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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정지택 신임총재(가운데)가 지난 5일 취임식에서 구단 사장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퀀텀점프’를 하려면 톱다운 방식의 의사결정이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정지택 총재가 뚜렷한 과제와 마주했다. 과연 일하는 총재를 볼 수 있을까.

위기는 시나브로 찾아온다. 붕괴 직전 발생하는 다양한 전조를 민감하게 관측하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 사후약방문식 대응으로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없다. 인천 야구의 맹주로 자리매김한 SK가 구단을 매각한 것도 KBO리그에는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신세계그룹이 이마트 브랜드를 앞세운 유통혁신을 선언했고, 돔구장 건립 등 달콤한 미사어구로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현실화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오히려 SK가 쏘아 올린 신호탄이 야구단 운영에 회의감을 느끼는 그룹들의 마음을 움직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라파엘 나달
기아그룹은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 중 하나인 호주오픈에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테니스 간판 스타 라파엘 나달이 기아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공=기아차그룹

재계 정통한 관계자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따내지 못하거나, 구단주가 야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일부 구단을 제외하고는 야구단 운영이 합리적인지를 두고 그룹 내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지난해 몇몇 그룹이 야구단 매각을 검토했다가 코로나 한파로 마음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SK텔레콤은 이 때까지만 해도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룹 내 역학관계와 신세계그룹의 공격적인 제안으로 기습 매각에 성공했다. 삼성그룹이 라이온즈를 포함한 스포츠단을 제일기획으로 이관한 뒤 독자생존을 요구한 것도 프로 스포츠단을 바라보는 그룹 총수들의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KBO는 구단 창단과 관중 수 등 외형 확장에 매몰돼 삼성이 보낸 시그널을 놓쳤다.

KBO 정운찬 전 총재는 ‘야구를 통한 힐링’을 강조했지만, 임기 3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시간만 보냈다. 그사이 국가대표 전임감독 논란을 시작으로 히어로즈 옥중경영, 팬 사찰 파문 등이 일었고, 음주와 성폭행 등 각종 일탈행위가 끊이지 않아 ‘야구를 향한 힐난’만 남았다. 문제가 불거지면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해 KBO리그는 매년 부정적인 이슈로 뒤덮였다. 총재가 책임감을 갖지 않으면 사무국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할 수 없다. 더구나 KBO는 작은 사업 하나라도 구단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구단간 의견이 다르니 만장일치가 아니면 의결을 보류하기 일쑤다. 총재의 권한을 책임있게 행사하려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대다. 정지택 총재가 개선해야 할 첫 번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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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정지택 신임 총재가 지난 5일 취임식에서 구단 사장단에 앞서 취임식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총재는 24시간이 모자라야 한다. 신세계그룹이 야구와 유통을 접목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면 정, 관, 재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구단 수익구조를 개선하려면 야구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 총재가 지자체장을 직접 만나 조례 개정 등을 요구해야 한다. 기업이 상업 목적의 체육시설을 보유할 수 없는 법도 국회에 읍소해 개정해야 한다. 위드 코로나 시대는 관중 입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관중수익이 구단의 주요 수입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존폐를 걱정해야 한다는 게 엄살이 아니다. 올해는 서울과 부산 등 지자체장 보궐선거가 있고,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구단주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총재가 해야 할 역할이다. 한국 사회는 톱다운 방식의 의사결정 구조가 가장 빠르고 확실하다. 그룹 총수들이 프로야구를 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마음먹으면 KBO리그 생태계가 바뀐다. 구단주가 동의해 선임된 총재인 만큼 구단주들과 상생 방안을 논의하고, 로드맵을 그려 각 구단 사장들에게 내려보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리저리 눈치만 보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면, 힘들게 확장해 놓은 10개구단 체제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SK가 보낸 시그널을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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