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
울산현대 홍명보 신임감독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내 명예회복은 중요하지 않다. 울산 현대 명예를 지키겠다.”

2021년 신축년 새해 ‘아시아 챔프’ 울산 현대 지휘봉을 잡고 3년 7개월 만에 현장에 복귀하는 홍명보(52) 신임 감독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으로 새 미래를 그렸다. 홍 감독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신년인터뷰에서 “울산 부임이 정식 발표됐을 때 ‘이제 다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에 벅차더라. 그라운드에서 다시 선수들과 호흡하고 땀을 흘리게 돼 설렌다”고 말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주장 완장을 달고 4강 신화를 이끄는 등 현역 시절 설명이 필요 없는 ‘아시아 최고 리베로’로 활약한 홍 감독은 은퇴 이후 2005년 국가대표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연령별 대표 감독으로 경험치를 쌓았는데 ‘스타 출신 지도자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승승장구했다. 2009년 이집트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8강을 달성했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U-23 대표팀을 이끌고 한국 축구에 사상 첫 동메달을 안겼다. 그러다가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자의반 타의반’ 다급하게 지휘봉을 잡았다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첫 실패를 경험했다. 단순히 월드컵 실패로 귀결된 게 아니다. 선수 선발 논란부터 근거 없는 괴소문, 일부 누리꾼의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접하며 커다란 상처를 받아야 했다. 이후 중국 리그에서 잠시 지휘봉을 잡은 그는 지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대한축구협회(KFA) 전무이사직을 맡으며 행정가로 변신했다. 이 기간 홍 감독은 한국 축구의 근간인 유소년부터 성인까지 각급 모든 시스템을 가까이서 접했다. 선수부터 지도자까지 축구 인생 내내 치열한 승부 세계에 놓이며 늘 ‘한쪽’만 바라본 그의 시각은 한층 더 넓어졌다. 특히 한국 축구 뿌리를 다지는 초등학교 8대8 도입부터 생활체육과 전문체육 연계를 위한 디비전시스템 구축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스스로 걸어온 길을 되짚었다.

홍명보 감독

그래서 홍 감독의 울산 부임은 단순히 ‘감독 홍명보’의 복귀가 아닌 진정한 ‘매니저형 지도자이자 축구인’으로 거듭나는 시발점으로도 읽힌다. K리그를 대표하는 ‘빅클럽’ 울산은 유스부터 1군까지 최고 수준의 시스템과 자원을 보유했다. 경기운영부터 강화부, 홍보·마케팅 등 프런트 경쟁력도 최상위급이다. K리그 사령탑은 처음인 그가 선수단을 이끌고 지난 월드컵 실패를 만회하는 수준이 아니라 행정가 경험을 벗삼아 프런트와 호흡하며 새로운 구단, 새로운 K리그 문화를 여는 데 이바지할지 관심사다.

홍 감독은 만난 건 지난달 28일 KFA 전무이사실. 오는 7일 울산 선수단 상견례를 앞두고 전무이사로 임무를 정리하는 데 한창이었다. “막상 정리를 하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더라”고 너털웃음을 지은 그는 현장 지도자로 돌아오는 소회를 가감없이 밝혔다. 홍 감독은 현장 복귀와 함께 화두처럼 따라붙은 ‘명예 회복’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는 “감독을 시작한 2009년부터 늘 한 말이 있다. ‘내 명예는 축구에서 얻은 것’이다. 축구를 하다가 명예를 잃을 수도, 더 큰 명예를 얻을 수도 있다”며 “개인적으로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울산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챔피언 팀이지 않느냐. 오히려 내가 울산 명예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임 직전 아시아 왕좌에 오르는 울산 경기를 모두 지켜봤단다. 그는 “지난해 K리그1과 FA컵 모두 아쉽게 우승을 놓쳤는데 마지막 대회인 ACL에서 준우승 징크스를 깬 건 선수단에 엄청난 자신감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새 감독으로 부담이 안된다면 거짓말이다. 그 부담을 좋은 에너지로 여기고 도전할 것이다. 울산의 목표는 명확하게 K리그1 우승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좋은 과정을 밟겠다”고 말했다.

홍명보 감독

‘울산 홍명보호’의 지향점은 선수단과 프런트, 팬이 하나가 돼 모든 면에서 꾸준하게, 으뜸이 되는 ‘지속발전 리딩 구단’이다. 그는 “스쿼드가 좋으면 한 번 정도는 우승할 수 있다. 하지만 전북 현대 사례를 보자. 그 팀이 7~8년간 거의 우승을 독식하는 건 단순히 스쿼드가 좋아서가 아니다. 프런트부터 선수단까지 일관한 시스템과 바른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KFA에서 중장기 로드맵을 경험한 것처럼 울산 사령탑으로도 눈앞에 성적에 국한하지 않고 미래 지향적인 청사진을 구단과 수시로 교감하며 명확히하겠다는 의지다. 홍 감독은 “중장기 계획이 있으면 선수나, 프런트가 목표 및 철학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한다. 나도 그런 팀을 만들고 싶다. 내 임기가 끝나고 다른 감독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좋은 부분은 계속 발전시키는 팀”이라고 말했다.

유스팀에서 여러 기대주를 발굴하고도 활용폭이 적었던 1군 시스템에도 소신껏 말했다. 홍 감독은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 1군에 적응하고 뛰는 건 쉽지 않다. 다만 선수를 타 팀으로 임대를 보낼지, 프로 B팀이 참가하는 K4에서 경험을 쌓게할 것인지 발전 시키려는 방향과 계획이 명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엔 오로지 경기를 준비하고 결과를 내는 사람이 중요하다고만 여겼다. 행정을 하면서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의 소중함을 배웠다”면서 선수단과 프런트가 눈치보지 않고 소통하는 문화 구축에도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홍명보 감독

한국 축구 ‘핫아이콘’ 홍 감독의 복귀로 K리그 스토리는 더욱더 풍성해진다. 공교롭게도 그는 울산 최대 라이벌인 포항 스틸러스의 ‘리빙 레전드’다. 지난 1992년 프로로 데뷔한 이래 K리그에서는 포항에서만 7시즌을 보냈다. 올해 그가 울산 수장으로 스틸야드를 찾는 것도 흥미요소다. 홍 감독은 “스틸야드를 가긴 가야하는데…”라며 “어떠한 기분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도 묘하긴 하다”고 웃었다. 절친한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전북과 우승 경쟁을 펼치는 것도, 김남일 감독의 성남FC와 겨루는 것도 관심이다. 홍 감독은 “팬에게 무언가 이슈거리가 있는 건 좋은 것 같다”며 “그들과 비교하면 국내에서 난 초보다. 배우는 심정으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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