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火魔). 불이 나서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우리는 “화마를 입었다”고 표현한다. 화재에 굳이 악마를 의미하는 마(魔)자까지 붙인 걸 보면 우리 조상들이 불로 인한 피해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알 만 하다.

최근 필자 집 근처 야산에서 불이 나 소방헬기가 몇 차례나 왕복하며 물을 뿌리는 모습을 보았다. 강한 바람 때문에 불길을 잡기 어려웠던지 한낮에 시작된 산불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완전히 꺼졌다.

그리고 며칠 뒤 강릉에서 큰 불이 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강풍을 탄 불길은 순식간에 축구장 530여 개 면적을 뒤덮었고 총 17명의 사상자를 낸 뒤 겨우 잡혔다고 한다. 이 화재로 인해 강릉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건조한 날씨 때문인지 화재 소식은 전국적으로 계속 들려오고 있다.

당신이 사는, 혹은 일하는 건물에 불이 났다고 가정해보자. 당장 떠오르는 대응책이 있는가? 세가지 이상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이 칼럼을 보면서 복습을 한번 해보자. 사실 필자도 복습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를, 그리고 한번도 접속해보지 않았을 ‘국민재난안전포털’을 보면 자연재난이 일어났을 때 해야할 국민행동요령이 정리되어 있다.

이 중 아주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짚어보면, 화재 경보가 울리면 불이 실제로 났는지 확인하려 하지 말고 소리를 질러 주변 사람에게 알리고 재빨리 탈출에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경보기 오작동 때문에 몇 번이나 속아서 뛰쳐나갔다고 해도, 화재 경보기는 양치기 소년이 아니다. 또 울리면 ‘진짜 불이 났나?’라며 확인하려 하지 말고 얼른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연기가 들어오는 방향과 손잡이의 온도를 체크해야 한다. 화재로 인한 사망 원인 중 1위는 연기나 유독가스를 흡입해 질식하는 경우다. 불이 아직 가까이 있지 않더라도 연기는 환기구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빠르게 번지는 만큼 연기가 들어오는 쪽으로는 절대 가서는 안 된다.

또한 문을 열어야 할 경우 손잡이가 뜨거운지 확인해야 한다. 손잡이가 뜨겁다면 그 문 반대편은 이미 불길에 휩싸였다는 의미다. 다른 탈출경로를 찾아야 한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종 서바이벌 도구가 있다면 화재시 탈출하는 과정에서 최고의 도구는 ‘젖은’ 수건이나 옷, 담요 등이다. 물에 충분히 적셔진 수건 등은 연기를 덜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고 몸에 두를 경우 불에 의한 직접적인 화상도 어느 정도 막아준다.

행동요령에 적혀있긴 하지만 과연 사람들이 따라할 수 있을까 싶은 내용들도 있다. 그 중 첫번째가 ‘작은 불일 경우 소화기나 양동이를 이용해 신속히 끄도록 한다’는 것이다. 소화기 사용법은 소화기 자체에도 잘 적혀있고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눈 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고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소화기를 작동시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특히 화재를 보고 이를 자신이 끌 수 있을지, 피해야 할 지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결국 일정 수준 이상의 훈련이 담보되어야 하는 행동요령이라고 할 수 있다. 완강기 사용 역시 마찬가지다. 독자 중 자신이 사는 건물 어디에 완강기가 설치돼 있는지 알거나 설사 안다고 해도 이를 한번이라도 사용해본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역시 지속적인 알림과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시 한번 정리했지만 지금 기억한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또 잊기 쉬운 내용들이다. 그럼 이런 방법은 어떨까.

2019년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엑시트’라는 작품이 있다. 화재는 아니지만, 유독 가스를 피해 주인공 일행이 탈출하는 과정이 그려졌는데 이 중 방독면 사용법, 지하철 등에서 점자 블록을 이용해 앞이 안 보여도 길을 찾는 방법, SOS 모스 부호 등 실제로 필요한 재난대처요령 등이 잘 표현돼 있다. 즐겁게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저절로 이런 요령들이 머리 속에 각인돼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노경열 JKD KOREA 이소룡(진번) 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노 관장은 기자 출신으로 MBN,스포츠조선 등에서 10년간 근무했으며, 절권도는 20년 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현재는 서울 강남에서 JKD KOREA 도장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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