처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탄탄한 기본기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복싱의 모든 스타일을 다 소화할 수 있기 위해선 상상을 초월하는 탄탄한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장정구는 유명우의 어떤 면을 높이 사고 있을까? 장정구 또한 일반 팬과 사뭇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유명우처럼 뛰어난 수비력을 갖춘 선수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 상대의 정타를 흘려 버리는 세련된 수비 테크닉은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

유명우의 디펜스 능력은 땀의 결과다. 유명우 스스로도 공격보다 디펜스 능력을 키우기 위해 많은 땀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내가 강한 주먹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늘 상대의 한방에 신경을 써야했다. 그래서 정교한 디펜스 능력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상대의 왼손 주먹이 나오면 이를 오른손으로 살짝 건드려 미스블로를 유도하는 등 수비 테크닉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상대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면서도 위빙과 더킹 등 디펜스 기술이 상대 주먹에 따라 반사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대가의 예리한 눈이 짚어낸 서로의 장점, 두 선수 복싱의 X-파일은 그렇게 자신의 복싱 스타일의 정반대의 지점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었다.

장정구
(스포츠서울 DB)

◇두 선수의 맞대결은 왜 성사되지 않았나?

스포츠의 속성은 타자와의 경쟁이다.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는 게 스포츠의 속성이라고 볼 때 두 선수의 상상속의 맞대결 결과는 여전히 흥미로운 논쟁대상이다. 그렇다면 당시 왜 두 선수는 맞붙지 않았을까.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은 국내 선수끼리의 통합 타이틀전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분명 흥행성은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힘들게 따낸 한국의 챔피언벨트 하나를 잃어버린다는 건 손해라는 민족적 정서가 통합전 불발에 크게 작용한 듯 하다.

둘째는 파이트머니와 중계방송 등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두 선수의 전성기 평균 파이트머니는 대략 1억원에 달했다. 통합전이라는 프레미엄까지 붙는다면 적어도 2배 이상의 파이트머니가 예상된다. 프로모터의 입장에선 섣불리 추진하기 힘든 큰 규모의 파이트머니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더욱이 돈을 투자하더라도 패한 쪽은 확실한 ‘캐시 카우’를 잃을 수도 있어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었다.

방송중계도 통합전 성사의 난관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당시 장정구의 중계권은 KBS가,유명우의 중계권은 MBC가 각각 보유했다. 따라서 방송 중계가 중요했던 당시의 프로복싱 환경에서 이원화된 중계권은 맞대결 불발의 또 다른 이유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두 영웅의 새로운 대결

우열을 가늠하기 힘든 퍼포먼스를 보여준 두 선수다. 장정구는 펀치력 스피드 테크닉 경기운영 능력 등 복싱의 모든 걸 겸비한 완성형 복서로 평가받는다. 유명우는 지칠줄 모로는 체력과 뛰어난 디펜스 능력 그리고 속사포처럼 쏟아붓는 연타능력이 돋보이는 인파이터로 세계 경량급 복싱을 호령했다. 둘이 싸운 상대의 클래스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장정구가 치른 19번의 세계타이틀전 중 무려 17번이 세계 챔프 출신(이후에 챔프에 오른 것도 포함)과의 맞대결이라는 사실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유명우의 세계 타이틀전도 세계복싱사에 길이 남을 화려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WBA 세계 타이틀전 성적 19승1패는 아직도 동급 세계 최고기록이다. 둘의 맞대결 결과를 점치는 전문가들의 생각은 결국에는 하나로 수렴됐다. “둘 다 색깔이 강렬한 복싱을 구사했기 때문에 현역 시절 맞붙었다면 1승1패로 호각세를 이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이제 새로운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장정구가 지난 4월 서울 장안동에 ‘장정구 복싱클럽’을 열고 복싱계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유명우는 YMW 버팔로 프로모션 대표로 활동하며 침체된 한국 프로복싱의 부활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현역 시절 불발된 두 선수의 맞대결은 장정구의 복싱계 컴백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누가 빨리 또 다른 영웅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현역 때 불발된 두 선수의 맞대결은 후진 양성이라는 더 큰 대결로 그 바통이 넘어갔다.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대결이 아닐 수 없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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