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게은기자] 공포 영화라고 해서 긴장감 한가득인 그림을 떠올렸는데, 웬걸 부부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호러 한 스푼 섞인 미국판 '부부의 세계' 같다고 할까. 쫄깃함을 기대하며 이 작품을 봤다면 텅 빈 감정을 마주할 터. 공포보다 스릴러 치정극에 가까운 넷플릭스 '허드앤씬(Things heard & seen)'이다.


영화는 캐서린(아만다 사이프리드 분)과 조지(제임스 노턴 분) 부부가 중심이다. 이들은 예쁜 딸도 낳아 평범하면서도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렸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조지가 교수로 임용되고 경제적 어려움이 생겨 겸사겸사 교외로 이사하며 금이 간다.


이 가족은 고택에 둥지를 틀었는데 캐서린은 집을 마주했을 때부터 음산함을 느낀다. 결국 전 집주인들의 영적인 존재를 마주해 혼란을 느끼는 가운데, 조지는 교수로 자리를 잡아 활기를 보인다. 그런 남편을 보며 캐서린은 고립감을 느끼고 이는 갈등으로 번진다. 영혼의 존재도 알렸지만 무심하게 반응해 골은 깊어간다.



본격적인 균열은 이제 시작이다. 조지는 외도를 하고 교수 추천서를 위조한 사실이 들통나는가 하면, 가정에 장애물이 되는 자들을 제거하는 등 악랄함을 드러낸다. 거짓 범벅인 남편의 실체를 알게 된 캐서린은 구토를 하며 "내 결혼 생활을 토하는 중이야!"라며 일갈하기도. 결국 두 사람의 인연은 죽음이라는 파국으로 마무리된다.


'허드앤씬'에서 귀신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초반엔 긴장감을 만들지만 곧 힘이 빠지고 마는데, 그 이유는 귀신을 공포의 대상으로만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이 집에서 캐서린을 위로하는 건 전 집주인 부인의 영혼으로, 캐서린은 자신과 닮아 보이는 부인의 서사에 위안을 받는다. 조지의 악행을 부추기는 혼령도 나오지만 부인의 선한 영혼이 더 또렷하게 그려진다.



오히려 서스펜스를 높이는 건 조지로, 인간의 말로를 제대로 보여주며 불길함을 조성한다.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로 귀신보다 끔찍한 건 살아있는 인간들의 악행이라는 걸 감독은 보여주는 듯했다. 더욱이 캐서린이 괴롭지만 딸을 위해, 또 이성적인 해결을 위해 감정을 줄곧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 불편한 기운은 더 농도 짙게 전달됐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흥미는 딱 여기까지다. 러닝타임을 119분이나 채우기엔 얼개가 헐겁다. 귀신의 경우 존재 이유와 비중이 애매모호해서 다른 방향으로 다뤘다면 어땠을까 싶다. 사실 몇 번 등장하지도 않는다.


또 캐서린 역시 갑자기 외도를 하고, 조지가 보트를 끌고 나가 죽음을 맞이하는 몇몇 뜬금포 장면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설명이 부족한 시퀀스가 적지 않고 전개도 느슨해 흐름도 지루하다. 또 결과적으로 공포보다는 부부의 갈등에 집중된 어설픈 스릴러로 장르도 두서없이 섞여 정신이 없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했는데 선택과 집중이 안 돼 아쉽다.



이 작품은 엘리자베스 브런디지의 소설 '올 싱스 시스 투 어피어(All Things Cease to Appear)'가 원작이다. 영화를 먼저 본 관객이라면 원작이 궁금해질 테지만 그 물음표를 아쉬운 지점들이 지울 분위기다.


주역들의 호연은 훌륭했다. 사이프리드와 노턴은 노련한 생활연기, 감정연기를 선사했다. 일궈온 것들이 깨지며 겪는 복잡다단함을 세밀하게 완성한 사이프리드, 선과 악 미스터리한 두 얼굴을 살린 노턴의 입체적 연기는 몰입도를 높여 아쉬움을 채웠다. 특히 사이프리드의 경우 '맹크'로 지난달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된 만큼 더욱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데 역시 탄탄한 연기력으로 중심을 잡아준다.


eun5468@sportsseoul.com


사진ㅣ넷플릭스,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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