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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 정다워기자] 지도자 인생 제3막이 열린다.

황선홍(53) 23세 이하(U-23) 대표팀 신임 감독의 지도자 인생에는 우여곡절이 있다. 2003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코치로 시작한 황 감독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부산 아이파크에서 처음으로 사령탑을 맡아 일했다. 지도자로서 토대를 닦는 시기였는데 FA컵과 리그컵에서 준우승을 이끄는 등 나름의 경쟁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열린 첫 번째 막은 해피엔딩 그 자체였다. 2011년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 사령탑에 오른 그는 2012년 FA컵 우승을 이끌며 지도자로서 첫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황 감독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2013년 K리그1과 FA컵에서 더블을 달성하며 젊은 명장 반열에 올랐다. 없는 살림에도 신진호와 이명주, 고무열, 김승대 등 잠재력 있는 선수들을 폭발시키며 포항의 마지막 영광을 이끌었다. ‘스틸타카’라는 브랜드와 더불어 어린 선수의 성장을 돕는 지도자라는 긍정적인 인상까지 남겼다.

2012 하나은행 FA컵 경남FC-포항스틸러스
2012년 포항 스틸러스 시절 FA컵 우승후 헹가래를 받고 있는 황선홍 감독.스포츠서울 DB

포항에서의 성공적인 행보 덕분에 황 감독은 2016년 더 큰 규모의 클럽인 FC서울에 입성했다. 전북 현대의 승점 삭감 사건이 있긴 했지만 첫 해에 서울을 K리그 정상에 올려놓으며 승승장구 했다. K리그를 넘어 한국 최고의 지도자로서 인정받던 시기였다.

여기까지가 제1막이었다. 이어 열린 제2막은 비극이었다. 황 감독은 서울에서 선수단 장악에 애를 먹었다. 데얀 같은 K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는 물론이고 국내 베테랑 선수들과도 갈등을 빚었다. 결국 2017년 5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2018년에는 성적 부진으로 인해 4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서울에서의 상처를 뒤로 하고 황 감독은 2018년 말 중국 갑급리그의 옌볜 푸더로 향했다. 그런데 팀이 2개월 만에 돌연 해체되면서 실직자가 됐다. 예상 밖 불운에 다시 한 번 마음고생을 한 시기였다.

[SS포토]데얀의 선제골 축하하는 황선홍 감독
2016년 FC서울 감독 시절의 모습.스포츠서울 DB

황선홍
2020년 대전하나시티즌을 이끌었던 황선홍 감독.스포츠서울 DB

1년 가까이 휴식한 황 감독의 차기 행선지는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전환한 대전하나시티즌이었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그는 2부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대전의 성적은 지지부진했고, 설상가상으로 팀 수뇌부와의 소통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황 감독은 설 자리를 잃었다. 결국 한 시즌을 채우지 못한 채 9월, 다시 야인이 됐다.

정확히 1년 후, 황 감독의 지도자 인생 제3막이 열렸다. 대한축구협회는 15일 황 감독을 다음해 열리는 아시안게임, 2024년 열리는 올림픽을 이끌 사령탑으로 낙점했다. 내리막길에서 소중한 기회를 잡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커리어, 그리고 곧 50대 중반에 접어드는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내려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축구계에서는 황 감독의 U-23 대표팀 부임을 마냥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프로팀에서 우승까지 달성하며 2002 영웅으로 이름값이 있는 지도자가 연령대 대표팀에 가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크다.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빅네임’을 선호하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성향에 불만을 드러내는 축구인도 많다.

결국 황 감독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임무를 손에 들었다. 지금까지의 시련과 축구계에서의 회의적인 시선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U-23 대표팀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야 한다. 당장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황 감독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이다. 황 감독은 “이 자리를 통해서 검증을 제대로 받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과거보다 미래는 중요하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이고 발전적인 모습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라는 출사표를 던졌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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