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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세의 전직 국가대표 출신인 이상우씨가 전통과 권위의 대통령배전국펜싱선수권대회에 출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15.08.01.고진현기자 jhkoh@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 칼 끝에 열정과 혼을 채웠다. 숨 죽였던 칼이 조화를 부리듯 용틀임을 하며 비로소 춤을 춘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노검객’이 보란듯 칼을 빼들고 전통과 권위의 제55회 대통령배 전국남녀펜싱선수권대회(8월1~9일·김천종합스포츠타운 실내체육관)에 힘찬 도전장을 던졌다. 국가대표 선발전도 겸하고 있는 이번 대회에 호기롭게 도전장을 던진 주인공은 이상우(58)씨다. 36년 전인 1979년 제 18회 대회에서 남자 에페 우승컵을 들어올린 전 국가대표 출신으로 세월의 흐름을 되돌리는 용기를 낸 끝에 다시 칼을 잡았다.

“아들뻘 되는 선수들과 부끄럽지 않게 경쟁해볼까 합니다. 그래도 칼을 잡고 다시 피스트에 서니 열정이 샘솟습니다!”

소풍가는 어린아이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30여년 만에 다시 칼을 잡은 이유가 궁금했다. “한국 펜싱의 중심이었던 ‘대구 펜싱’이 너무 침체돼 있어 예전 열기를 되살리기 위해 칼을 잡았습니다.”

그럴 만도 했다. 대구대학교 소속으로 국가대표로 전국을 제패할 당시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모교인 오성고등학교를 비롯해 경북여상 경북예고 등에서 씨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선수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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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세의 전직 국가대표 출신인 이상우씨가 전통과 권위의 대통령배전국펜싱선수권대회에 출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15.08.01.고진현기자 jhkoh@sportsseoul.com

도전은 늘 그렇듯 아름답다. 타자와의 경쟁은 별 의미가 없다. 어쩌면 그의 칼끝은 피스트 위의 상대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지 모른다.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며 도전인 셈이다. 요즈음처럼 어깨가 축 처진 나약한 50대 가장들에게 용기도 주고 싶었다. 삶의 전선에서 가족을 위해 쉼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이 땅의 아버지들을 대신해 녹슬었던 칼을 꺼내 들고 세상과 당당하게 맞서고 싶었다. 살 만해지고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가 생겼을 때 불현듯 떠오른 청춘의 꿈도 그가 칼을 다시 잡은 이유다.

“다시 태어나더라도 반드시 펜싱을 할겁니다. 그리고는 반드시 올림픽 무대에 설 겁니다. 우리 때는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했는데,지금 후배들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올림픽의 꿈?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온 그의 마음 한켠에 똬리를 틀고 있던 그 꿈의 실체가 올림픽 출전이라니,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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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씨와 함께 이번 대회에 출전하기로 한 대구 제일고 교사 허정오(왼쪽)씨와 화훼사업가 배정호(왼쪽에서 두번째)씨.

그의 이번 도전이 알려지자 두 명의 후배도 동참했다. 오성고 2년 후배인 이들 역시 1970년대 전국 무대에서 한가락 했던 펜서들이다. 대구 제일고 교사 허성오(56)씨와 화훼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배정호(56)씨도 세월의 흐름을 되돌린 이 선배의 아름다운 도전에 함께 했다. 이 세명의 50대 펜서들은 하루 세 시간의 훈련으로 몸을 만들었다. 몸은 녹초가 됐지만 하루가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고 했다. 의기가 투합한 이들은 이번 기회에 대구펜싱협회 소속으로 에페 단체팀도 만들었다. 이들의 아름다운 도전은 오는 5일 에페 예선전에서부터 시작된다. 50대 ‘노검객’들이 부르는 ‘칼의 노래’가 아름답다. 그들에게 승부의 결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미 그들은 세상의 편견을 깬 인생의 진정한 승자이기 때문이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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