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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산 간재와 곰재 사이에 펼쳐진 ‘철쭉평원’

[스포츠서울 | 장흥=황철훈기자] 여행지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3가지는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고, 여행의 가장 큰 변수는 ‘날씨’다. 궂은 날씨는 여행의 설렘을 반감시킨다. 하지만 이런 상식을 깨는 곳이 있다. 날씨와 상관없이 감동을 주는 곳, 바로 전라남도 장흥이다. 현지 토박이는 ‘자응’이라고 부른다.한반도 남쪽, 다도해를 품은 장흥은 볼거리, 즐길거리는 물론 맛있는 먹거리가 넘쳐나는 풍요로운 고장이다. 장흥의 젖줄인 탐진강이 품어낸 산과 들은 사시사철 풍성한 농산물을 키워내고 청정 다도해와 득량만은 싱싱한 해산물을 원 없이 내어준다. 이름하여 미식·경(美食·景) 여행지다. 아침부터 잔뜩 흐린 하늘. 궂은 날씨를 상쇄하고도 남을 미식(美食)의 감동. 전남 장흥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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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를 지나 곰재로 지난 길에 마주한 암봉. 이 암봉을 끼고 돌아들면 장엄한 철쭉의 향연이 시작된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붉은 철쭉의 향연 ‘제암산’

임금제(帝)자와 바위암(岩)자를 쓰는 제암산은 정상에 솟은 임금 바위를 향해 주변의 바위들이 엎드린 모습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려한 산세와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그윽한 풍경이 일품인 제암산은 남도의 명산이자 전국에서도 손꼽이는 철쭉 명소다.

특히 5월이 되면 능선을 따라 핀 철쭉이 마치 붉은 비단을 펼쳐놓은 듯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철쭉이 펼쳐낸 핑크빛 장관은 사자산 능선을 따라 간재와 곰재를 거쳐 형제봉과 제암산 정상 너머까지 길게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간재와 곰재사이에 펼쳐진 철쭉평원이다. 산행 시작점은 장흥공설공원묘지다. 주차도 가능하다. 가장 빠르고 쉬운 코스는 공원묘지에서 출발해 간재를 거처 곰재사이의 철쭉평원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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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하게 들어찬 철쭉군락 사이로 미로처럼 좁다란 길이 이어진다.

공원묘지에서 임도를 따라 간재 방향으로 한 시간 가까이 오르면 길 안내 표지판과 함께 왼쪽 등산로가 나타난다. 비탈진 등산로를 따라 약 500여 미터만 오르면 붉은 물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사자산과 제암산을 잇는 고갯마루 바로 간재다. 산비탈을 따라 붉은 철쭉군락이 위용을 드러낸다. 하지만 아직 감동하긴 이르다. 아직 서곡에 불과할 뿐이다. 빼곡히 들어찬 철쭉군락은 사람 키를 훌쩍 넘어 마치 미로처럼 좁다란 길을 만든다. 완반한 오르막을 오르면 눈앞에 건물 3~4층 높이의 거대한 암봉이 나타나고 암봉을 끼고 돌아들면 제암산 철쭉의 본진이자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 ‘철쭉평원’을 마주한다. 붉은 물결이 넘실대는 철쭉평원은 사자산과 제암산의 수려한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천상의 화원’을 펼쳐낸다. 1시간 30분 산행으로 얻은 선물 같은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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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임금 바위 아래로 붉은 철쭉 군락이 마치 수를 놓은 듯 펼쳐져 있다.

특히 저 멀리 제암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차지한 임금 바위가 인상적이다. 마치 주위 산들을 호령하는 듯한 형상이다. 어찌보면 면류관과도 닮아있다. 임금 얘기가 나왔으니 장흥(長興)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덧붙인다. 고려 인종이 아내인 공예왕후의 고향이 ‘길게 흥하라’는 뜻으로 ‘길 장(長)’자에 ‘흥할 흥(興)’자를 써 장흥이라 이름 붙이고 장흥도호부로 승격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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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랜드 치유의 숲 ‘말레길’

◇온 가족의 힐링 쉼터, 편백숲 ‘우드랜드’

우드랜드는 억불산 자락에 조성한 숲으로 40년 이상 된 아름드리 편백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넓이가 자그마치 100㏊에 달한다. 특히 이곳은 지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마음의 평온과 위로를 여행자들에게는 희망과 활력을 주는 이른 바 힐링 숲이다. 우드랜드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불편한 계단을 없애고 데크길을 조성해 놨다. 이용의 장애을 없앤 이른바 ‘열린관광지’다. 아울러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웰니스 관광지 25선으로 뽑은 곳으로 정부가 공식 인정한 ‘국민 쉼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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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에서 만난 ‘음이온 폭포’

편백 톱밥을 깔아놓은 폭신한 산책로를 시작으로 주변 곳곳을 돌아봤다. 이곳의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치유의 숲길이다. 숲길은 걷기 좋은 평탄한 나무 데크길이다. 이곳에서는 말레길이라 부른다. ‘말레’는 이 지역의 방언으로 대청마루를 뜻한다. 방과 방을 이어주는 마루처럼 소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어지는 데크길은 시원스런 폭포수를 만나고 황칠나무, 둥글레 등 수많은 식물군도 마주할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상념을 벗고 무심히 데크길을 걷는다. 정적이 감도는 숲길에 어디선가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온다. 봄바람에 실려 온 편백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순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온몸을 초록으로 물들일 것 같은 숲이 마치 위로하듯 몸을 감싼다.

우드랜드는 힐링 숲은 물론 온 가족이 다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과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한옥, 황토흙집 등 숙박시설을 비롯해 난대자생식물원, 억불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말레길(3.8㎞), 생태건축체험장, 편백소금찜질방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특히 가족여행객이라면 편백소금찜질방을 추천한다. 말 그대로 편백소금찜질방은 내부 전체를 소금과 편백으로만 구성해놓았다. 입구 휴게공간의 붉은 소금 벽돌 기둥과 의자를 시작으로 전체 바닥과 벽이 모두 편백이다. 소금 동굴을 지나면 편백 반신욕방과, 소금 마사지방, 황토방 등 다양한 테마로 구성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휴양과 건강 체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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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량만과 유채꽃밭이 한데 어우러진 ‘선학동 마을 풍경’. 그림같은 풍경이 따로 없다.

◇영화의 감동과 문학의 향기가 가득한 ‘선학동 마을’

선학동 마을은 장흥군 회진면 바닷가에 자리한 마을로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다. 봄에는 노란 유채꽃 물결이 가을에는 메밀꽃 하얀 물결이 득량만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특히 이 마을은 장흥이 고향인 작가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의 촬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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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장흥군 회진면에 자리한 이청준 생가 ②이청준 생가 툇마루에서 바로 본 풍경 ③영화 ‘천년학’ 세트장 ④천관문학관

마을 입구에는 두 마리 학이 어우러진 석상이 길손을 반긴다. 유채꽃밭은 산비탈을 따라 드넓게 펼처져 있다.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신록이 물든 산과 저 멀리 바다 그리고 농가 주택이 시시각각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마을 길은 산비탈을 따라 오르고 내리는 길이지만 비교적 순해 쉬엄쉬엄 걷기 좋다. 문학의 향기를 더 느끼고 싶다면 마을 인근에 있는 이청준 생가와 천관문학관 방문을 추천한다.

‘一’자 한옥인 이청준 생가는 소담스럽게 가꾼 정원과 장독대가 어우러진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시원한 대청마루에 앉아 작가의 대표작인 ‘서편제’를 읽어도 좋고 따스한 봄기운을 받으며 정원에 핀 작약을 감상해도 좋다. 뭘 하든 행복한 봄날이다. 또 천관문학관에서는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 이 지역 출신 문학가들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작가들의 프로필은 물론 육필원고와 작품 등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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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건물이 죽산 안씨 문중의 사당인 ‘만수사’, 오른쪽 한칸짜리 건물이 바로 안중근 의사를 처음 모신 사당이다.

◇안중근 의사를 모신 국내 유일 사당 ‘해동사’

장흥면 장동면에 있는 ‘해동사’는 사찰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독립 영웅 ‘안중근 의사’를 모신 사당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그의 숭고함을 기릴 수 있는 공간이다. 원래 이곳은 장흥지역의 죽산 안씨 문중의 사당 ‘만수사’만 있었다. 이 지역 유지였던 안홍천(1895-1994)씨가 안중근 의사의 제사를 지낼 후손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문중과 지역 유지를 규합해 1995년 만수사 옆에 한 칸짜리 안의사 사당을 세운 게 시작이다.

이후 한 칸짜리 해동사가 안의사의 공적에 비해 너무 작다하여 문중과 유림, 지역주민이 만수사 아래 터를 마련하고 안의사 순국 90주년인 2000년에 3칸짜리 건물을 새로 지었다. 바로 지금의 해동사다. 해동사에 걸려있는 편액 ‘해동명월(海東明月)’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써서 내렸다. 해동(海東)은 바다 건너 동쪽 즉 ‘대한민국’을, 명월(明月)은 밝은 달로 풀어쓰면 ‘대한민국을 밝게 비춘다’라는 뜻이다. 결국 안중근 의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순흥 안씨인 안의사의 사당을 죽산 안씨 문중이 세운 것은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죽산 안씨의 시조 안원형(1318-?)이 순흥 안씨 시조 안자미의 7세손이자 성리학을 고려에 전한 안향(1243-1306)의 증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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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장흥삼합 ②장흥삼합의 주재료 장흥 한우, 키조개, 표고버섯 ③맛나숯불갈비집 ‘생고기’ ④장흥 한우와 득량만에서 얻은 키조개, 해풍으로 키워낸 장흥 표고버섯의 완벽한 조화. 바로 장흥삼합이다.

◇장흥에서 만나는 맛의 신세계

장흥에서 꼭 먹어봐야 할 별미 중 으뜸은 ‘장흥삼합’이다. 장흥 인구보다 더 많다는 ‘장흥 한우’와 해풍을 맞은 ‘표고버섯’ 득량만이 내어준 싱싱한 ‘키조개’를 구워 함께 먹는다. 부드럽고 담백한 한우와 쫄깃한 표고, 야들야들한 키조개 관자가 입안에서 맛의 신세계를 연출한다. 장흥삼합을 맛볼 수 있는 곳은 많지만 특히 유명한 곳은 장흥읍에 있는 ‘맛나숯불갈비’다. 이곳은 정육식당처럼 상차림비를 내고 저렴한 가격으로 고기와 표고버섯, 키조개를 직접 골라 먹을 수 있다. 또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에서도 장흥삼합과 한우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한라네소머리국밥
①한라네 소머리 국밥집 ②토렴으로 말아내는 ‘소머리 국밥’ ③소머리 국밥 ④선지 국밥

이 밖에도 시장 안에 이름난 국밥집이 있는데 바로 ‘한라네 소머리 국밥’집이다 .이 집은 한우 머리고기를 미리 삶아 낸 국 그릇에 뜨거운 육수를 부었다 따랐다를 반복하는 토렴식으로 국밥을 말아낸다. 진한 육수와 푸짐한 머리고기가 든든한 아침을 책임진다. 잡내 없이 끓여낸 선지해장국도 일품이다.

키조개 요리
①득량만에서 얻은 싱싱한 키조개 ②키조개 표고 탕수 ③키조개 회무침 ④키조개 구이

키조개 요리도 장흥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전국 키조개 생산량의 40%가 이곳 득량만에서 나온다. 구워 먹어도 맛있고 새콤달콤 양념에 무쳐 먹어도 맛있다. 특히 키조개는 미네랄과 무기질이 풍부한 저지방 저칼로리 식품으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다. 수문항 인근에 있는 갯마을횟집에 가면 신선한 키조개와 바지락을 새콤달콤한 양념으로 무쳐낸 회무침을 맛볼 수 있다.

갑오징어
①갑오징어 회 ②갑오징어 찜 ③먹찜 ④먹찜 볶음밥

통통히 살이 오른 갑오징어도 장흥의 별미다. 갑오징어는 회로도 먹고 통째로 쪄서도 먹는다. 통째로 쪄내는 먹찜은 야들야들한 살과 내장 그리고 먹물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남은 먹찜에 밥을 볶은 먹찜 볶음밥도 별미다. 마치 리소토를 먹는 것 같은 담백하고 고소한 맛에 차진 식감이 입안을 행복하게 한다.

color@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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