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캔버라(호주)=장강훈 기자] “소리질러!”

파격이다. 예상은 했지만 결정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터. 오전 내 그라운드 이곳저곳을 배회하듯 다니다 공식발표 뒤 비로소 어깨를 늘어뜨렸다. “구단과 약속이어서 코치진은 물론, 가족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KIA가 13일 이범호 타격코치를 11대 신임감독으로 선임했다.

오전 훈련 때는 타격코치였다. KIA는 호주 캔버라 나라분다 볼파크에서 시즌 담금질 중인데 오전 훈련이 종료된 정오(현지시간) 무렵 감독 선임 소식이 날아들었다. 권윤민 운영팀장 주도로 선수단이 집결했고, 감독으로 격상한 이 신임감독이 앞에 섰다.

“KIA 감독으로 선임된 이범호입니다”라고 인사한 그는 “훌륭한 코치진, 좋은 선수들과 팀을 끌어갈 수 있어 무한한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은 하고 싶은 플레이를 마음껏 하기를 바란다. 달라진 건 없다. 코치일 때와 똑같이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면서 밝은 타이거즈를 만들고 싶다. 팀에 입히고 싶던 색깔이 있으니 선수 여러분이 많이 도와주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짧고 굵은 취임소감을 밝힌 이 신임감독은 “사람 쉽게 변하겠는가. 현역 때부터 긍정적인 마인드로 생활했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도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타이거즈는 ‘하지마’라는 문화가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우리 선수는 제어하면 주눅드는 성향이 많다. 너무 좋은 멤버들 아닌가. 이 선수들에게 마음껏 소리지르고 하고 싶은 야구를 할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얼마나 더 성장할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떠들썩한 분위기로 그라운드를 매일 축제로 만드는 것이 이 신임감독이 입히고 싶은 ‘타이거즈 색깔’이다.

그는 “지난 10일 화상으로 면접했다. 대면이 아니어서 꽤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고 웃은 뒤 “12일 저녁에 ‘됐습니다. 축하합니다’라는 얘기를 듣고 타이거즈에서 보낸 14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방 커튼을 열어젖히고 1,2분 생각에 잠겼다. 올 게 왔다는 생각도 했고, 그린대로 운영하자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이 신임감독이 그린 그림은 ‘야구장 나오는 길이 즐거운 팀’이다. 서로 경기에 나서려고 경쟁하면서도 서로 기운을 북돋고 마음을 합치는 팀을 꿈꾼다. 그는 “2017년 통합우승할 때 선수단 전체가 정말 똘똘 뭉쳤다. 그때가 가장 그리운 시절”이라며 “선수가 하고 싶은대로, 기본적인 예의에서 벗어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원하는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현역 때부터 ‘차기 감독감’이라고 평가받았다.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로 코치 연수를 떠났지만 코로나19 팬데믹(전 세계 대유행)으로 조기 귀국했고, 곧바로 코치로 신엄됐다. 2021년 2군 총괄코치로 퓨처스리그를 한 시즌 지휘한 뒤 2022년 1군 타격코치로 선수들과 호흡했다.

이 신임감독은 “2군 운영총괄로 경기를 운영한 경험이 크게 도움됐다. 투타뿐만 아니라 선수교체, 작전 등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본 게 주효했다”며 “초반에는 타이밍이 계속 한박자씩 늦더라. 그래서 (성패를 떠나) 교체든 작전이든 한박자 빠른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초보 사령탑의 한계’라는 평가를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퓨처스팀 감독 경험으로 대신한 셈이다. 그는 “화려한 멤버 때문에 성적에 대한 부담이 있지 않느냐는 말씀도 하시는데, 선수가 없어 고민인 것보다는 좋지 않으냐”며 ‘긍정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좋은 선수를 이끌고 감독하면, 결과에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성공하면 그대로 가는 것이고, 실패하면 ‘이게 내 능력’이라고 인정할 것 같다. 선수들이 자신의 야구를 마음껏 펼치면 팀 성적도 따라올 것으로 생각한다. 베테랑 코치진도 계시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은 크게 없을 것 같다”며 자세를 낮췄다.

이 신임감독은 2025년까지(계약금 3억 연봉 3억 등 총액 9억원) 팀을 이끈다. 2년 내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야 다음이 있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다. KBO리그 최초의 80년대 사령탑(대행 제외)이 그려갈 새로운 야구에 팬 시선이 집중된다. 수장을 만난 KIA 선수들은 만연에 미소를 가득 싣고 오후 훈련 일정을 소화하러 걸음을 재촉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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