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대한축구협회(KFA)의 안일한 태도가 한국 축구를 위기에 빠뜨렸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8강에서 탈락해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26일 인도네시아와 대회 8강전에서 승부차기 접전 끝에 패하며 4강에 오르지 못했다. 1~3위가 본선에 직행하고, 4위는 아프리카 기니와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통해 파리행에 도전할 수 있는데 한국은 아예 기회를 얻지 못했다.

굴욕적인 역사다. 한국은 1988 서울올림픽 이후 단 한 번도 올림픽행 티켓을 놓친 적이 없다. 1984 LA올림픽 이후 40년 만에 본선행이 불발됐다. 아시아 강자를 자처하던 한국은 이제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다.

결과적으로 황 감독의 겸직이 독이 됐다. 황 감독은 지난 3월 A대표팀 임시 사령탑을 맡았다. 이강인과 손흥민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가운데 국내 지도자가 중재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려 거부할 명분이 적었다.

황 감독이 A대표팀에 있는 동안 U-23 대표팀은 사령탑 없이 서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십에 참가했다. 서아시아 대회는 황선홍호에 매우 중요한 리허설 무대였다. 대회 직전 치르는 만큼 선수 기량과 컨디션을 파악하고 최적의 포메이션, 조합을 찾는 자리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했고, 옥석을 가리는 기준점이 됐다.

황 감독은 중요한 대회를 원격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함께 훈련하지 않았고, 직접 경기를 운영하며 꼼꼼하게 확인하지도 못했다. 현장에서 관찰하지 못했으니, 코치의 보고를 통해 듣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안컵을 보면 황 감독의 준비가 미미했음을 엿볼 지점이 여럿 있다. 포메이션 변화가 대표적이다. 1~2차전에서 포백을 썼던 한국은 3차전 일본전을 시작으로 스리백으로 전환했다. 난적 일본을 잡자 황 감독은 인도네시아전에서도 같은 전술로 나왔다. 그러나 한 수 아래 팀을 상대로 압박도, 점유도 제대로 하지 못해 주도권을 내줬다. 황 감독도 “내 실수”라고 인정했다.

인도네시아전에서 스트라이커로 강성진을 투입한 것도 선수 파악에 관한 의구심이 드는 장면이다. 강성진은 대회 내내 부진했다. 게다가 최전방 자리는 익숙한 선수가 아니다. 오히려 후반 들어가 맹활약한 정상빈 카드가 적절했다. 부상으로 60분 이상 소화하기 어려웠던 이영준을 차라리 전반에 넣는 것도 나을 뻔했다. “그렇게 쉽게 결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황 감독의 말대로 치열하게 고민한 후 선택한 카드라면, 선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릴 만하다.

황 감독은 27일 귀국 후 겸직 문제에 관해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결과에 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구구절절 얘기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다.

선을 그었지만 결과는 겸직이 U-23 대표팀에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왔다. 100% 집중하지 못한 채로 아시안컵에 돌입한 황 감독이 최상의 판단, 결정을 할 것이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를 강행한 KFA 정몽규 회장과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결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정 회장은 최근 몇 년간 ‘똥볼’을 연이어 차며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한국 축구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그는 승부조작자 사면 이슈를 시작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스스로 만들었다.

이번엔 올림픽 진출 실패다. 황 감독의 역량도 부족했지만, 무리수를 둔 정 회장에게 근본 원인이 있다는 데 이견을 제시하는 쪽은 거의 없다. 능력과 자질에 물음표가 생긴 정 회장은 현재 자리를 지켜야 할 명분마저 사라졌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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