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스포츠서울 박효실기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게이 선수가 축구계에서 커밍아웃하는 공포를 담은 공개서한을 보내 눈길을 끈다.

영국 더 썬은 10일(현지시간) “한 프리미어리그 스타플레이어가 ‘나는 게이지만, 아직 커밍아웃 하기는 두렵다. 축구는 준비가 덜 됐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냈다”라고 보도했다.

이 선수는 구단과 팬들을 향한 익명의 공개서한에서 “나는 게이다. 이렇게 편지에 그 말을 쓰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용기다. 하지만 내 정체성은 가족과 소수의 친구들만 알고 있다. 아직 우리 팀과 매니저에게 이같은 사실을 밝힐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사는게 어떤 느낌이냐고. 매일 매일이 완벽한 악몽일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나의 정신건강을 점점 더 망가뜨린다. 나는 덫에 걸린 기분이고, 내 비밀이 밝혀질지 모른다는 공포는 상황을 더 나쁘게만 한다”라고 토로했다.

그가 이처럼 깊은 고민에 빠진 것은 공식적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는 게이도 양성애자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커밍아웃을 금하는 분위기 때문이지 실제로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최근 왓포드FC의 주장 트로이 디니는 “모든 팀에 최소 1명씩은 게이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만약 누군가 커밍아웃을 하면 최소 100명이 따라서 커밍아웃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익명의 선수는 “프로축구선수협회(PFA)는 커밍아웃 선수를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핵심을 놓친 이야기다. 그저 나를 카운셀링 하는 것이 아니라 팬과 선수 매니저, 에이전트, 구단주까지 이는 관련된 모든 이에게 (성정체성을) 교육하는 문제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축구계에 만연한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도 그의 커밍아웃을 붙든다. 그는 현재 축구스타 고(故) 저스틴 파샤누 가족이 만든 파샤누 재단의 후원을 받고있다고 말했다.

파샤누는 1990년 영국 최초로 커밍아웃을 한 축구스타로 8년만에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그는 아동성추행 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었는데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편파수사를 당했다”는 유서를 남겼다.

파샤누의 조카이자 사회운동가이기도 한 조카 아말 파샤누는 지난해 삼촌의 이름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축구계의 동성애 혐오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비밀리에 게이 혹은 양성애자 프리미어리거 2명과 7명의 축구선수를 돕기도 했다.

사회운동가이기도 한 아말은 “저스틴 삼촌에게 일어난 일이 다른 선수들에게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재단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익명의 선수는 저스틴 파샤누 재단의 도움으로 지난 1년간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며 “그 지원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감사를 전했다.

이어 “만약 내가 일찍 은퇴할 수 있다면 커밍아웃을 할 것이고, 그렇다면 나의 수익이 될 경력을 모두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값을 매길 수도 없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라면서 “나는 영원히 이렇게 (거짓으로) 살길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축구계에는 총 4명의 커밍아웃 선수가 있다. 전 헐시티 유소년 선수로 뛴 토마스 비티는 지난 달 커밍아웃을 했다. 파샤누 이후 EPL에서 30년만에 처음으로 커밍아웃한 선수다.

싱가포르에서 살고있는 비티는 축구선수로 뛰던 10년간은 커밍아웃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독일의 토마스 히즐스퍼거는 2014년 은퇴 후에야 그가 게이였다고 고백했다. LA갤럭시 미드필더로 뛰었던 로비 로저스는 2013년 커밍아웃했다.

gag1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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