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경무전문기자] “아직도 믿을 수 없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꿈 같았어요. (세계선수권대회) 결승 한번 올라가는 게 제 꿈이었거든요. 일단 파트너(신유빈) 너무 고맙고, 오늘 경기 나오는 거 모두 도와준 분들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탁구 국가대표로 성공하기 위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지 어언 13년째. 어눌했던 한국 말도 이제 다소 유창해진 듯 했다.

한국인은 아니지만 오랜 동안 한국 여자탁구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해왔던 전지희(31·미래에셋증권). 그가 인고의 세월 끝에 30살을 훌쩍 넘어 마침내 화려한 빛을 발했다.

26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인터내셔널컨벤션센터(DICC)에서 계속된 2023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챔피언십(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인전) 여자복식 4강전.

전지희는 띠동갑인 ‘탁구신동’ 신유빈(19·대한항공)과 함께 세계 1위 인 중국의 쑨잉샤(23)-왕만위(24)를 3-0(11-7, 11-9, 11-6)으로 완파하고 결승에 오르며 최소한 은메달을 확보했다.

세계 최강 중국 탁구를 충격에 빠뜨린 세계 12위 콤비의 ‘반란’이었다. 세계대회 3연패를 노리던 상대를 꺾었기에 기쁨은 더했다.

중국 허베이성 랑팡시 출신으로 중국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지낸 전지희. 그로서는 지난 2011년 한국으로 귀화해 탁구선수로 새 출발한 이래 너무나 오랜 기다림 끝에 이뤄낸 값진 성과다. 이러기까지 그는 숱한 좌절과 실망을 겪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

지난 2008년 전지희를 데려온 김형석 당시 서울시청 감독(현 화성시청 감독)은 이날 4강전을 새벽잠을 설쳐가며 지켜본 뒤 스포츠서울과의 통화에서 “지희가 정말 잘 치더라. 귀화 13년 만에 성과를 낸 것이다”며 흐뭇해했다.

김 감독은 “유빈이 탁구도 올라왔기 때문에, 둘의 케미가 잘 맞은 것 같다. 생각보다 쉽게 이겼다. 완전히 쑨잉샤와 왕만위를 압도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김형석 감독은 지난 2011년 3월 포스코에너지(현 포스코인터내셔널) 여자탁구단이 창단될 때 초대 감독으로 취임했고, 전지희를 귀화시키며 에이스로 쓰기 시작했다. 전지희 랭킹포인트를 끌어올려 국가대표로 만들기 위해 김 감독은 그와 함께 브라질 등 전세계 곳곳을 누비며 오픈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지구를 한 5바퀴 이상은 돈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런 노력에도 전지희는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금, 은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특히 개인전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때 혼합복식에서 김민석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6 리우올림픽 때는 메달은 따지 못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는 여자단식 동메달을 획득했다. 1년 연기돼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때는 노메달로 부진했다. 2021 휴스턴 세계선수권(개인전) 때는 신유빈과 짝을 이뤄 여자복식에 출전했으나, 신유빈이 부상으로 기권하면서 개인전 올림픽 메달 꿈도 무산됐다. 당시 여자단식에서는 32강에서 탈락했다.

그러면서 전지희의 선수 인생도 서서히 마감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말 포스코인터내셔널과의 계약이 만료되자 미래에셋증권으로 팀을 옮겨 재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신유빈과 호흡을 맞추면서 환상의 케미로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까지 바라볼 수 있는 처지가 되는 등 높이 날아올랐다.

전지희는 세계 7위 중국의 첸멍(29)-왕이디(26)와의 결승을 앞두고 “옆에 유빈이가 있기 때문에 겁없이 파트너 믿고 즐겁게 경기할 생각”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경기시간은 28일 오전 1시30분(한국시간)이다.

그는 결승 진출 뒤 “살면서 이런 무대, 결승은(처음이다)…. 저도 그렇고 유빈이도 그렇고 탁구인생, 모든 인생에서 아쉬운 점 없게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지희가 자신이 태어난 나라 선수들한테 비수를 꽂으며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금메달 감격을 누릴 지 주목된다. kkm100@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