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민 원장
3옥타브 장인 김윤민 원장.

[스포츠서울 이웅희기자] 연예인, 유튜버 그리고 그 외 유명인들이 고액기부를 했다는 뉴스가 종종 나온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눈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힘든 일을 마치 밥 먹고 잠 자듯 자연스럽게 하는 이들도 있다. 서초동에서 ‘3옥타브장인’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보컬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윤민 원장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고시원에서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으며 공부를 하던 와중에도 힘든 사람이 있으면 달려가 쌈짓돈을 건네 주던 김윤민 원장은 선한 영향력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

-보컬 학원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어렸을 때부터 집이 많이 가난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원활하게 학교를 다닌다는 건 내겐 너무 큰 욕심이었다. 부모님도 어렵게 자란 분이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셨다보니 여러모로 교육이라는 걸 받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 자연스레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졌고, 결국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덕분에 여러 가지 일을 남들보다 일찍 접하게 되었다. 건강과 학력 상의 문제로 군대도 면제를 받았지만 남들이 다 가는 곳을 나만 가지 않는 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원 입대를 했다. 전역한 이후 이벤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 때 많은 가수들을 접하며 그들이 받는 소위 행사비가 엄청나게 큰 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도 그들처럼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래서 보컬 공부를 시작했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몰라 일단 고시원을 들어가 평일에는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택배 상하차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내가 보컬 공부를 시작했던 20여년 전에는 발성 교육이라는 게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못했다. 인터넷을 뒤지고 음대의 논문까지 살펴봤지만 방법론적으로 명확한 내용을 찾기 어려웠다. 그 때 생각했다. 내가 10년을 공부하면 지금 나와 있는 내용들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날 이후로 해부학, 생리학, 과학, 역사, 언어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발성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 싶으면 미친 듯이 공부했다. 그렇게 10여 년을 공부한 끝에 남들과는 다른 커리큘럼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개인 과외를 통해 확실하게 결과물을 얻은 학생들이 늘어갔다. 입소문을 타자 수강 문의가 미친 듯이 들어왔고, 밀려드는 수강 문의를 감당할 수가 없어 학원을 개원하게 됐다.

김윤민

-학원 이름이 특이하다. 이름에 얽힌 사연이 있나?

흔히 3옥타브라고 하면 노래를 타고 난 사람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10년을 공부한 끝에 내린 결론은 노래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은 있어도 노래를 못하게끔 타고난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은 단지 노래를 못하게 만드는 안 좋은 습관이 있을 뿐, 애초에 그들이 노래를 못하게 타고나지는 않았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안 좋은 습관들만 고칠 수 있으면 누구나 노래를 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게는 그 기준이 3옥타브였다. 나는 베이스든 테너든 성종과 관계 없이 누구나 3옥타브까지는 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고, 그렇게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그냥 소리를 질러서 내는 3옥타브가 아닌, 학생들의 가창 음역대를 3옥타브까지 끌어 올려주었다. 학원을 개원할 당시 이름을 공모로 정하게 됐는데, 실제로 내게서 3옥타브라는 경험을 얻은 학생들의 지지에 힘입어 3옥타브장인이라고 이름을 짓게 되었다.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낼 수 있는 3옥타브를 만들어주는 장인이라는 뜻이다.

-연축성 발성 장애를 교정했다는 후기가 많다. 실제로 교정이 가능한가?

질환을 고쳤다고 이야기하는 건 의료의 영역이라 내가 섣불리 말하기 조심스럽다. 다만 연축성 발성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학원에 찾아왔을 때, 이를 교정해주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연축성 발성 장애가 있는 사람이 말하는 걸 보면 공기를 뱉는 타이밍이나 혀 모양, 몸이 수축하는 정도, 호흡근의 움직임 등을 본다. 길어야 5분이면 그 사람의 문제가 어떤 부분인지 파악할 수 있다. 이후에 내가 해주는 것은 간단하다.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발성장애를 타고난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살아오며 생긴 안 좋은 습관이 발성 장애를 만드는 거다. 나는 올바른 소리가 나오는 원리를 알기 때문에 발성 기관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발성법을 사용하도록 유도해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따로 돈을 받지도 않는다. 학원에 찾아와 상담을 하면 그들이 가진 문제점을 알아보고 교정 수업을 진행한다. 보통 3번 정도 교정 수업을 진행하고 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발성을 통해 평범한 사람처럼 말을 하고 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기부나 봉사 활동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인가?

개인 레슨을 시작한 이후에는 꾸준히 보육원을 다니며 봉사 활동을 했다. 암 환우나 백혈병 환우를 돕기도 하고, 더운 여름에는 대구의 보육원에 선풍기를 300대 기부하기도 했다. 한 번은 월세가 밀려 쫓겨날 지경이라는 미혼모를 찾아가 밀린 월세와 3개월치 월세를 미리 내주고 쌀과 먹을 음식들을 사다 줬다. 평화의 소녀상이나 백범 김구 동상을 네티즌 대표로 세우기도 했다. 자살하겠다는 사람이 있어 한밤중에 직접 찾아가 옷과 신발을 전해주고 공장에 취직할 수 있게끔 도와주기도 했다. 기부 영수증 같은 것을 끊어본 적이 없어서 지금까지 얼마나 했는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지도 모르겠다. 그냥 앞으로도 쭉 기부와 봉사활동을 하고 있을 예정이라 굳이 이것 저것 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김윤민
독립 민주 통일 상징 조형물 건립 협약식에 참석한 김윤민 원장

-선행을 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가?

어렵게 살던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봉사 활동을 했다. 푸세식 공동 화장실을 쓰는 단칸방에 4인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도 신문 배달을 해서 생긴 월급은 구세군 냄비에 넣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보다 못 사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했나 싶다. 부모님께 공부 대신 배운 것은 측은지심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었다. 음악 공부를 할 때도 주말 상하차로 월 40만원 정도를 벌고 나면 월세를 내고 남은 돈은 기부를 했다. 반찬을 살 돈이 없어 매일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었지만 기부하는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다. 내게는 어렸을 때부터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해왔던 일이고,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냥 하는 거다. 유교에서 말하는 오상(五常)이라는 게 있다. 인의예지신이라는 5가지 기본 덕목이다. 그걸 지키면 잘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 구실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살고 있을 뿐이다.

요즘 선한 영향력이라는 키워드가 사회 곳곳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선한 행동은 널리 알리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 선행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많은 선행들이 그냥 사람 구실을 하는 것 뿐”이라며 사람 좋게 웃는 김윤민 원장의 선한 영향력이 밝게 빛나고 있다.

iaspire@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