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기자] 건강한 견제는 자취를 감췄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하게 마음대로 행동한다.

클린스만 감독은 유럽 원정을 마친 후 지난 14일 입국해 19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대한축구협회는 “10월 명단 발표 전에 K리그 선수를 먼저 확인하는 업무를 시작하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라고 밝혔지만 그는 단 5일 만에 한국을 떠났다. 클린스만 감독은 16일 전북 현대와 강원FC, 17일 FC서울과 광주FC, 두 경기만 관전했다.

통제 불능 상태다. 클린스만 감독은 원래 유럽에서 미국으로 곧장 건너갈 계획이었지만 한국으로 들어와달라는 협회 요청으로 입국했다. 협회가 “코칭스태프 회의에서 일정이 변경됐다”라고 밝힌 것과 달리, 겨우 두 경기를 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한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클린스만 감독이 K리그를 봐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지겨울 정도다. 클린스만 감독은 엔트리의 절반 정도는 국내 선수로 채워야 하는 현실은 외면한 채 원격 업무, 유럽파 관찰에 집착하고 있다. 부상이 아니라면 어차피 뽑을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나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등을 굳이 만나러 다니는 이유는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을 지경이다. 협회와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도 이제 이슈 밖으로 밀려날 만큼 클린스만 감독의 행보는 황당 그 자체다.

현재 상황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클린스만 감독의 이기적인 행동을 통제할 인물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협회 대다수의 관계자도 클린스만 감독의 잦은 외유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A대표팀 사령탑이라는 정점에 있는 감독을 컨트롤할 사람은 협회 내에 없다고 봐야 한다.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이 있던 시절만 해도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 위원장이 대표팀 지도자와 소통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김 위원장은 위원회 프로세스를 거쳐 직접 벤투 감독을 선발했으니 그럴 자격, 권한이 있었다. 김 위원장 스스로 A대표팀 감독에게 경기나 훈련, 혹은 대표팀 운영 계획에 관한 보고를 받고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때로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건강한 토론과 견제도 있었다. 월드컵 16강의 원동력 중 하나였고, 한국 축구가 추구해야 할 인사 시스템의 모범 모델이었다.

현재 협회 내에서 김 위원장이 하던 역할을 맡을 인사는 없다. 마이클 뮐러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 해야 할 일이지만,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애초에 인사 프로세스가 작동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당시 선임 위원회 위원과 구체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의견도 제대로 청취하지 않았다. 일부 위원은 선임 확정 후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위원회의 기능이 마비된 채로 들어온 인물이 바로 클린스만 감독이다. 사실상 정몽규 회장의 선택을 받아 선임됐으니, 누구도 클린스만 감독에게 쓴소리를 할 수 없다. 국내 기술 파트 책임자도 당연히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상근 부회장이 하기에도 벅찬 일이다. 정 회장 외에 관여할 임원은 없다. 지금이라도 시스템을 손 보지 않으면 클린스만 감독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로 일할 게 분명하다.

협회 사정을 잘 아는 한 원로 축구인은 “김판곤 위원장 시절에는 한국 정서를 잘 모르는 외국인 감독과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졌다. 지금은 다들 눈치만 볼 뿐이다. 누가 통제할 수 있겠나. 협회가 저런 행동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할 사람을 새로 세우지 않는 이상 클린스만 감독은 계속 마음대로 행동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이 전무이사로 일하던 2020년 전까지 잘 굴러가던 시스템은 협회의 몇 차례의 단계적인 ‘인사 참사’를 거치며 사라진 상태다. 불과 3년 전에도 협회는 ‘일 잘하는 조직’이었다. 협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대체 누구의 책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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