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계를 이끌고 있는 화가 정상곤의 개인전 ‘Skin deep-풍경처럼’ 이 지난 9월 12일부터 10월 9일까지 갤러리이마주에서 열렸다.

정상곤 작가는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화단에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1998년 탈린 국제판화 트리엔날레와 1999년 류블랴나 국제판화 비엔날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전세계적으로 알려왔다.

‘Skin deep-풍경처럼’ 은 특정 장소의 재현이나 혹은 풍경에 대한 작가의 감흥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수행적 태도와 그것이 화면에서 회화적으로 구축되는 과정을 중시한다.

DSC_9291
정상곤의 ‘Skin deep - 풍경처럼’.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DSC_9315
정상곤. 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따라서 작품이 ‘그럴듯한 풍경’으로 보이도록 끊임없이 물감을 바르고 그 흔적이 흐르고 번지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화면과 그 너머의 풍경 사이를 오가며 매 순간 펼쳐지는 작품의 물질적 기호들을 자극함으로써 우리들의 보편적 감각경험을 일깨우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성들을 흔들고자 하는 것이다.

정상곤 작가는 “화면에는 상충되는 여러가지의 소재가 존재한다. 각각의 소재는 저마다 의미를 가지며 화면을 채우고 있다. 사물에 대한 회화적인 즉흥성에 관념을 섞었다. 느끼는 대로 감상하면 된다” 며 감상의 포인트를 전했다.

DSC_9262
정상곤의 ‘Skin deep’.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DSC_9302
정상곤. 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DSC_9256
정상곤의 ‘Skin deep’.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작품 제목의 ‘Skin deep’은 생물체의 피부의 두께처럼 아주 얇은, 피상적인, 혹은 표피적인 것 혹은 그러한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풍경을 읽고 씀(인식하고 그리다)에 있어서 표피의 다이내믹한 변화에 집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상곤은 “‘Skin deep’은 화실에서 발견한 뱀의 허물을 보고 따 온 제목이다. 투명하고 깨끗한 허물은 나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며 “존재와 부존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나에겐 운명과도 같은 명제다. 앞으로도 같은 주제로 작업할 생각이다” 고 말했다.

이번 정상곤 개인전 ‘SKIN DEEP-풍경처럼’ 에서 감성에 충실하면서도 회화적인 표현과 날것의 풍경이 주는 큰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글 사진 | 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DSC_9235
정상곤의 ‘Skin deep’.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DSC_9288
정상곤의 ‘Skin deep’.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DSC_9257
정상곤의 ‘Skin deep’.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다음은 미술평론가 박영택이 쓴 정상곤 개인전에 대한 평론이다.

<정상곤의 화면은 들끓는 질료들의 혼돈 상태를 드러낸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유동적이고 걷잡을 수 없는 속도감이나 흔들림, 눅눅한 습기와 끈적임, 떨림의 상태로 자욱하다. 격렬한 운동감이 느껴지고 시간의 흐름과 그 풍경을 대면했을 때 파생되는 감각의 멀미들이 밀어닥치는 듯하다. 흡사 영상적으로 진동하는 화면이자 디지털적 감성이 아날로그적 그리기와 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다. 유화물감을 녹이는 용매제의 과잉은 화면 전체를 습하게 만들어놓아 화면 안에 놓인 물성들은 고정되지 못하고 부유한다. 물감을 묽게 흘리고 번지고 빠르고 격렬하게 붓으로 긋고 칠하고 문질러댄 자취들만이 가득하다. 필연과 우연이 공존하고 이미지와 질료가 넘나들고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재하고 표면(껍질)과 깊이가 뒤섞이는,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회화다. 몇 겹의 층을 이루는 표면의 흔적이 얼핏 산과 바위, 폭포와 나무, 풀들을 떠올려준다. 그것들은 대기감 속에 아득하게 펼쳐져 있고 습기와 바람, 훅 하고 덤벼드는 숲의 눅눅한 내음, 물소리 등을 환각적으로 안겨주는 편이다. 그림을 이루는 존재론적 조건인 물질과 용매재, 그리고 물리적인 법칙의 순응과 함께 몸놀림, 그림 그리는 매 순간 개입하고 반응하는 몸의 감정, 감각의 층차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흔적으로 가득하다. 경험했던 자연풍경을 기억하고 그림 그리는 순간 창문밖에 자리한 자연풍경을 바라보면서 파생되는 감정들을 수렴해서 매순간 펼쳐지는 물감의 물질적 기호들로 그려내고 있다. 나는 오래 전에 그가 제작했던 일련의 석판화가 떠올랐다. 그 회화적 자취로 흥건했던 석판화 스타일이 현재의 풍경화에 오롯이 환생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는 캔버스에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그가 경험한 날것의 풍경, 그 풍경의 살과 내음을 표현하는 그만의 회화를 만들고자 한다. 그것은 있는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으로 세계를 세우는 일이다. 기존 풍경화/회화라는 코드를 부단히 벗어나거나 갱신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상곤은 여전히 전통적인 매체인 캔버스와 유화, 붓을 통해 그리고 아날로그적인 그리기를 수행 하면서, 저 역사적인 풍경화를 다시 그린다. 그러나 그는 풍경을 다시 읽고 스타일을 문제 삼는다. 납작한 캔버스 표면에 감각의 줄질을 한다. 그래서 화면위로는 감각의 묘선들, 혼잡한 감각들이 이룬 붓질, 색채, 질료덩어리, 몸의 놀림들이 지나가고 얹힌다. 그가 칠한 색과 질료덩어리는 단지 윤곽선으로 이루어진 내부를 채우거나 장식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순수 상태의 회화적 사실을 구현해낸다. 자기 몸의 감각으로만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 세계/풍경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토록 얇은 표피 위에 무한한 깊음을 갈망하면서 말이다.>

DSC_9293
정상곤의 ‘Skin deep’.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