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생 서예
팔순이 넘어 서예가로 변신한 이유생 전 한국중고태권도연맹 회장.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80세에 붓 잡았다고 하면 깜짝 놀라…인생은 도전, 누구나 할 수 있다.”

1980~1990년대 국기태권도를 보급하는 데 이바지한 이유생(83) 전 대한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이 팔순이 넘은 나이에 ‘명필 서예가’로 변신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지난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중고연맹 8~9대 회장을 역임한 1세대 태권도인이다. 국내 태권도 저변 확대는 물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태권도 시범단을 이끌고 주요 나라를 순방,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의 길로 들어서는 데 디딤돌을 놓았다.

이유생 중고연맹 회장 시절
이유생 전 대한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이 지난 1990년 회장기에서 대회기를 전달하는 모습. 스포츠서울DB

어느덧 팔순의 어르신이 된 이 전 회장은 ‘삼평(세계·나라·가정의 평화)’이라는 호(號)를 사용하는 서예가로 변신했다. 2019년 지역 행정복지센터(동사무소)에 서예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지원한 게 연이 됐다. 그는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젊은 시절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팬 글씨도 썼고, 서예도 집에서 혼자 했다. 수양이 되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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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6월 열린 제32회 인천광역시 서예대전에서 붓을 잡은 이유생 전 회장의 모습.

바쁘게 지낸 ‘그때 그 시절’에 못다한 글재능을 뒤늦게나마 진지하게 펼쳐 보이고 싶었다. 이 전 회장은 “서예반의 한 젊은 후배가 ‘선생님, 붓을 씌우려면(글을 쓰려면) 7년 정도 걸릴 것’이라더라. 내 나이가 서예에 도전하기엔 너무 많다는 얘기였는데 오기가 더 생겼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송천 홍재환 씨에게 기초를, 보름 손근식 씨에게 행서, 초서를 배웠다고 한다. 젊은 시절 태권도에 혼을 바쳤던 것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붓을 잡았다. 2020년 초 코로나19 여파로 주민센터 서예반 운영이 중단됐을 때도 ‘스승의 체본’을 받아 집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몇몇 서예작품전에 출품해 입선에 성공했다. 그는 “처음엔 ‘내 글이 어느 정도일까’라는 생각에 몇 군데 출품했는데 곧잘 입선됐다. 이후 2020~2021년 주요 대회는 거의 다 나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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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생 작품 중지동천
제공 | 삼평 이유생

이 전 회장의 작품은 주요 서예 작품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제16회 대한민국 금파 서예대전 명필상, 제11회 안중근의사 서예대전 삼체상, 제24회 홍재미술서예대전(영조대왕) 특선 등 지난 2년간 54곳에서 입선, 특선 등 수상했다. 다수 서예 전문가는 그의 작품에 대해 “붓에 힘이 느껴지고 안정감이 있다”며 짧은 경력에도 자신만의 붓글씨를 완성해나가는 것을 극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지난해 10월 경기도서예대전 초대작가전에 출품한 ‘중지동천(대중의 뜻이 모으면 하늘도 움직인다)’이다. 이 전 회장은 “젊은 시절 강원도 횡성에서 ‘시강’ 선생께 ‘통집군원(統輯群元)’이란 글을 받은 적이 있다. 민주적으로 다수(군중)를 거쳐 으뜸가는 의사를 밝히라는 의미인데 서예의 큰 힘을 느꼈다. 요즘 시대 글을 쓰는 데도 큰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이젠 이 전 회장이 자신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글 선물을 한다. 앞으로 추사체도 배울 예정이란다. 그는 “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회에 유의미한 글을 쓰고, 팔순이 넘어서도 도전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더 나아가 국기 태권도를 전 세계에 알린 것처럼,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 회장은 미국 LA 한인타운에 운영 중인 ‘삼평장학재단’과 한국서예협회와 공동 주최하는 서예전을 올 하반기 현지에서 개최할 뜻을 품고 있다. 그는 “협회 회원이 70~80점 정도 기부해서 전시회를 열려고 준비 중이다. 수익 전액은 어려운 환경에 놓인 재미교포 2,3세를 지원하는 데 쓸 예정”이라며 한글 세계화를 위한 공익 활동에도 발 벗고 나서겠다고 밝혔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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