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류현진이 돌아왔다.”

짧고 담백하다. 특별한 수식어가 필요하지도 않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닷컴)은 21일(한국시간) 그레이트아메리칸볼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와 원정경기에 선발등판해 5이닝 동안 안타 4개를 내주고 삼진 7개를 빼앗으며 비자책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류현진(36·토론토)에게 “돌아왔다”는 짧고 담백한 찬사를 보냈다.

가치가 떨어져서 찬사가 짧은 게 아니다. MLB닷컴은 “오늘 투구는 류현진의 전성기가 어땠는지 일깨워주는 모습이었다. 많은 투수처럼 더 세게 던지지도 않고 ‘와’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공도 없었지만, 영리했다. 어리거나, 공격적인 타자는 류현진을 상대할 때 아주 위험하다. 타자의 스윙과 간절함을 누구보다 잘 읽어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와’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시속 100마일짜리 강속구도, 타자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질만큼 각 큰 브레이킹 볼도 류현진에게는 없다. 그는 이날 평균 87.4마일(시속 약 141㎞)짜리 포심 패스트볼과 평균 68.8마일(시속 약 111㎞)짜리 커브에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섞어 신시내티 타선을 요리했다. 커브는 몸쪽, 체인지업은 바깥쪽(이상 우타자 기준)으로 구사해 앞뒤뿐만 아니라 좌우 타이밍을 완벽히 흔들었다.

보더라인을 파고드는 ‘류현진표 속구’는 비록 시속 140㎞를 간신히 웃도는 스피드였지만 ‘젊은 빅리거’들은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영리하고, 담대하며, 타자의 머릿속을 꿰뚫고 있는 것 같은 투수여서 ‘코리안 몬스터’로 불리는 이유를 증명한 역투였다.

이날 류현진의 투구는 ‘힘의 시대’를 보기 좋게 비웃었다. 야구는 속도가 전부가 아니라는 진리를 실현하고 있어서다. 류현진의 역투에 적어도 야구인, 특히 현장 코치진은 ‘대단하다’고 감탄만 할 게 아니라는 의미다.

류현진은 다리를 들어올려 힘을 모으고, 중심이동을 통해 견고한 축을 세우고, 축을 바탕으로 몸의 회전력을 극대화하고, 이 회전력을 볼끝에 집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릴리스포인트가 일정하고, 오차가 거의 없는 제구는 ‘손기술’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이 어떻게 힘을 쓰고, 제어하는지 알고 던지므로 구속이 아닌 제구로 빅리그를 호령하는 것이다.

KBO리그는 수년째 투수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해마다 열리는 신인드래프트 때 전체 지명선수의 60~70%를 투수로 선발하지만, 1군에 자리를 잡는 경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수준이다. 장신에, 강속구를 던지는 아마추어 선수를 선발해도 제구난조로 1군에 쓸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시속 150㎞를 던져도 스트라이크를 꽂을 수 없으니 빠른 공을 던지는 선수에 그친다.

1군 투수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힘있는 속구를 10개 중 한 개도 원하는 곳에 던지는 투수가 사실상 없다. 선발투수가 한 경기 100개 중 60개를 속구로 던진다고 가정할 때 이 중 20개를 원하는 곳에 마음먹고 찔러넣을 투수는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야구는 투수놀음인데, 운에 맡기는 운영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야구 수준이 높아질 수가 없다.

언젠가부터 코치진이 선수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꼬집는 게 금기시됐다. 선수의 야구를 존중한다는 게 이유다. 프로선수인만큼 자존심을 지켜줘야 한다는 게 불문율처럼 정착했다. 코칭의 원칙은 선수가 장점을 발현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는 것이다. 올바른 투구 메커니즘 정립은 투수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동력인데 “투구폼이나 기술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건 금기”라고 발을 빼면, 동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롱런하는 투수가 많지 않은 원인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에서,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강속구’에 열광한다고 모든 투수가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스피드는 타고나야 하는 요소가 크기 때문이다. 언제든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능력은 노력으로 보완할 수 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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