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
2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2015 KBO리그 KIA와 한화의 경기 한화 이종환. 광주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요즘 우리야구 재미없어. 너무 빨리 끝나. 오늘부터 다시 길 게 할까?”

한화 김성근 감독이 서늘한 농담을 던졌다. 이동일인 목요일 경기부터 ‘한화다운 야구’로 돌려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김 감독은 2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5 KBO리그 KIA와 원정경기를 앞두고 “경기가 너무 빨리 끝나 재미없다”고 말했다. 경기시간 단축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들쑥날쑥하는 타격 컨디션 때문에 전날 일방적인 패배를 당한 것을 염두에 둔 얘기였다. 상대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맛이 올시즌 달라진 한화야구의 묘미인데, 전날은 그 맛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1996년 쌍방울과 현대의 플레이오프 2차전 하이라이트를 감상하며 “저 때보다 요즘 선수들이 확실히 잘 친다”며 회상에 젖기도 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30분도 지나지 않아 김 감독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KIA 선발투수 김병현을 맞이한 한화 타선은 1회초부터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1사 후 송주호가 6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사구를 얻어냈고, 2사 후 김태균도 6구까지 끌고가며 볼넷을 골라냈다. 안타 하나 없이 1, 2루 기회를 잡은 한화는 이종환의 중전 적시타와 한상훈의 볼넷, 권용관의 밀어내기 사구로 2점을 뽑아냈다. 3구 이내에 승부한 타자는 톱타자 이용규와 2사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8번타자 주현상뿐이었다. 김병현의 투구수는 1회에만 37개였다.

[SS포토]한화 이용규, 만루에서 2타점 2루타
2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2015 KBO리그 KIA와 한화의 경기 5회초 무사 만루 한화 이용규가 2타점 2루타를 친 뒤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광주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2회에도 한화의 맹폭이 이어졌다. 조인성이 삼진을 당했지만, 1루 땅볼을 치고 전력질주 한 이용규가 심판 판정합의제를 요구해 번복을 이끌어낸 뒤 도루와 송주호의 1루땅볼로 2사 3루 기회를 만들었다. 이성열과 김태균 이종환 한상훈이 4연속 안타를 뽑아내 4점을 몰아치며 ‘빅이닝’을 이뤄냈다. 상대의 작은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한화 특유의 집념이 되살아났다. 좌타자를 전진배치 한 김 감독의 노림수가 선취점을 뽑자 시너지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한화는 올시즌 잠수함 계열에게 약했다. 잠수함 투수를 상대로 리그 평균타율이 0.270인데 한화는 0.259로 롯데와 공동 8위에 머물러 있다. kt가 0.236로 9위, KIA가 0.224로 잠수함에게 특히 약한 팀으로 기록돼 있다. 5월 27일 대전에서 김병현을 상대로 5이닝 동안 8안타 4득점했지만, 4회까지 철저히 끌려간 기억도 있다. 김 감독은 송주호를 2번타순에 배치하고 이성열과 이종환을 김태균 앞 뒤로 포진하는 등 좌타자를 전진배치하는 노림수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용규(0.383) 이성열(0.318) 한상훈(0.333) 등이 김태균(0.500)과 함께 잠수함 계열에 강한 모습을 보였고, 특히 이성열은 김병현에게 3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해 기본좋은 기억을 가진 터였다.

한상훈
2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2015 KBO리그 KIA와 한화의 경기에서 한화 한상훈. 광주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4회말 3점을 내주며 6-3까지 추격당한 한화는 5회초 상대 투수의 제구난조와 결정적인 수비 실책을 발판삼아 6점을 뽑아냈다. KIA 두번째 투수로 올라온 신창호가 5회초 선두타자 한상훈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권용관에게 내야안타를 맞고 주현상마저 볼넷으로 내보내 만루가 됐다. KIA가 심동섭을 마운드에 올려 진화를 시도했고, 대타로 나선 정근우가 유격수 땅볼을 쳐 병살 위기에 빠졌는데 KIA 유격수 이인행이 타구를 글러브에 한 번에 넣지 못해 타자를 포함해 주자를 모두 살려줬다. 상대의 어이없는 실책으로 도망가는 점수를 뽑아내자 이용규가 반박자 빠른 스윙으로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 먹잇감을 꽉 움켜쥔채 비상하는 독수리의 모습 그대로였다.

김 감독이 농담처럼 표현한 “요즘 한화야구 재미없다”는 말은 선수들에게 주는 메시지였던 셈이다. 13개의 안타로 14점을 몰아친 한화는 14-7로 이겨 전날 패배를 깨끗이 설욕하고 홈으로 돌아갔다. 김 감독의 말처럼 5개구장 중 가장 늦게 끝나긴 했지만.

광주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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