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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로 산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신나게 달리는 신계숙 교수. 제공|EBS

[스포츠서울 김효원기자]“인생 뭐 있슈~하고 싶은 거 당장 하고 사는거쥬~”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전국을 누비는 언니가 화제다. 이 언니, 성격 천재다. 어느 누구와도 만난지 5초면 친구가 된다. 궁금하면 뛰어 들고, 흥이 나면 노래를 부른다. 정도 많아 고단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프라이팬을 잡고 지지고 볶아 맛있는 음식 한 그릇을 대접한다. 현재 EBS에서 인기리에 방송 중인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신계숙 교수(배화여대 전통조리학과, 56)다.

요즘 유행하는 ‘부캐’(부캐릭터)는 신 교수를 위한 맞춤단어다. 요리사, 교수에 이어 방송인까지 다양한 부캐를 휘날리며 신나게 살고 있는 신계숙 교수를 서울 용산구 후암동 개인 연구소 ‘계향각’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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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숙 교수. 김효원기자 eggroll@sportsseoul.com

◇요리사-교수-방송인…유쾌함이 ‘본캐’

계향각 문을 열고 들어서자 TV와 똑같은 모습의 신 교수가 와락 반겨준다. 자리에 앉자 눈앞에 호박죽 한 그릇을 가져다 놓는다. ‘웰컴 드링크’는 받아봤어도 ‘웰컴 호박죽’은 처음이다.

“아침 안드셨쥬? 요즘 사람들은 아침을 잘 안먹으니께 호박죽을 준비해봤쥬.”

따뜻한 호박죽을 먹으며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듣노라니 이상하게도 20년은 만나온 사람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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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연구실에서 옛 조리서를 연구하고 있는 신계숙 교수. 김효원기자 eggroll@sportsseoul.com

“요즘 방송에서 완전히 뜨셨다. 인기를 실감하시나”고 묻자 신 교수는 “길에서 오토바이 타는 아줌마라고 알아보는 분들이 늘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경동시장이다. 시장 상인분들이 반갑다고 커피도 주고 그런다. 얼마전에는 상인 분과 친구가 됐다”며 웃음을 웃었다.

신 교수가 방송인으로 급부상하게 된 것은 지난 4월 5부작으로 방송된 EBS ‘세계테마기행-꽃중년 길을 나서다’가 시작이다. 중국 소수민족 마을과 타이완 등을 여행했는데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며 현지인들과 순식간에 친구가 되는 신 교수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홀딱 마음을 빼앗겼다. 신 교수가 출연한 ‘세계테마기행’은 4.41% 시청률을 기록해 올해 최고 시청률을 터트렸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프로그램이 처음이었는데, PD와 카메라감독 덕분에 초보티를 벗고 자연스러운 방송을 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제작진에 공을 돌렸다.

“타이완에 갔을 때 명승지를 소개해야 하는데 카메라 앞이라 너무 긴장을 했다.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PD와 카메라 감독 분들이 매순간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줬다. 그 격려를 들으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졌다. 내 분량을 찍고 난 후 쉬라고 하면 쌀과 채소를 사서 밥을 해서 같이 먹고 하다 보니 나중에는 카메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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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쇼를 선보이고 있는 신계숙 교수. 김효원기자 eggroll@sportsseoul.com

흥이 많아 좋은 풍경 앞에서 가요며 트로트 가락을 구성지게 뽑아낸다. 파도가 치는 풍경앞에서는 김추자의 ‘무인도’를,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는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를 불렀다. TV 앞에 앉은 시청자들의 어깨도 들썩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한 단어가 떠오르면 그것에 대한 노래가 줄줄이 떠오른다. 운남성 산길을 가다가 느낌을 말하라기에 노래로 했다.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곳에 행복의 날개여 활짝 펴라’는 노래를 불렀다. 태평양 바다 앞에서는 김추자의 ‘파도여’가 절로 나왔다. 그런 모습을 좋아해주셔서 ‘세계테마기행’으로 펭수 부럽지 않은 인기를 얻게 됐다. 하하하.”

◇모터사이클 타고 전국을 누벼보니…사람들이 다 참 열심히 살더라

‘세계테마기행’의 인기에 힘입어 EBS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무려 13부작으로 편성돼 현재 매주 월요일마다 방송 중이다. ‘맛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신 교수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전국을 휩쓸며 어부도 만나고 해녀도 만나고 광부도 만나 사는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나눠 먹는 이야기다.

여느 출연자들은 예쁘게 나오려고 머리에 힘도 주고 메이크업도 세게 하는데 신 교수는 비 바람에 머리가 흩날려도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뻘밭에 들어가 낑낑대며 조개를 캐고 직접 우럭탕을 끓여 살짝 두고 온다. 그런 털털함과 따뜻함이 인기 비결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다니는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신 교수는 “전국을 다녀보니 사람들이 참 다양한 방식으로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동안 나만 열심히 사는 줄 알았는데 나는 쨉(?)도 안됐다”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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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전국을 누비고 있다. 제공|EBS

◇중국어로시작해 중국 요리 연구까지 중국과 깊은 인연

신 교수는 중국과 인연이 깊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버지에게 한자를 배운 것이 그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한자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던 꼬마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는 졸업후 남들처럼 사무직에 취직한 것이 아니라, 중화요리점 주방에 들어갔다.

“당진이 고향인데 당진의 당자가 당나라 당(唐)자다. 모르긴 해도 우리 동네가 당나라 교역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한문을 그리면서 놀라고 칠판을 사다주셨는데 그게 한자와 친밀하게 된 계기같다. 아기 때 강아지를 보면 평생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한자를 들여다보며 뜻을 찾고 하는 걸 좋아했다.”

이향방 선생의 중화요리집 ‘향원’ 주방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배웠다. 남자들만 있는 중화요리 주방에 여자가 들어가자 소위 ‘왕따’를 당했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뚝심으로 버텨 8년을 주방에서 일했다. 당연히 중화요리집을 차리겠거니 했지만 다음 코스는 대학원이었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하고 나서 배화여대 조리과 교수가 됐다.

지금 신 교수가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은 중국 청나라 시대 시인 원매가 쓴 조리서 ‘수원식단’을 연구하는 일이다. 지난 2015년 ‘수원식단’을 해석한 책을 냈고 지금도 연구는 진행 중이다.

“원매 선생은 책에 ‘죽은 조리서가 살아 있는 사람을 어떻게 통제하겠냐마는 이대로만 하면 큰 실패는 없다’고 썼다. 특히 청소를 열심히 해라, 행주를 열심히 빨아라 같은 얘기가 유용하다. 나는 돌아가신 원매 할아버지와 남은 생을 보내려고 한다.”

‘수원식단’을 연구하는 모임도 이끌고 있다. 뜻 맞는 사람들을 모아 책을 공부하고 책에 나온 요리를 만들어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참여하는 멤버들 주변으로 입소문이 나 그룹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기줄을 섰지만 자리가 나지 않아 신입 멤버를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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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잘한 일로 요리, 공부, 오토바이를 꼽는 신계숙 교수. 제공|EBS

◇요리를 할 때 가장 행복해…가장 행복한 일을 하라

신 교수는 ‘하고 싶은 것은 지금 당장 하라’ 주의자다. 중국어도, 요리도, 사진도, 색소폰도, 오토바이도 배우고 싶었을 때 즉시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배운 건 50세가 넘어서였다. 요즘엔 드론을 배운다.

“내가 만든 요리를 찍고 싶어 사진을 배웠고, 내가 만든 요리의 체계를 잡고 싶어 대학원에 갔다. 색소폰은 만두를 지지는 시간이 3분인데 그 시간에 색소폰을 불어주고 싶어서 배웠다. 내 요리를 더 잘하기 위해 하고 싶은 것들에 늘 주저없이 도전했다. 요리를 하는 순간이 늘 즐겁다. 새벽 두시에 잠이 깨면 작업실에 나온다. 두시에 나와도 즐겁다. 만약 어떤 일을 하는데 불행하다면 자신이 행복한 일을 빨리 찾아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도 불행하면 딴 일을 해야 한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죽는다. 죽는 순간까지 행복한 일을 하다가 죽어야 한다.”

eggroll@sportsseoul.com

<신계숙 프로필>

1964년 충남 당진생. 단국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이화여대 석·박사. 현 배화여대 전통조리학과 교수. 지은 책으로 ‘수원식단 번역’(교문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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