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제주=표권향 기자] 제주도에 봄이 왔다. 곳곳에 벚꽃이 만개했고, 들판에 핀 아카시아꽃부터 이름 모를 아기자기한 들꽃까지 향기를 뽐낸다. 제주공항도 설렘 가득한 가족·연인·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가득 찼다.

그런데 4.3을 앞두고 파란 하늘의 제주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벚꽃잎은 바람에 흩날려 거리로 떨어졌고, 사연 있는 듯한 비가 계속 내렸다. ‘제주 4·3 사건’ 올해로 76주년이다.

◇ 말발굽에 치인 아이를 인지 못 한 경찰, ‘제주 4.3 사건’의 시작이었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3월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제주인 희생 사건이다. 제주도민 대부분을 폭도, 빨치산 등으로 몰아 무작위로 총·칼을 휘두른 전국적 대량 학살 참극이다.

여전히 남아있던 일본 흔적과 친일파 청산을 위한 ‘3·1절 기념제주도대회’ 기념행사가 제주시 북초등학교(현 제주북초등학교)에서 열였는데, 도민을 폭도로 오인한 총격이 일어났다.

경찰의 무분별 사격으로 젖먹이를 안고 있던 여인을 포함해 6명의 관람 군중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8명이 상처를 입었다.

해방 직후 전국적으로 정치 이념이 혼란스런 상황에서, 극우청년단체 ‘서북청년회(서청)’ 단원이 제주에 입도해, ‘빨갱이 사냥’을 구실로 테러를 벌였다.

결과적으로 마을 전체가 몰살당하는 등 제주도민 3만 명이 희생됐다. 평화롭던 제주도가 ‘붉은 섬’으로 불리게 됐다.

제주 4.3 생존자 및 유가족들은 “대부분 농사, 고기잡이하던 지극히 평범했던 도민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 군인들의 총과 창살로 목숨을 잃었다. 거칠게 생명줄을 잡고 있던 이들은 확인 사살했다”라고 진술했다.

이 사태는 1954년까지라고 기록돼있지만, 사실 군사정권 때까지 이어졌다. 제주 4.3 사건 학살터를 동일한 목적으로 지속 사용했기 때문이다.

◇ 만약 그 때로 돌아간다면…11살에 멈춰버린 소녀의 꿈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산간 지역에 통행을 금지하며, 위반하는 자에 대해서는 그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폭도로 인정해 총살했다.

초토화 작전이 시작됐고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로 변했다.

당시 11살이었던 홍춘호(87세) 할머니는 제주 4.3사건으로 아버지와 남동생 셋을 잃었다.

평화로웠던 시절, 무등이왓마을 주변의 죽대로 바구니를 만들어 시장에 팔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죽대밭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마을로 들이닥친 무장공대를 피해 지역 주민만 아는 굴속으로 몸을 숨겼다. 미처 피하지 못했거나 토벌대의 지시로 ‘무등이왓(마을 중심지)’로 모인 주민들은 모두 총 혹은 죽창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또는 찾아낸 굴속에 폭탄을 터뜨리거나 불을 피워 사망했다.

토벌대는 잠복해 있다가 시신을 수습하러 온 주민들도 죽였고 생명이 붙어있으면 몸에 불을 붙여 죽창으로 찔렀다. 갓난아기, 임산부, 노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제주 4.3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홍 할머니를 비롯한 생존자와 유가족은 여전히 오해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홍 할머니는 “그때로 돌아가면 요즘 젊은이들처럼 멋도 내고 좋은 데로 여행 가고 싶다. 그땐 세수만 해도 감사했었다”라며 “마을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하면 시선이 좋지 않아 후손에게까지 숨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우리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이 들어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많은 아픔의 사연이 있지만, 1949년1월12일, 토벌대와 무장대의 교전 중 집 앞에 나왔다가 턱을 잃은 여인의 사연도 있다. ‘무명천 할머니’로 불리는 고(故) 진아영 할머니의 이야기다.

진 할머니는 제주 4.3 후유 장애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경찰 토벌대가 쏜 총알에 턱을 맞아 55년 인생을 잃었다. 당시 35세. 턱이 없어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렸고, 평생 후유장애를 앓다 2004년 소천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2일 국내외 언론인과의 만남에서 “제주 4.3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닌 유가족과 국가 간 화해와 상생으로 거듭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역사가 왜곡되지 않고, 희생자들에 대한 예우를 갖추자는 뜻을 담아 강조했다.

제주는 관광, 카페, 맛집 등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이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 속 여행지이기도 하다. gioia@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