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항저우=김동영기자] 국제대회에서 ‘아름다운 4위’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실적’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 이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 이가 있다. 여자 우슈 대표팀 서희주(30·전남우슈협회)다. 실적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빛나는 선수다.

서희주는 2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샤오산 구아리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슈 투로 여자 검술·창술에서 최종 총점 19.423점을 획득해 전체 4위에 자리했다.

라이 샤오샤오(19.600점·중국), 자라 키아니(19.436점·이란), 두옹 뚜이 비(19.426점·베트남)가 각각 금메달-은메달-동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간발의 차이였다. 서희주는 두옹 뚜이 비에 단 0.003점 뒤졌다. 그야말로 한끗 차이로 메달을 놓쳤다. 무려 9년을 기다린 무대. 결과가 너무나 아쉬웠다.

2014 인천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 투로 여자 선수 역대 최초의 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를 앞두고 강력한 금메달 후보라 했다. 그런데 연기를 펼치지도 못했다.

2018년 8월19일. 서희주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아시안게임 우슈 여자 투로 검술·창술 전능의 검술 연기에 나서기로 되어 있었다. 첫 번째 순서였다.

취재진이 대거 몰렸다. 금메달을 따면 대회 한국의 1호 금메달이었다. 정작 서희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순서인 자라 키아니가 나서 연기를 시작했다. 당혹스러운 순간.

부상이 문제였다. 연기에 앞서 워밍업을 하다 우측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서희주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출전 의지를 보였으나 코치가 말렸다.

당시 서희주는 “마지막에 점검 차원에서 연습을 했는데, 착지 과정에서 무릎이 꺾였다. 억지로 경기에 나서려고 했다. 무릎이 따라주지 않더라. 코치님이 말렸다. 10년 넘게 훈련하면서 잔부상도 없는 편이었다. 어이없이 부상을 당했다. 끔찍한 꿈 같다”며 펑펑 울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무릎 수술에 아킬레스건 수술까지 받으면서도 꾸준히 기량을 유지했다. 2019년 세계무예마스터십 여자 장권에서 금메달, 세계우슈선수권대회 검술 동메달 등을 거머쥐었다.

경쟁력은 여전했고, 2023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여자 장권 전능에서 1위에 올랐다. 여전히 한국 여자 우슈의 ‘간판’으로 군림하고 있다.

오랜 시간 최정상을 유지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두 차례 수술까지 받았다. 투로 종목은 검과 창을 다루면서 고난도 점프 동작까지 많다. 착지 과정에서 무릎과 발목에 충격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이가 들수록 점프력도 떨어지기 마련.

아시안게임만 놓고 보면, 2010 광저우에 처음으로 나서 2014 인천에 2018 자카르타-팔렘방을 거쳐 2022 항저우까지 왔다. 무려 4개 대회 출전. 17살에 첫 대회에 나서 30살이 됐다. 십수 년 세월이다. 이 기간을 버텼다. 그것도 정상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것은 아쉬울 수 있다. 무엇보다 서희주 본인이 가장 아쉽고, 아까울 것이다. 그래도 3등과 거의 대등한 숫자를 찍었다. 메달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연기를 했다는 의미다.

서희주는 대회를 마친 후 “내 경기에는 만족한다. 메달 획득 여부를 떠나 준비했던 것을 후회 없이 펼쳤기에 행복하다. 나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며 웃었다.

은퇴를 생각했다가 잠시 미뤄두고 이번 아시안게임에 왔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메달이 없으니 그렇다. 그러나 서희주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4위’로 기억될 것이다. raining99@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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