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떨군 대한민국 야구[포토]
WBC 대표팀 선수들이 10일 도쿄돔에서 열린 2023 WBC 예선 B조 일본전에서 패한 후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도쿄 |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김동영기자] 위험하다면 위험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기존 틀을 깨야 하기에 쉽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일이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통해 한계를 봤다. 나아지려면 달라져야 한다.

이번 2023 WBC에서 한국은 1라운드 B조에 속했다. 일본, 호주, 체코, 중국과 묶였다. B조가 제일 약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작 뚜껑을 여니 양상이 달랐다. 예선 통과에 실패했다. 3개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 호주에 덜미를 잡혔고, 일본과 격차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 확인했다. 그러나 한국야구는 더 잘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최소한 이 정도로 야구 못하는 나라는 아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한국계 선수들의 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조 편성에도 힘을 썼다. 비행기 비즈니스석 제공, 최고급 호텔 숙박, 매끼 한식 제공, 1인당 전력분석용 태블릿PC 지급, 부상에 대비한 상해보험 가입, 거액의 포상금까지. 선수들이 잘하기만 하면 됐다. 결과가 ‘폭망’이니 도루묵이다.

◇비활동기간, ‘일시해제’ 안 될까

타자들은 몫을 했다. 팀 타율 1위(0.336), OPS 1위(0.967)에 자리했다. 중국전 22득점을 제외하더라도, 호주전 7점, 일본전 4점으로 좋았다. 이번 대회에서 일본을 상대로 4점 이상 낸 팀은 멕시코(5점)와 한국 뿐이다. 결국 문제는 투수다. 호주전 8실점, 일본전 13실점이 말해준다. 가장 중요한 두 경기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1회말 만루위기 원태인[포토]
WBC 대표팀 원태인이 13일 도쿄돔에서 열린 2023 WBC 예선 B조 중국과 경기에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원태인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등판해 가장 많은 공을 뿌렸다. 도쿄 |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컨디셔닝 실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대표팀 일정만 보면, 미국→한국→일본 오사카→일본 도쿄 순이다. 장거리 이동은 선수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게다가 많은 선수들이 개인 훈련을 위해 1월부터 일본, 미국 등으로 향했다. 하늘에서 보낸 시간이 많다.

3년 후 열릴 WBC에서는 더 일찍 모여서, 더 긴 시간 함께 훈련하는 것이 어떨까. 소속팀 스프링캠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명예회복’이 중요하다면, 한시적이라도 한 번 해볼 필요는 있다. 다음 대회 조편성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시작부터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지는 않을 터. 가까운 일본 혹은 대만에서 모여 이동 없이 몸을 만드는 것이 나쁠 리는 없다.

아예 1월에 모이는 것도 방법이다. 적지 않은 선수들이 자비를 들여 일찍 따뜻한 해외로 나간다. 개인 훈련이 아니라, 대표팀 차원의 소집이라면 어떨까. 명분도 된다. 더 체계적으로 몸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이쪽이 가능하려면 선수협의 동의가 필요하다. 오롯이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조정을 하자는 뜻이다.

일본의 경우 KBO리그보다 시범경기 개막이 빠르다. 이에 비활동기간 몸을 만드는 것도 우리와 개념이 살짝 다르다. 삼성 박진만 감독은 “일본 선수들은 1일에 캠프를 시작하면 바로 100%로 던진다. 우리 선수들이 느꼈으면 한다”고 했다. 이번 WBC 대표팀도 2월17일 소집됐다. 우리보다 늦었다. 그만큼 잘 만들고 왔다는 뜻이다. 게다가 자국에서 대회가 열리니 이동도 무리가 없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9 한국-일본
2009 WBC 1조 2라운드 2차전 일본과 경기에서 승리가 확정되자 덕아웃에 있던 선수들이 환호하며 달려나가고 있다. 사진 | 샌디에이고=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프로만 문제? 아마가 살아야

더 큰 문제는 아마 쪽이다. 고교 최고 선수라고 뽑아왔는데 “기본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며 한숨을 짓는 감독들이 꽤 된다. 어쨌든 비교 대상은 일본이다. ‘인프라가 다르다’, ‘저변이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더 안주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아예 야구를 못한다면 모를까,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수천개 고교야구팀이 있다는 일본이지만, 전부 엘리트는 아니다. 일본의 한 관계자는 “일본에서도 명문이라 불리는 고교는 50팀은 넘고, 100팀은 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전체 고교야구팀이 95개다. ‘엘리트 야구’의 측면이라면 아주 따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과거 일본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이유다.

이번 WBC를 통해 차이가 벌어진 것을 확인했다. 프로 뿐만 아니라 아마의 격차도 봐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은 친선전, 평가전 등이겠으나 쉽지 않다. 차선책을 들자면 ‘지도자 연수’다. 미국도 좋지만, 일본을 가는 것은 어떨까.

어느 순간부터 모두 메이저리그만 말한다. 미국이 최고 선진 야구를 하는 나라인 것은 맞다. 대신 신체조건이 다르다. 직접 적용은 위험하다. 오히려 일본의 경우 자신만의 노하우에 미국의 새로운 야구를 잘 접목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현재 일본의 명문고는 프로의 훈련법도 공유하고 있다. 프로선수로서 잘 던지고, 잘 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고 훈련하는 중이다. 우리도 따라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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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김서현이 14일 대전 KIA전에서 투구하고 있다. 제공 | 한화 이글스

일본의 협조와 비용 문제가 남는데, 이쪽은 KBO가 힘을 보태야 한다. 한국야구소프트볼협회(KBSA)와 연계해 연수 지원에 나서면 되지 않을까. “중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했다. KBO리그와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야구의 성장일지도 모른다.

WBC에서 최악의 결과가 나오기는 했지만, 고교에서도 시속 150㎞를 훌쩍 넘기는 투수들이 잇달아 나오기 시작했다. 김서현, 문동주 등이 대표적이다. ‘구속 혁명’ 시대에 한국야구도 발을 어느 정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속도를 높일 때다. ‘평균’으로 시속 150㎞를 던지는 투수들이 일본을 비롯해 전세계에 ‘널려’ 있다. 이대로는 상대적으로 뒤처지기만 할 뿐이다.

raining99@sportsseoul.com

김동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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